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동해남부선/ 달이 뜨면 가리라 해운대 그 바닷가로

청솔고개 2020. 7. 14. 23:51

동해남부선

 

                                                                                        청솔고개

   중앙선 기점에서 09:48 발 동해남부선 하행 편에 오른다. 종착역인 부전역 도착까지는 2시간 걸린다. 자전거로 역까지 가는데 시간 여유가 좀 있어서 느긋하게 가니 출발시간이 5분밖에 안 남았다. 여행은 이렇게 아슬아슬해야 묘미란 듯이. 동해남부선 남행열차다.

   서쪽 창 너머로 열차의 진행에 따라 같이 따라 오는 것 같은 도회의 풍광이 새롭다. 모든 사물과 사건은 이렇게 시각과 시점에 따라 아주 다르게 보인다. 멀리 산자락은 장맛비 구름에 덮여서 흐릿한 여름날의 운치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날, 산의 정기(精氣)로 운우(雲雨)의 조현(調絃)과 금슬(琴瑟)의 묘미(妙味)를 발하는가 보다.

   유적지와 초원이 모두 자주 내린 장맛비에 싱그러움을 자랑하고 있다. 연꽃도 빗물에 씻기어 더욱 해맑아진 얼굴이다. 열차 소리에 길을 살랑살랑 비켜주는 철길 가의 무성한 대숲, 지지고 볶은 아낙네 머릿결 같은 땅버들 잎, 가시 없는 아카시아 수풀의 검푸른 그늘, 철 이른 배롱나무에 맺힌 꽃망울이 한참동안 좌우를 푹 가린다. 열차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다. 짙어진 숲은 풍요로움 그 자체다. 한창 자라서 제 키를 뽑아 올리는 들녘의 벼 포기들도 더욱 건강한 녹색을 뽐내고 있다. 논둑길에는 아직 지다 만 금잔화 송이가 달려 있고 키 큰 개망초는 풀숲 일가를 이루고 있다.

   동행은 내 옆에서 살짝 들떠있다. 나는 이런 여행길이 어쩌면 내 생애 마지막일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이 반짝이는 순간을 기억하려 한다. 동행한테 이렇게 말하려다가 감성노출이 지나친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 비장미도 적절해야 할 것 같다.

   열차는 울산 역 구내로 접어 든다. 문득 나의 고등학교 시절, 이 열차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생각난다. 그때는 배나무 과수원과 미나리꽝이 이어졌던 울산 외곽지에서는 열차가 서행을 한다. 나는 그 열차에서 뛰어 내리는 모험을 자주했었다. 어떤 때는 그 타이밍을 잘 못 맞춰서 그냥 배나무 옆이나 미나리꽝 둑에 내 몸이 내팽개쳐진 적도 있었다. 이른 바 철도 무임승차. 울산에 내리거나 부산까지 가서 다방으로 선술집으로 전전했었다. 그것도 고등학교 교복을 버젓이 입은 채로. 아마 좋게 말해서 그 나이 또래의 누구에게나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닥쳐드는 질풍과 노도의 시대를 지나는 통과제의(通過祭儀) 같은 것이었으리라. 이렇게 미화해 본다.

   역무원의 검표를 피해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하면서 아주 촘촘히 있었던 역에 열차가 서면 일단 내려서 그 뒤나 앞으로 빠져나갔다가 다시 찻간에 오르고……. 그러면 최초로 타는 건 어떻게 하나? 이른바 여객 출입구와는 다른 수화물 출입구(당시는 ‘마르모시’라 칭했음)로 뭔가 급한 볼일이 있다는 듯이 버젓이 들어가면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 걸 이용했던 것이다. 거기서 그냥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객차에 오르면 되는 것이다. 그 수화물 출입구 통로로 들어가는 게 용이치 않으면 이른바 친구나 손님 배웅하는 것처럼 입장권을 끊어서 구내에 들어가서 그냥 객실로 오르면 되는 것이다. 차표가 없으니 내릴 때도 그런 식으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도 이력이 나니 꽤 스릴도 있었고 나름대로 스스로 호기로웠다.

   이제 열차가 동해남부선에서 가장 가까이 해안에 근접한 역을 지난다. 울산과 기장이 나뉘는 근처의 임랑역이다. 그 이름만큼이나 고운, 바닷가 해송 숲이 잘 자라 있다. 보기만 해도 낭만적인 방갈로도 즐비하다. 몇 년 전 늦가을 날, 혼자 도시락 싸들고 여기까지 와서 종일 낚시로 보냈던 기억이 새롭다. 해안이 아주 넓어져서 갑자가 확 트인 느낌이 든다. 해운대가 지금처럼 복잡해지기 전에는 임랑역보다 해운대역이 더 바닷가의 정취가 있었는데 이제 이전의 해운대 역사는  그 이름조차 뜻도 잘 모를 외국어 이름으로 바뀌어버리고 사라졌다. 해운대 백사장도 기차 타고는 볼 수가 없게 돼 버렸다. 노랫말마저 애수에  젖은 ‘해운대 엘레지’의 정감은 찾기가 어려워진 것 같다.

   드디어 종착역인 부전역에 도착했다. 흐린 날이 드디어 비를 뿌린다. 역 바로 옆 꼼장어 식당에 들어갔다. 역전 광장에는 장맛비가 부슬부슬 추적추적. 두 평도 안 되는 선술집 같은 식당에서 밖을 내다보며 매콤하면서도 연탄불 내가 살짝 밴 연탄불꼼장어에 소주 너덧 잔 들이키는 것은 내 생애 최고의 위안이다. 이렇게 장맛비 오는 날은 그냥 선술집 행이다. 오늘도 동행과 온갖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 연탄불꼼장어보다 더 멋진 안주는 살아가는 이야기다.

   40년 전 적수공권(赤手空拳)이었던 한 제자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어제 서울에서 고향  다니러 왔다가 죽마고우 고향 친구들과 주말을 함께 보내다가 올라가면서 어제는 전화해왔더니 오늘은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 제자의 역정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학창시절의 좌충우돌(左衝右突)에서, 청장년 시절의 개과천선(改過遷善) 후, 은인자중(隱忍自重), 권토중래(捲土重來)의 모진 세월을 보내고 결국은 입신양명(立身揚名)의 경지까지 오르다.’ 어쨌든 나에게 이런 제자 하나쯤은 있는 것도 자랑스럽다. 이런 나와 닮은 듯도 하고, 안 닮은 듯도 해서.

   동서남북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한 마을처럼 조성된 부전시장 구경 실컷 하니 아쉽게도 낮술이 확 깨버린다. 흐려서 빨리 어둑어둑 해 질 무렵에 동해남부선 상행선에 오른다. 빗줄기가 더욱 굵어진다. 다시 보아도 찻간에서는 해운대 해변은 흔적도 없다. 이제 나의 해운대 엘레지도 실종되었다. 오래 전 내 청춘시절, 세 시간이나 걸리던 동해남부선 상행 새벽 차 타는 이유는 바닷가 철길로 이어지는 해운대에서 임랑까지 지나면서 보였다 안 보였다하는 일출이었음을 지금에야 알 것만 같다. 무궁화호 찻간에서 덜컹덜컹 흔들리니 술 깨면서 기분은 더 짓눌려 있는 느낌이다. 온 들녘이 우중에 젖어 있다. 이럴 때 나의 화두는 ‘취생몽사(醉生夢死) 혹은 몽중취사(夢中醉死)’

 
(시조) 이별의 종착역/청솔고개
 
비 뿌리는 오후 네 시 내일 떠날 표를 사네
대합실 의자 앉아 여정에 흠뻑 젖어
상하행 길 떠날 사람 배낭에 눈길 먼저
 
여기가 어디인가 중앙선에 출발역
어디로 떠나가나 동해남부선 종착역
무궁화 호 창변에는 장맛비가 흩뿌리네
 
낮술 취해 시장 바닥 이리저리 부랑타가
달이 뜨면 가리라 해운대 그 바닷가로
은파(銀波)로 부서지려냐 월파(月波)에 잠기려나
 
역전 광장 비둘기도 고양이와 정다워
사람 사는 세상도 이처럼 함께 가자
북행은 청량리역에 먼먼 이별의 종착역

                                                         2020. 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