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버지!

한 생애의 무게/한 생애를 감당하는 무게가 참 무겁다는 것을 절감한다

청솔고개 2020. 8. 4. 00:33

한 생애의 무게

 

                                                                        청솔고개

   오늘이면 아버지가 입원하신 지 석 달이 조금 지난다.

   며칠 전이다. 낮에 점심 식사 모임하고 자리 옮겨서 차 한 잔 마시는데 아버지는 나한테 대 여섯 번 전화하셨다. 바로 큰집에 가서 빨간색 표지의 잡책과 검은색 표지의 염불 적은 책을 당장 갖다 달라고 하신다. 나는 모임을 서둘러 끝내고 바로 큰집에 가서 서랍과 장롱, 책꽂이 등을 샅샅이 찾아보았다. 빨간색 표지 잡책은 바로 챙겼는데 검은색 표지의 염불 책은 암만 찾아도 안 보인다. 하는 수 없이 한 번도 안 본 것 같은 새 염불 책을 두 권 챙겼다. 빨간색 표지는 아버지가 늘 갖고 다니시던 것으로 거기에는 3~4년 전부터 우리 삼대의 여행 코스 등이 기록돼 있었다. 3대가 간 첫 해외여행인 중국 구채구 코스도 메모돼 있었다. 큰집에서 뭔가 찾을 때 늘 느끼는 것이지만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의 한 생애가 여기 장롱, 책꽂이, 서랍 등 구석구석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머니 가신 지 4년 반이 지났지만 일부러 버린 것은 별로 없다. 

    아버지는 당신의 여행 추억을 떠올리고 싶으신 것 같다. 특히 3대가 동행한 여행에 대한 그리움이 크신 것 같다.

   병원 입원하셔서 당면한 아버지의 어려움은 첫째, 밤에 잠이 안 와서 꼬박 새울 때도 있다고 호소하시는 것,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잠 잘 오게 하는 약을 충분히 처방해 달라 하시는 것. 다음으로는 감방에 갇혀있는 것 같은 이 답답함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서 좀 집에 가서 하룻밤만이라도 묵었다 오고 싶으시다는 것. 잠이 안 와서 부스럭거리고 신경이 예민해져서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는 것 같아서 눈치 아닌 눈치가 보인다 하시면서 1인실이나 2~3인실로 옮겼으면 하신다. 그래야 좀 더 자유로운 생활이 될 것 같다고 하신다. 그 외에도 휠체어 제한 없이 타게 해 달라는 요구, 라디오 청취하도록 허락 등……. 소소한 게 많으시다. 이제 이 모든 고통을 지난 날의 기록이나 불경을 염송함으로써 극복하려고 하시는 것 같다. 같은 병실에 입원하고 있는 환자 중 아버지만큼 정신이 또렷한 분은 없으신 것 같다. 역설적이게도 그러니 더욱 힘드신 것 같다. 

   이 감염 병 시국에 노인요양 시설은 면회는 커녕 출입조차 아주 통제되어 있고 또 안전을 위해 금지하는 물품도 있어서 다 처리해드리지 못해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감염 병 시국만 아니었더라도 병원에서 겪는 어려움이 훨씬 적었을 것이다. 하루 중 잠시라도 나와 대화하고 시간을 보내면 좀 좋아지실 텐데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아버지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되고 남는다. 그래도 아직까지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라서 모든 게 지난날처럼 자유롭지 못해서 이럴 때마다 “이 코로나 시국이 이제 국내 환자 열 명 이하가 계속되니 조만간 끝날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제가 틈나는 대로 면회해서 아버지 휠체어도 밀어들이고 외출 허락받아서 바람도 쏘이고 아버지 잡수시고 싶은 외식도 할 수 있으시니 제발 그 때까지만 좀 견디고 버티고 기다려 주십시오.”라고 내가 녹음 재생하는 것처럼 되풀이하는 수밖에 없다.

   며칠 후에 아버지는 지난 날 함께 했던 모임 두어 군데 회원들의 전화번호가 적힌 명부를 찾아서 갖다 달라고 하신다. 그 외에도 명부 연락처 있으면 찾아 달라고 하신다. 며칠 전 드렸던 빨간 표지의 여행 비망록에 전화번호가 몇 개 적혀 있어서 그리로 전화를 해보았더니 상대방이 매우 반가워하더라고 하신다. 그것도 그것이려니와 당신이 전화 걸면서 옛날 생각도 맘껏 떠올리고 싶어서 부탁한다고 하신다.

   사람이 나이 들어서 심신의 통증이 심해서 견디기 힘들면 한 순간이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절감하겠다. 그래서 몸은 기력의 문제이니 마음대로 안 되겠지만 마음은 스스로 연습과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는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도 퇴직하면서 법사 대학 공부니, 그라운드 골프니 하면서 당신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꾸준히 준비를 하시는 걸 보아왔는데, 아버지가 이런 식으로 갑자기 심신이 허물어지실 줄은 몰랐다.

   이처럼 마음 다스림 훈련과 연습은 마음의 평정, 평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인데 정말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노경을 지나기 위해서는. 내가 평생토록 추구해 온 것이 마음의 평화이니까.

   이렇듯 한 생애를 감당하는 무게가 참 무겁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 무게 때문에 고통이 극심하더라도 그것은 살아 있음의 증좌이리라. 무게가 힘들어 그 무게를 발버둥치고 벗어나려는 순간, 자신의 등짝은 가벼움을 느낄지 몰라도 그와함께 우리의 삶도 서서히 소멸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아버지도 머리로서는 이를 알고 계시겠지만 몸과 마음으로서는 아직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우신 것 같다. 과연 그 무게를 달아보면 얼마나 나갈까.

   아래는 2020년 4월 22일, 약 석 달 전의 아버지 올해 입원 첫날 기록이다. 아버지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는 이런 식으로 등짝에 올려 지는 것 같다.

   오전 10시 좀 지나서 큰집에 갔다. 아버지 상태는 계속 안 좋다. 이번엔 회복이 힘들 것 같다. 동생과 준비해서 인근 대학병원에 모시고 갔다. 1시간 넘게 기다려서 신경외과 주치의 만났더니 심한 설사라서 내과로 모시고 가보라고 한다. 내과 담장 주치의는 입원을 권하는 눈치였다. 심전도, 가슴 엑스레이 등 이런 저런 검사 후 결과 보고 결국 입원 결정을 했다. 이때부터 아버지의 상태는 갈수록 급격히 안 좋으시다. 큰집에 와서 입원과 간병에 관련된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간호사로부터 주치의가 급히 보호자를 보자고 하는 연락이 와서 다시 병원에 갔다. 작년 심장 안 좋은 것보다 지금은 신장 수치가 안 좋은 것이 더 위중하다고 한다. 이번엔 좀 곤란하지 않겠나 하는 말도 한다. 그러면서 심폐소생술, 호흡기 목 삽관술 같은 등 생명연장조처에 허용 여부를 정해서 사인해 달라고 한다. 실시하면 갈비뼈 나가는 것은 기본이고 아버지 정도 복합적인 요인이 있으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다는 말도 덧붙인다. 옆에 동생도 있었다. 다른 가족하고 의논해 보고 결정하면 안 되냐고 하니 당장 어찌될지 모르니 지금 결정해 놓아야 한다고 한다. 젊은 사람이거나, 고령자에서도 한 가지 증상만 있으면 좀 기대해 볼 만한데 복합 증상이라서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한다. 주치의가 우리의 결정을 잘 도와줘서 고맙다. 평소 아내 생각도 이런 것이었으니 내가 결국은 그 두 가지는 안 하기로 결정하고 그렇게 사인했다.

   섬망 증상은 어제부터 계속 진행 중이다. 그 원인은 그냥 몸이 그만큼 안 좋다는 증거라고만…….심한 탈수 증상으로 신장 기능이 나빠져서 몸 안의 독소가 뇌에 작용해서 생기는 증세라고만 한다.

   심장의 물 찬 건 더 악화 안 되고 있지만 호전 기대도 힘들다고 한다. 신장도 아주 안 좋았는데 더 악화 안 된 상태라고 했다, 혹 변에 검은 색 변 나오는 것 안 보았냐고 물어서 변 색깔은 좋았다고 대답해 주었다. 주치의는 그냥 예후를 지켜보자는 듯 같았다.

   집에 와서 늦은 저녁 먹고 있는데 간호사로부터 아버지가 정신없이 주사 줄을 다 뽑고 해서 손 장갑 끼우는 조처라도 해야겠다고 한다. 약과 음식 주입을 위해서 코 줄도 해야 하겠다고 한다. 코 줄은 안 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 집에서 약은 잘 드셨다고 했더니, 지금은 그게 안 된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그리하라고 했다. 한 시간 쯤 뒤에 다시 간호사실에서 연락이 왔다. 코 줄을 끼운데 담당자 어깨를 물었다고 하면서 보호자가 빨리 와 줘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저녁 10시 다 돼서 다시 병원 갔다. 첫날은 이렇게 진행됐다.

   내가 결국 다시 간병인 처지가 되었다. 이제 이력이 나는 것 같다. 어머니 투병, 아버지의 몇 차례 입원으로 이제 많이 익숙해진 것 같다. 또 보조 침대에 몸을 뉘어본다. 이 감촉이 익숙하다. 노트북에 인터넷 연결하니 잘 안 된다. 유튜브를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잠을 청해본다. 오늘은 정말 꽉 찬 하루…….

                                                                               2020. 7.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