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유비무환 유감/ 인생의 길을 갈 때도 짐을 좀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청솔고개
2020. 7. 27. 08:46
유비무환 유감
청솔고개
산행 때 나는 자주 갈등에 빠진다. 비가 오려는데 우비를 준비해야 하느냐 마느냐 하는 판단이다. 하나라도 더 많이 준비하면 그만큼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는 척추관협착증이 있어 등에 지는 무게를 최소화해야 한다. 한편 우비를 준비하지 않았을 때 느끼는 불안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산행을 하면서도 자칫하면 중지하고 되돌아와야 한다는 우려와 또 하나는 우중 강행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저체온 증으로 인한 감기나 몸살 같은 후유증이다.
이 정도로 생각하면 한편 사려 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또한 너무 생각이 많아서 그 자체가 스트레스일 것 같다.
난 좀 단순하게 살고 싶은데 잘 안 된다. 원시시대 이후부터 내 몸에 전해오는 자기 방어 본능의 유전자 작동 때문인가.
이런 증상은 십여 년 전 어떤 일을 겪은 뒤 훨씬 심해진 것 같다.
그 일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어느 해 오월 화창한 날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내가 근무하는 곳 근처 폭포와 계곡이 참 좋은 곳에 동행을 데리고 같다. 그 얼마 전 동료들과의 친목 모임에서 같이 가 본 뒤 언젠가 꼭 동행하고 같이 가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그날 그곳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 바람 쏘이는 기분으로 그냥 폭포 위쪽만 산책을 하려다가 살짝 숲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활엽교목 군락 아래는 마치 짙은 진초록의 융단 같은 풀밭이 끝없이 이어져있었다. 다른 데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특이한 식생이었다. 마치 진초록의 솜덩이를 이불에서 꺼내서 끝없이 펼쳐 놓은 것 같기도 하고 하늘의 구름송이를 걷어서 땅에 깔아 놓은 것 같기도 했다. 내가 그 카펫에 누우면 하늘로 두둥실 떠오를 것만 같다.
오를수록 끌리는 이러한 풍광과 이날따라 서슴지 않는 동행의 과감한 권유에 이끌리어 그냥 내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 둘의 수중에는 물 한 통과 남은 빵조각 밖에 없는 것을 간과한 게 실책이었다. 오래 전에 이 능선 코스 4km는 내가 두 번 정도 걸어본 적이 있어서 2 시간만 하면 충분하다는 잘못된 판단도 한 몫을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사람의 진을 빼는 이 코스는 그리 만만찮았다. 이런 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진이 다 빠진다. 목표지점은 이 산의 정상이었다.
어찌어찌하여 거기까지는 갔다. 거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이 산은 대도시에 면한 남쪽은 많은 산꾼들이 들락거려 시장터를 방불케 하지만 그 반대편인 북사면은 인적마저 뜸한 곳인 줄은 미처 몰랐다. 우리는 북사면 초행길을 내려왔다. 한 시간을 내려와도 사람 하나 만날 수 없었다. 우리는 사탕도, 물도 다 떨어졌다. 목은 타들어가고 허기가 져서 배가 접어지는 것 같았다. 날도 어둑어둑해지고 오르내리는 사람 하나 구경할 수 없었다. 계곡에는 흐르는 물도 다 숨어 버리고 안 보인다. 머리가 어질어질해 온다. 식은땀이 난다. 이러다 무슨 일을 당하는구나 하는 생각만 들고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이러기를 십여 분, 멀리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염불 소리였다. 그렇구나. 절이 다 가까워오니 뭔가 먹을 것 마실 것을 구할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갑자기 힘이 생겼다. 이미 어둑어둑한데 절 앞에 매달아진 연등은 그 특유의 밝은 색으로 환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부처님 오신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이런 늦은 시각에도 산문으로 들어가는 어떤 참배객을 만날 수 있었다. 구걸하듯 도움을 청했다. “우리가 산에서 내려오는데요, 마실 것 먹을 것 다 떨어져서요…….” 하니, 마침 갖고 있던 오이 두어 개를 건네준다. 우리는 받자마자 고맙다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그 오이를 그대로 우직우직 씹어 먹는다. “휴, 이제 좀 살 것만 같다.” 우린 서로 보면서 웃을 수 있었다. 산문 앞 연등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이러다 조난을 당하는구나. 하는 뼈저린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접시 물에 빠져 죽는다는 옛말은 이를 두고 하는 것 같다.
그 이후 동행은 한 나절 산행에도 어떤 때는 일박 이일 준비를 한다. 과하다고 내가 타박을 하면 그렇게 당해 놓고서도 하는 듯이 눈을 흘긴다.
이후 우리의 산행 채비는 그 무게와 부피가 놀랄 만큼 성장했다. 강박적으로 자꾸만 커져가는 것 같았다. 이런 게 일상생활에도 작용한다. 잠시 외출할 때도 휴대전화는 물론이고 이어폰, 물병, 사탕, 외장 대용량 배터리……. 이런 것 안 챙기면 왠지 불안하다. 날이 조금 흐려도 삼단 접이 우산도 챙긴다. 혹시 자전거를 타면 꼭 고깔이 있는 우의를 챙긴다.
어제 산행에서도 적어도 이 정도는 챙겨야 하는데 우산을 깜빡하고 잊어버렸다. 다시 돌아가서 챙겨올까 하다가 그냥 갔다. 빗방울이 간헐적으로 후두둑후두둑 흩뿌리니 올라가는 내내 불안했다. 좀 늦어지더라도 챙겼어야 한다는 후회감도 들었다. 이런 비는 그리 많이 오지는 않는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이 시국에 가족 중 누구라도 감기 들면 문제 처리가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비는 우리 마음을 아는지 잘 참아 주었다. 내려올 때까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었다. 내려와서야 아무 일도 없었는데 혼자서 쓸데없는 걱정만 했다고 합리화해 본다.
군에서 유격 훈련 행군할 때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내 눈썹이라도 빼 버리고 가고 싶다.”고. 그 만큼 먼 길 갈 때는 작디작은 무게라도 주는 부담이 자심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부터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갖추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생략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그러다가 가다가 길바닥에 쓰러지면 그것도 나의 운명이거니 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요즘 산행할 땐 아이와 동행하면 내 다리 저림이 심하니 아이가 배낭을 대신 진다. 5kg 남짓밖에 안 되는 그 짐을 넘겨줬을 때 그 홀가분함이란 상상이상이었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저자 피에르 쌍소는 “천천히 사는 인생이 더 즐겁다.”고 했다. 뭔가 무겁게 지고 있으면 자꾸 걸음이 빨라진다. 목적지에 한 시라도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에 쫒기기 때문이다. 도착한 곳에서 짐을 내려놓고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산행 때는 물론이거니와 인생의 길을 갈 때도 짐을 좀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천천히 미음완보(微吟緩步)하면서 산천경개(山川景槪)의 멋을 즐기는 선인들의 지혜를 늦게나마 배워야 할 것 같다.
2020. 7.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