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旅情)

그 여름의 여행길/중국 서안, 장가계, 상해 기행보고서 7

청솔고개 2020. 8. 17. 15:14

그 여름의 여행길/중국 서안, 장가계, 상해 기행보고서 7

                                                      청솔고개

 

   2004. 8. 2. 월. [다섯째 날]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05:30에 눈을 떴다. 주섬주섬 준비해서 07:10에 식사하였다. 07:50에 체크아웃 했다. 08:45에 ‘東方航空賓館’[동방항공빈관]을 출발하였다. 시내는 자전거 홍수, 고층건물 천지다.

   먼저 홍구공원으로 출발하였다. 상해의 월요일 아침, 활기찬 모습이다. 옆에 지나가는 2층 버스를 구경했다. 북경까지 가는데 24시간 걸리는데 두 명의 운전자들이 8시간 3교대로 운행해서 안전하다고 했다. 반면에 일반 시내버스에는 에어컨이 없어서 창문을 열어놓고 모두들 부채를 부치면서 더위에 지친 모습이었다.

   홍구공원을 찾았다. 윤봉길의사의 결행 장소에는 그의 호 매헌(梅軒)을 따서 ‘매정(梅亭)’이란 정자를 세워놓았고 큰 돌에는 ‘尹奉吉義擧現場’[윤봉길의거현장]이란 제목 하에 그날 1932. 4. 29.의 의거를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공원 안에는 중국 노인들이 아침 운동하기 위해서 곳곳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거나 체조를 하고 있었다. 제법 큰 연못을 중심으로 양옆으로 이쁘게 꽃을 단 유도화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김구선생이 윤봉길의사한테 거사 전에 회중시계를 선물할 정도로 그를 아꼈다고 한다.

   25세 약관(弱冠) 윤봉길의사는 일본 여인이 데려온 아이를 안고 들어옴으로써 자연스레 부부를 가장하여 거사를 할 행사장을 무사히 통과했다고 했다. 지금 40도의 혹서도 윤의사의 행적을 생각하면 극복할 수 있지 않느냐고 가이드는 충고했다.

   이어서 와이탄[外灘, 외탄]을 둘러보았다. 이 지역은 중국의 치욕의 근대사와 개방의 역사를 대비하는 효과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51개 건물 중 36개 건물이 치욕의 역사를 말해 주는 셈이었다. 포동지역에서 근대화, 개방화를 말해주는 건물은 똑같은 모양으로는 절대로 허가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황포강을 중심으로 동쪽을 포동지역이라고 하고 서쪽은 과거 조차지역인 와이탄[外灘, 외탄]이다. 멀리 황포강 건너서 동방명주가 높다랗게 솟아 있다. 10:00부터는 세계적인 명품 쇼핑센터가 즐비하게 있는 남경로를 거닐었다. 숨이 헉헉 막히게 덥다. 보행전용도로를 거니는 데도 아이쇼핑보다도 입구마다 설치해놓은 에어 컷에 몸을 맡긴다.

   12:00경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를 다시 찾았다. 임시정부가 상해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여건으로는 상해는 조차지였기 때문이다. 조차지는 외교공관지역과 마찬가지로 주둔국의 경찰력이 미치지 않는다. 상해는 일찍이 서구 열강에게 개방되어서 1845년, 1848년에 각각 영국과 미국에게 조차지로 설정되었다. 이어서 프랑스에게도 조차되었는데 이를 불령조계라고 했으며 임시정부는 바로 불령조계지역에 위치한다. 망국의 설움을 이기기 위해서 선열들의 울분과 기개가 넘치던 곳을 두 번이나 방문하게 된 것은 실로 내 생애에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식사하러 빠져나오는데 상해 체육공원을 지나쳤다. 전에 계림 갈 때 이 안에 식당에서 식사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점심식사 후 동방명주(東方明珠)를 둘러보았다. 미국 뉴욕의 마천루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의 분위기와 닮았다. 사회주의 중국에서 가장 자본주의적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황포강 주변의 개발 모습은 역동적이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빌딩숲은 우리를 전율케하는 것은 분명했다. 중국식 자본주의 미래가 여기에 있었다.

   저녁에 공항에 도착해서 탑승하였다. 상해에서 인천까지 1,068㎞로 1시간 30분 소요된다. 지금은 한국시간으로 21:35, 21:50에 도착예정이다. 꼭 10분 남았다. 그리운 인천공항의 불빛이 하나씩 보인다.

                                                                               2020. 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