살아가는 이야기

나의 열 살 전후사(前後史)7, 내 유년의 늦여름, 안태(安胎) 고향집 수채화/내가 커다란 능구리가 굼틀굼틀 기어가는 거 보고 기겁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청솔고개 2020. 7. 6. 19:47

나의 열 살 전후사(前後史)7, 내 유년의 늦여름, 안태(安胎) 고향집 수채화

 

                                                                                                     청솔고개

   이제 늦여름에 접어든다. 안태(安胎)고향 마을의 동네 회관 터가 되어 버리기 전 내 유년의 우리 집 풍경 스케치다. 이게 왠지 물을 많이 섞어서 색깔이 옅어져버린 희미한 그림, 솜씨가 없어 잘 그리지 못한 수채화 같다. 방학 후에는 1학기 마지막 한 달의 수업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개학해야 한다. 그 당시 기억나는 게 하나 있다. 이른 바 그 시절 4월 초 학기 시작 제도였다. 그 때 학교는 새 학년 시작하는 날이 4월 1일이었다. 그래서 1학기 기간은 4.1.~9.30. 1학기 중, 7,8월에 걸쳐 여름방학이 있었고, 9월 초에 개학해서 9월말까지 1학기 수업을 했다. 2학기는 10.1에 시작했다. 2학기 기간은 10.1.~3.31. 2학기 중, 1월 겨울방학이 있었고 2월초에 개학해서 3월말까지 2학기 수업을 했다. 그러니 1학기 마지막 한 달 수업할 즈음에 폭우를 동반한 태풍이 자주 몰려온다.

   큰물이 지면, 앞들의 논 높이 정도로 아주 낮게 터 잡고 있는 우리 집 마당에 미꾸라지나 송사리들이 시원한 빗줄기를 맞으러 나온다. 가을에 접어들어 모두들 누렇게 혹은 희멀거니 살이 통통하게 찐 놈들이다. 빗줄기는 마치 수천수만 화살처럼 내리 꽂힌다. 그래서 그 수면에는 뽀얀 물보라 같은 것이 번진다. 그놈들은 일제히 기도나 하듯이 대가리와 주둥이를 하늘을 향한다. 뭔가 이죽거리는 것 같다. 입에 복작복작 거품을 물고 꿈틀대는 그 모습은 암만 봐도 신기했다. 이때는 마당은 바로 작은 연못이고 큰 수족관이었다. 나는 우비도 쓰지 않고 다섯 치나 더 되는 나막신에 올라타고 저벅저벅 마당 연못을 걸어서 들어간다. 물이 다 빠질 때까지 마당에서의 나의 민물 갯벌체험은 이어진다. 이 물고기들이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앞 새말뜨기 논에서, 아니면 우물 아래 본동뜨기 미나리깡에서. 아니면 빗줄기 타고 올라가 날아서 이동해서 빗줄기 타고 또 내려왔나. 이 일에 빠져든 나머지 며칠 후 그만 깊은 열병을 앓게 되었다. 제대로의 홍역에 걸린 것이었다. 그야말로 ‘홍역’을 치른 거다. 몸이 불덩이 같고 의식도 가물가물, 목은 타들어가고 눈자위도 풀려 눈알 굴릴 힘조차 풍선에 바람 새듯이 다 빠져버린 것 같았다. 끝없이 추락하고 꺼져 들어가는 공포심을 느꼈었다. 이러다가 죽는 건가 싶었다. 난생 처음 죽음의 공포와 맞닥뜨린 것 같았다.

   여름의 끝자락이다. 고개를 들어보니 먼데 지실령산에 비안개가 자욱하다. 그 큰 삽짝 양 옆으로는 고목이 다된 토종 대추나무가 늙었으나 아주 당당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었다. 바로 옆 성벽처럼 길다랗게 늘어진 담벼락은 산채(山寨)같았다. 이 산채를 굳게 지켜주는 것이 바로 상처투성이 노목(老木), 이 집의 역사와 수명일 같이하는 대추나무였다. ‘바람아, 바람아, 불어라. 대추야, 대추야, 떨어져라. 아이야, 아이야, 줏어라.’ 늦여름 한 때, 큰바람이 불어서 떨어진 잘디 잔 풋대추 알을 줍기 위해 동네 악동들은 이 나무 밑에서 옹기종기 모인다. 대추 등걸은 발로 차보기도 하고 밑 둥의 잔가지는 손으로 흔들어 보기도 하는데 그 속엔 반드시 나도 있다. 늙은 대추나무의 그 굵은 가시들은 그대로 성벽에 난 방어용 침이 되어 안전하게 우리 집을 지켜주는 것 같았다. 닷새마다 한 번씩은 반드시 집 뒤의 길 대숲 울타리 너머에서 소 팔러 성내 장에 가는 장골(壯骨)들의 둔탁한 발걸음 소리와 ‘이랴! 워워’하는 소몰이 소리가 더러는 내 새벽 잠결을 마치 꿈속처럼 느끼게 했다. 이럴 때는 새벽에 채전 밭이나 잿간과 두지 사이에 있는 제일 큰 ¹감낭게서 무어 풋것이라도 떨어져 있는가 싶어서 남 먼저 일찍 눈이 뜨인다. 눈을 비비며 장독대 지나 작은 삽짝으로 다가가 보는데, 여기서 그만 내가 커다란 ²능구리가 굼틀굼틀 기어가는 거 보고 기겁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새벽 일직 뽕 따라 갔다가 막 집에 온 할매한테 물었더니 전부터 우리 집 대청마루 밑에 있었다고 한다. 우리 집 집찌끼미라 했다. 그러니 잘 보살펴 줘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우리 집에 불이 나거나 흉한 일이 생기면 그 집찌끼미가 먼저 우리한테 어떤 식으로도, 예를 들어 먼저 집 밖으로 탈출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든지 해서, 그 위급함을 깨우쳐준다고 조곤조곤 말해주었다. 그 후로는 몇 번 그 능구리와 맞닥뜨렸지만 그리 겁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우리 집 대청마루 밑 어디엔가 우리 집의 수호신이 사는 집이 있다는 게 적이 마음에 안심이 되었다. 내가 어떻게 그런 식으로 그 집찌끼미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되었는지 지금도 잘 이해가 안 된다. 내 유년의 늦여름 시간은 이렇게 흘러갔었다.     2020. 7. 5.

 

 

[주(注)]

두지 : '뒤주'의 토박이 말, 여기서는 마당에 세운 짚으로 만든 곳간임

¹감낭게서 : ‘감나무에서’의 토박이 말

²능구리 : ‘능구렁이’의 토박이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