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旅情)

그 여름의 여행길/중국 황산 기행보고서 4

청솔고개 2020. 8. 19. 08:12

그 여름의 여행길/중국 황산 기행보고서 4

 

                                                                  청솔고개

   2012. 8. 6. 월. 맑음 [넷째 날]

   호텔에서 좀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기 전에 호텔 뜰을 산책했다. 수양버들이 우거진 옆에는 제법 큰 호수가 있었다.  그래서 호텔 이름에 ‘군호(君湖)’가 들어가 있는 것인가.

   서호 유람선 관광에 나섰다. 도중에 뇌봉탑에 올라 서호 전경을 둘러보았다. 중국다운 풍광이 그대로 전개된다. 또다시 발이 많이 저려온다.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쓰이게 하고 싶지 않으니 더 곤란하다. 아내만 내 사정을 알고 있다.

   이윽고 서호(西湖). 아내가 화장실에 가는 바람에 서로 어긋나서 잠시 많이 걱정을 했다. 10년 전에 직장 동료들과 겨울에 구이린[계림, 桂林] 가는 길에 한번 들렀던 곳 아닌가. 날씨가 유독 후텁지근하다. 유람선 위에서 마침 고향 일가 중 내게 조항(祖行)되는 친구의 부인 아지매, 내게 숙항(叔行)되는 친구 부인들과 모처럼 대화 나눌 시간 있었다. 여기서 자연스레 농막과 고추 농사 이야기가 나와 유람선 유람이 끝날 동안 그냥 그 대화에 빠져버렸다. 10년 전 겨울에 여기 처음 왔을 때 느꼈던 여정(旅情)을 조용히 회상해보는 시간은 농막대화로 대신한 셈이다. 좀 아쉬웠지만 여행 중 친구 사이의 자연스러운 대화도 여행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배위에 올라가서 서호의 풍류를 즐겼으면 하는 아쉬움은 버릴 수 없었다. 고추농사와 농막 생활에 대한 그들의 체험담과 격려, 조언이 참 고맙다. 그래서 일가와 이웃, 친구가 소중한 것 아닌가. 여행은 풍류만이 아닌 현실과 생활, 대화와 모색이기도 한 것이다.

   서호 진주를 태호석이라 한다. 베이징의 이화원 곤명호는 이 서호를 부러워해서 서태후가 만든 인공 호수다. 서호 진주는 자연산이다. 22밀리짜리를 서태후가 소장했었다. 서태후는 이게 아까워서 입에 물고 죽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서호의 역사를 보면 소동파가 제방을 쌓은 적이 있었는데 이를 ‘소제(蘇堤)’라 하고 백거이(白居易)가 제방은 쌓은 걸 ‘백제(白堤)’라고 한다. 이 호수가 항주의 서쪽에 있다 해서 서호(西湖)라고 한다. 또 중국의 경국지색 서시(西施)가 살았던 곳이라 해서 서호라고도 한다. 항주의 인물에는 남자는 악비(岳飛), 여자는 서시(西施)를 으뜸으로 꼽는다. 저녁에 볼 송성가무쇼의 일부도 악비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것이다.

   성황각, 성황묘를 둘러보고 다시 영은사로 향했다. 이 영은사도 두 번 째 방문이다. 처음 여기 동료들과 왔던 그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이 염천 더위에 굴뚝처럼 뿜어져 나오는 향불 연기와 그 기운은 더욱 숨 막히게 한다. 볼 때마다 그 규모의 크기로 모든 것을 승부하는 듯한 대륙적 기질이 그대로 보인다. 대단히 큰 부처와 수많은 보살상, 역시 중국은 인해전술다운 물량 공세다.

   식사 때마다 반주 즐기는 건 큰 기쁨이 된다. 다 잊고 醉生夢死[취생몽사]!

   상하이까지 버스로 이동했다.

   저녁에 서커스 관람을 했다. 술은 한 잔 했더니 누적된 여독(旅毒)으로 잠이 몰려와서 제대로 못 보았다.

   오늘은 여행 후 귀향 마지막 밤 어쩐지 아쉽지만 피곤한 몸을 우선 추슬러야 된다는 생각 땜에 밤엔 한 곳에 합류하지 않았다.

 

   2012. 8. 7. 화. 맑음 [마지막 날]

   여행 마지막 날, 반주(飯酒)에라도 푹 빠지고 싶은 아쉬움, 안타까움이 남는다.

   식사 후 홍구공원에 가서 윤봉길의사 기념관과 폭탄 투척 장소를 관람하였다. 아무리 조국에 헌신할 의기(義氣)의 사나이라지만 죽음 앞에 그렇게 담담할 수 있다는 건 정녕 높은 정신세계를 지닌 분이 아니신가.

   중국과도 정들었던 가이드와도 또 이별. 아쉽고 또 아쉽다.

   14:20. 상해 푸동 공항 출발, 16:50. 부산 도착 후 버스타고 차 안 모니터를 통해서 바로 여행 중 찍은 기념사진을 감상하였다. 즐거운 순간순간. 19:00. 고향 도착.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고향 동갑내기들과의 회갑 기념 추억 여행길, 길이 간직할 거다.

                                                   2020.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