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그 여름의 기억 3/움켜쥐지 말자
청솔고개
2020. 8. 10. 00:09
그 여름의 기억, 움켜쥐지 말자
청솔고개
2002년도 여름휴가 시작 된 지 오늘이 5일째다.
지금 나의 마음은 너무 참담하다.
너무 많은 것을 움켜잡으려 하다 보니 이렇게 힘든 것이다.
법정님의 무소유(無所有)를 정말 배워야 하는데, 하면서도…….
눈물이 난다.
이렇게 아등바등 모든 것을 놓지 않고 움켜쥐고 먼 길을 떠나가려는데 대한 스스로에 대한 연민(憐憫)의 눈물인가.
휴가 첫날, 그러니 2002. 7. 21.(일)부터 오늘 7. 25.(목)까지 그냥 서성거리고, 그냥 허둥대다가 오늘 이 순간에 그만 이렇게 주저앉아야만 하는지, 한숨 쉬고 눈감고 가슴을 쓸어내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 마음을 내가 너무 채찍질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지속적으로 심적 평온경(心的 平溫景)을 유지하기에는 심리적 기제가 무척 허약해졌음을 다소간은 감지할 수 있었지만. 이미 현실과 꿈에 연계된 심적 형평성(衡平性)과 평정력(平靜力)을 상실하고 있는 것 같았다. 늘 내게 도지던 내 마음의 병이지 않는가?
내가 암만 생각해도 지난 7. 10.~7. 18.까지는 기말 업무처리에 대한 과중한 심적 부담(負擔), 정신없이 땀 흘리면서 일에 매달린 나의 그 완벽성, 결벽증 같은 습성에 차라리 묻혀 사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치부해버린 데 대한 후유증 같은 걸까?
그래서 내 마음의 평정을 찾기 위한 방편(方便)으로 나는 그 동안 끊임없이 쓰고 또 쓰곤 했었다. 그 동안의 일들을 정리하려고 바로 CD를 열어보니 거의가 지울 수 없는 파일 오류로 나타났다. 이층 주 컴퓨터의 문제로 주요 내용을 CD에 담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기뿐만 아니라 그 동안 연구 과정 모두가 오류 파일로 나타나 버리니 가슴이 철렁한다. 대부분의 자료들이 멸실(滅失)된 것 같다는 생각에 내 가슴에 휑하니 바람이 일고 간다.
물론 7. 10.에서부터 며칠간의 간절한 기록도 아쉽지만 모든 게 이렇게 허망하게 묻혀버릴 줄이야.
그러니 너무 움켜쥐고 가두어 두려고 하지 말자고 늘 내게 대고 해오던 말이 아닌가?
긴요한 것은 대체로 A드라이버에 저장하는 나의 습성에 다소 위안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것도 또한 움켜쥐려고 한 번 얻은 것은 결코 내놓지 못하는 내 심성인가.
삶이 하나의 여정(旅程)이라면 걸어온 길만큼 이미 버려지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버리고 있는데 무엇이 그리 나를 집착(執着)하게 하고 있는가. 덧없는 미망(迷妄)이며, 욕념(欲念)이 아닌가.
단 3일만 가사(家事)에서의 미진(未盡)한 부분을 손보자고 했는데, 그러면서도 너무 많은 욕심을 챙기고 또 다짐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세워둔 달력이나 휴가계획에 메모돼 처리해야 할 일들이 빼곡하다. 휴가가 아니라 밀린 일을 집중화하는 과정일 따름이다. 내 개인 연구 2건 중심 기본 사항 처리, 학교 시범학교 운영 건, 교육부 3주제 워크 숍, 시의 중등국어교과연구회 건, 컴퓨터 자격 건, 각종 자율 연수 건 등을 빨리 착수해야지 마음이 바빠진다. 늘 하루 한시라도 빨리 하자면서 그렇게 맘 졸였는데…….
오늘은 개집 정리에서부터 뭔가 돌발 사태가 자꾸 나타나니 어렵다.
이층에서 연구 관계 작업을 하려고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바로 내려가 보니 우리 집 암컷 강아지 복실이와 수컷 강아지 순돌이가 짝짓기를 하고 있는데 떨어지지 않는다. 목줄을 해서 뒷마당으로 억지로 끌고 가면서 한 발씩 차버렸더니 그냥 쑥 떨어진다. 지난 3월에 복실이가 일곱 마리 새끼를 놓았으나 모두 죽어버리자 아내는 씨 다른 형제끼리 교미해서 열성(劣性)이 극대화되어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믿는다. 이제 또 짝지어버렸으니,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격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옭아 묶어서 근접하지 않게 하려니 구석 청소부터 개집 깔개 정리, 옥외 화장실 정리 등 일련의 일들이 한낮의 나를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다. 아내는 모임에 가버리고 이런 일들은 으레 내 차지. 그늘을 찾아가면서 개털을 떨어가면서 응급조치는 했다. 그런데 이런, CD가 또 사고를 칠 줄이야.
이런 저런 상념을 떠올려 본다.
오늘 오전 아내와 같이 둘째를 바래다주고 근처 공원에서 마침 서늘하게 불어오는 숲 바람을 즐기면서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면서 나의 이 절망적이고 우울한 심사와 그 기분을 전하려 했지만 예의 그 솔직하지 못한 절대 고적의 심경으로 변죽만 울릴 뿐, 이 풍성한 여름의 초입에 나도 모르게 빠져버린 일상과도 같은 업고(業苦)의 화두(話頭), 나의 심경은 얼마나 여리고 아파해 하는가.
나는 언제라도 이러한 절망과도 같은 화두에 익숙해 있지 않는가?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내 마음 내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바, 그날, 아내와 같이 비오는 밤 들길로 진입하면서, 자꾸만 덮여오는 차창의 안개를 지워가면서, 더운 콩국수 한 그릇 한 후 드라이브, 귀로 중 느닷없이 엄습하는 업고(業苦)와도 같은 화두(話頭) 하나……. 나는 며칠째 이런 덧없는 생각에 마음을 주고 사로잡혀 있다. 물론 이 떨쳐버리고 싶은 생각도 나의 일부이니 정말 사랑하자고 지난날 얼마나 나를 타일러왔던가?
휴가의 마지막 날로부터 오늘이 꼭 18일째, 휴가의 그 느긋한 기분은 종적이 없으나 어제 오늘 내일 또 본의 아니게 출근 휴가라는 묘한 형태의 느긋함을 느낄 것 같다. 아폴로눈병이 만연해서 어제(9.9.) 회의에서 휴교 결정했다.
좀 더 여유 있는 삶을 살아가자, 제발 너무 덤벙대지 말고…….
[위의 글은 2002. 9. 10.에 기록한 것임.]
2020. 7.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