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3대(三代)의 중국 주자이거우[九寨溝 구채구] 동행기, 제5일 후편 및 제6일
청솔고개
날이 저물어 등불이 켜질 무렵이 된다. 무후사 옆 진리[錦里 금리]거리에 들어섰다. 가이드는 역시 이곳을 앞서가면서 잘 안내해 준다. 아버지는 연신 동영상을 촬영한다고 폰을 쳐들고 정신없이 걸으신다. 팔을 저렇게 쳐들고 있으셔서 많이 피곤하실 것 같으신 데도 한결 같다. 이런 작업에 혼신을 다하신다. 어둠이 짙게 깔릴수록 색색의 온갖 등만이 더욱 그 휘황함과 황홀함을 더하는 것 같다. 아이는 제 할아버지를 부축하듯 하면서 앞서서 걷고 그런 흐뭇한 모습을 나는 폰에 담는다. 아이는 제 할아버지에게 뭔가 꾸준히 설명해드린다.
나는 유명한 유적지 답사나 고풍스러운 거리의 분위기에 취하는 것도 여행의 맛이지만 그보다도 이번 여정에서는 우리 삼대의 이 아름다운 동행이 이 여행의 참된 감동이라고 진하게 느꼈다. 이게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풍광이다. 나의 이런 생각은 이곳이 아마 두 번째 방문이라서 그 호기심과 감동의 도가 좀 떨어져서 드는 것 같기도 하다.
이어서 콴차이샹즈[寬窄巷子, 관착항자]로 들어갔다. 청나라 시대 부유층들이 살던 곳을 재현해 놓았다고 한다. ‘寬窄巷子’는 중국어로 크고 넓은 길, 작고 좁은 길 즉 골목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아버지는 이런 가장 중국다운 거리 분위기를 재생하기 위해서 열심히 촬영하시다가 작업이 잘 안되면 또 물으신다. 아이가 열심히 설명해 드린다. 하늘은 어둠에 쌓이고 불빛 사일로 삼월 초하룻날 한 떨기 화사한 목련꽃이 보인다. 홍등에 비쳐서 목련의 얼굴이 발그레하게 보인다. 등불이 비치는 골목길 어둠속에서 홍매화나 동백인지 아니면 석류꽃 같기도 한 소담스러운 꽃무더기가 정겹다. 꽃송이 하나하나가 밤하늘의 별처럼 보인다. 나는 저절로 봄의 흥취에 젖는 것 같다. 샛노란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이 열심히 일하는 가게는 중국 고유 과자 파는 곳이다. 같이 하나씩 구입을 했다. 한군데는 희뜩 퍼뜩하면서 소규모 공연단이 변검 공연을 보이는 곳도 있다. 지나가다가 잠시 봤는데 어찌나 빠른지 이게 바로 매직 같다.
시간은 벌써 저녁 9시를 훨씬 넘었다. 아버지께 중국 전통 찻집의 분위기를 느껴드리고 싶어서 가이드한테 안내해달라고 하니 이리저리 알아보더니 깨끗하고 중국풍으로 꾸며진 한 찻집으로 데려다 준다. 중국 여자들이 즐기는 붉고 화려한 모란 꽃 문양의 전통 복장을 한 상냥하고 예쁘장한 종업원이 하나가 웃음 띤 얼굴로 친절하게 맞이해 준다. 같이 앉아서 중국 전통 격식으로 차를 따라주는 서비스를 한다. 찻잔을 손으로 잡지 않고 뜨거운 물에 튀겨서 집개로 각자 앞자리에 놓는다. 좀 있으니 다시 또 연분홍 무늬 없는 중국여인 복장을 한 여자종업원이 아이가 앉은 옆 자리에 합석하면서 시중을 해 든다. 둘 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채이고 정수리에는 중국 특유의 비녀가 꽂혀 있다. 모두 나이는 20대를 넘지 않은 것 같다. 이들이 그냥 차 시중만 드는 것이 아니라 같이 차를 마시면서 대화에 동참하는 게 참 인상 깊었다. 물론 비즈니스이긴 하지만 손님과 진심으로 함께 한다는 뜻일 것이다.
나갈 때 아이가 계산하는 걸 보니 꽤 값나가는 전통 차를 시켰다는 것을 알았다. 종업원이 자꾸 물어오니 아이는 여자종업원에게 뭐라고 설명한다. 대화는 영어가 대부분이겠지만 아이가 학교에서 수강한 중국어로도 뭐라 뭐라고 대화를 시도해 보는 것 같다. 아버지도 좌중에 느닷없이 유쾌한 농담을 던지시고 또 종이에 떨리는 손으로 필담까지 하신다. 아버지가 한문으로 뭔가를 써서 보여주니 종업원들이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이를 아이가 또 열심히 설명해 준다. 미소 띠고 고개 끄덕이고 열심히 손짓을 해가면서 대화가 무르익는다. 종업원이 엄지 척까지 한다. 시종일관 환하고 웃음 띤 표정이 이어진다. 찻잔이 비면 바로 채워준다.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현지 종업원들이 이처럼 잘 응대해 준다. 이 상황이 아주 인상 깊어서 주요 장면을 동영상으로 기록해 두었는데 어쩐지 소리가 재생되지 않는다. 그 때 무슨 말을 주고받는다고 그렇게 즐겁고 유쾌했는지 궁금하다고 아이에게 다시 물어봐야 할 것 같다. 나오면서 찻집 안을 둘러보니 탁자마다 카네이션 등 곱고 풍성한 꽃으로 꾸며져 있고 실내 장식 등이 가장 중국 고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꾸며져 있는 것 같았다. 현지인 복장을 한 손님 등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대화하면서 차를 즐기고 있고 시중을 드는 종업원들이 오가거나 합석해 있다. 좌석은 다 차 있다.
저녁 9시 50분 지나도록 거의 40분 이상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찻집에서 아주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여기 정말 잘 들어왔다고 싶었고 아마 이번 여행 중 이 장면이 가장 인상적일 것 같다. 밖에 나오니 밤이 많이 깊어진 것 같다. 골목에 오가는 사람도 많이 줄어 있다. [2017. 3. 1. 수. 흐림. 후편]
새벽에 호텔에서 잠을 깨 청두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새벽 여명 속에서 어둠으로 회색이 물감이 두껍게 칠해진 것 같다. 이곳의 스모그는 악명이 높다. 오늘은 떠나야 한다. 숙소 나오면서 내가 며칠 묵은 곳의 이름이라도 확인해보니, 가로 세로로 쓰인 대형 간판은 이렇게 돼 있다. Hilton Garden Inn[힐튼花圓酒店]로 되어 있다. '힐튼'에 해당하는 중국어 표기 한자가 우리 한자에는 암만 찾아봐도 없다. 오늘 날씨 계속 흐리다. 이 도시의 총면적은 우리나라 강원도만한데 1,300만 명이 오늘도 북적댄다고 생각하니 좀 답답함이 느껴진다. 위도는 우리나라 제주도보다 더 밑이다. 생활조건은 아파트 한 채에 기본 200만 위안이라니 우리 돈으로 계산하면 대략 3억 위아래 호가하는 만만찮은 가격이다. 더군다나 대지는 국유이고 골조만 제공받고 내부는 각자가 인테리어 해야 한다고 가이드가 설명한다. 오늘 여행 마지막 날, 여태까지 아버지께서 잘 견디시는 게 참 고마우시다. 이 쓰촨 성은 그 넓은 면적만큼 다양한 것을 안고 있다. 문천새마을지진유적지라는 긴 이름이 시사하듯 2008년 쓰촨 대지진의 진앙지로 청두에서 89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엊그제 지나온 중국의 전설적인 성군 우왕의 고향인 문천(汶川), 당 현종 시절 시성(詩聖) 두보(杜甫)의 초당, 역시 같은 시절 시선(詩仙) 이백(李白)의 고향, 그 높이 71미터가 된다는 세계에서 마애석불로는 제일 크다는 낙산대불을 안고 있는 곳이다. 일 년을 꼬박 둘러보아도 다 못 볼 곳이니 두 번이나 찾아왔지만 필경 이쯤하고는 떠나야 할 것 같다.
15:45에 우리 삼대는 쓰촨국제공항에서 쓰촨 에어라인[四川航空] 3U8903에 올랐다. [2017. 3. 2. 목. 흐림.] 2021. 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