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3대(三代)의 중국 주자이거우[九寨溝 구채구] 동행기, 제5일 전편
청솔고개
06:10, 기상. 06:40 식사. 08:00 출발. 마지막 일정까지 아버지가 잘 견디신다. 오늘은 잔뜩 흐린 날씨다. 미세먼지 수치 가 180을 기록해서 한국이면 “적색경보급”이라고 가이드가 말한다. 버스가 많이 덜컹거린다. 속도제한 때문에 요철을 일부러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여행의 피로가 쌓인 듯 아침부터 차 안에서 잘 주무신다. 청두시내는 아침부터 차가 많이 막힌다. 그러니 숨도 막히는 것 같고 무척 답답하다. 오늘은 햇빛 구경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도 9시 좀 지나니 해가 얼굴을 빠끔히 내민다. 먼저 쇼핑센터에 가서 아버지 노령 건강에 좋다는 게르마늄으로 된 팔찌와 속옷을 사 드렸다. 그 효과가 입증되든 안 되든 혈행에 좋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께서 관심을 표명하셨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손떨림 증상은 꽤 오래된 걸로 기억하고 있다.
점심은 청두 시내에 제법 고품격 현지식당으로 알려진 ‘흠선재(欽善齋)’에서 먹었다. 몇 년 전 청두를 처음 방문했을 때에도 마지막 날 이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기억이 있다. 그 때 가이드가 식비가 상당한 고급식당이라고 소개해서 잔뜩 기대했었는데 실제 맛을 보니 내게는 전혀 맞지 않은 향신료 투성이의 중국요리로 기억된 적이 있었다. 오늘은 그때만큼까지는 거부감이 덜 들었다. 아마 음식 맛을 상당히 방문객에 맞춘 결과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우리 삼대가 특히, 아버지에게 이런 가장 중국풍의 현지 식당을 체험하실 수 있었다는 것은 좋은 기억을 남을 것 같다. 다만 이번에는 이 식당 ‘欽善齋’ 상호의 글씨가 청나라 6대 황제인 건륭제(乾隆帝)의 필체라는 걸 확인한 것이 좀 새로운 것 같다.
오후 5시 쯤 청두 시내를 둘러보았다. 먼저 촉한(蜀漢)의 유비(劉備)의 사당인 한소열묘(漢昭烈廟), 이어서 중국 남송시대 장군인 악비(岳飛)의 필체로 알려진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가 어지러운 초서로 쓰여, 벽에 전시돼 있는 것을 보았다. 악비(岳飛)는 평생 제갈량(諸葛亮)을 흠모하여마지 않았다고 한다. 이어서 촉한의 명재상 제갈량(諸葛亮)은 흔히 자(字)를 붙여 제갈공명(諸葛孔明)이라고 불리는데 이를 기리기 위한 사당인 무후사(武侯祠)를 찾았다. 무후사(武侯祠)라고 이름 한 것은 제갈량(諸葛亮)의 작위와 시호에 모두 ‘武, 侯’ 자가 들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지었다고 나무위키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관우(官牛) 장비(張飛) 유비(劉備) 모두가 모셔져 있는 삼의묘(三義廟)를 다 둘러보니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영웅들을 다 만난 것 같다. 허나 실물보다 더 과장되게 세워놓은 금빛 휘황한 모든 인물상이 어쩐지 역사나 소설에서 드러난 이미지를 절반도 표출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아쉽다. 실제 인물됨의 품격을 오히려 떨어뜨린다는 것은 전번 방문 때 생각과 별반 다름이 없다. 두 번째 찾아드는 데도 여기서는 거의 2천 년 전 대륙의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호걸들의 기개와 대의를 실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잘 안 된다.
이어서 대숲 우거진 좁은 담 길을 거쳐 유비(劉備)의 묘소(墓所)인 ‘한소열황제릉(漢昭烈皇帝陵)’을 찾았다. 이곳 역시 몇 년 전에 친구 내외와 여행한 적이 있어 제법 익숙하다.
이 모든 유적을 둘러보는 통로에는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삼국시대의 분위기를 재현한다고 깃발이니 등이니 펄럭펄럭 주렁주렁 많이 세우고 달아놓았지만 내게는 그냥 상업적 장터 같은 느낌밖에 들지 않은 것은 그동안 읽어서 감동받은 삼국지연의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냥 저잣거리 같다. 그래도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대숲이나 겨울에도 푸름을 뽐내고 있는 아열대성 나무들은 풍요롭다.
아들은 제 할아버지 어깨와 등을 가볍게 한 팔로 에워싸면서 밀려드는 여행객 사이로 밀착 보호를 하고 있다. 나는 모처럼 폰의 동영상 촬영기능을 활용하여 이런 조손간의 좋은 모습을 잘 기록해 둔다. 이번 가이드는 문화유적 하나하나를 꼼꼼히 잘 설명해 준다. 아버지도 가까이 다가가서 열심히 경청하신다. [2017. 3. 1. 수. 흐림. 전편] 2021. 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