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旅情)

뉴욕의 늦여름 10일간의 작별/미 동부 및 캐나다 동부 기행보고서 1

청솔고개 2020. 8. 19. 12:07

뉴욕의 늦여름 10일간의 작별/미 동부 및 캐나다 동부 기행보고서 1

 

                                                                   청솔고개

   2003. 8. 15. 금. [첫째 날]

   오늘 광복절이다. 날씨는 더없이 맑다.

   5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미진한 준비는 잠결에 했다. 이러한 여행 준비는 아직까지 내게는 끝없는 낭만적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 아이들과는 미운 정이 더 많이 들었어도 막상 깨워서 간다고 말하려니 내 가슴에서 뭉클한 것이 솟구친다. 첫째와 둘째에게 노파심 짙은 당부의 말은 애써 아끼면서 명념할 내용을 적은 안내문을 전화기 옆의 벽에 붙여 놓는 것으로 대신했다. 미리 좀 주지시키자는 나의 제안에 아내는 극구 만류했다. 아이들의 생리를 잘 알기 때문일 터. 그리고는 떠남의 인사, 헤어짐의 인사를 나누었다. 첫째가 대문간에서 멀어지는 우리 내외의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정경이 나에게 아련한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킨다. 내 딸아이한테서 이러한 느낌을 가진 것은 처음이다. 불현듯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게 10일간 헤어짐의 기분이라는 것일까? 나 스스로도 가정과 가족의 의미와 이산의 의미를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딸아이의 표정에도 그래서 어린 마음에 열흘 동안 책임지고 가정을 꾸려가야 한다는 부담감 등등, 여러 감정이 교차하고 그래서 이렇게 아이는 처음 보는 낯선 표정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오전 10시 15분에 집에서 출발하였다.

   10시 40분 발 대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역전 정류소는 8월의 마지막 양광으로 따끈따끈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딸아이의 수시 입학 문제로 한 군데 연락을 취하고 나니 그래도 미안한 감이 좀 가시는 것 같다. 터미널을 거쳐 벌써 가없는 상념의 날개를 동승한 버스에 싣고 떠난다. 참 오랜만에 시외버스를 타는 것 같다. 대구공항은 유니버시아드대회 보안 관계로 철저한 검문검색이 펼쳐지고 있다. 공항대합실 입구부터 금속 탐지기로 검색 당해 보긴 처음이다. 맹렬한 경보음이 울린다. 주물 로 된 쇳덩어리 버클이 말썽이었다. 아뿔싸! 어쨌든 앞으로 이게 좀 말썽을 부릴 것 같은 예감이다.

   구내식당에서 우동, 김밥으로 점심 식사했다. 2층 탑승구 입구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비행기 시간을 기다렸다. ㅇㅇ자동차 소장에게 24일 새 차 찾으러 간다고 전화 통화도 완료했다. 홀가분한 기분이다.

   대합실 밖으로 내다보이는 정경이 오늘따라 정겹고 새롭다. 여정에 대한 설렘 때문인가? 벌써 늦여름 기운이 서늘하게 느껴진다. 좀 높아진 하늘에 뭉게구름, 세한도 풍의 키 큰 소나무, 그래, 괴테의 이탈리아기행 서두에 나오는 이탈리아 여행 준비하는 여름 새벽의 서늘한 분위기와 기분이 바로 이랬을 거다. 하루만의 여정, 작년 법성포 가는 길, 삼나무 숲 이어진 길가는 그 날 새벽에도 이런 분위기였지.

   또다시 아이들 생각이다. 아이들은 당장 우리들이 없는 밤을 9일이나 보내야 한다. 순간 만감(萬感)·만상(萬想)이 교차한다. ‘참 좋겠다!’고 하는 딸아이의 말이 내 가슴을 후벼 판다. ‘그래 너희들도 우리처럼 열심히 살다보면 이렇게 훌쩍 떠날 수 있단다. 열심히 살아가는 세상의 많은 부부들처럼 보장받을 수 있다. 이런 여유를 즐길 수 있다’하고 속으로 타일러 본다.

   새삼스럽게 이런 상념에 빠져 있는데 문득 탑승권을 좌석권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나의 말이 믿어지지 않은지 그냥 심드렁한 표정이다. 이때는 무조건하고 현장 확인이 상수(上手)다. 정말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 사실로 확인함과 동시에 2시발 김포 행 국내선에 올랐다. 아름다운 대구 경북의 늦여름 산하가 구름사이로 언뜻언뜻 말갛게 고운 얼굴로 선을 보인다.

 

   14:50 김포공항 정시 도착.

   15:10 김포공항 출발 인천공항행 버스로 출발.

   15:45 인천 공항 도착.

 

   인천 공항. 한마디로 대단하다. 규모가 웅장하고 뛰어난 디자인 감각이 물씬 풍긴다. 동북아시아의 허브공항으로서 손색이 없다고 한다. 아직 지금 규모의 몇 배로 확장이 되어야 한다니 그 전체 규모를 상상하기 어렵다. 대 한국의 기상과 위상을 보여준다.

 

   91번 탑승구 앞에서 아내와 같이 모처럼 밀렸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리는 시간의 지루함을 여행의 기대감과 설렘으로 즐겼다. 북쪽으로는 대규모의 창이 훤하게 나 있어서 비행기의 움직임을 소상히 바라볼 수 있었다. 바다를 메워 만든 공항의 거대한 규모만큼이나 장거리 여행은 기다리고 절차 밟고, 지구력과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가 보다.

 

   오후 7시 30분에 뉴욕 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7시 40분 출발 예정인 아시아나 비행기가 30분 연발(延發)된다는 기내 방송이 들렸다. 그러면 8시 10분에 출발된다. 모처럼 아내와 같이 밀린 많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바로 이때다. 아내의 알레르기 피부병, 신차구입 비용 건, 이번 여행비 건, 딸아이와의 통화를 통한 마지막 집안일 부탁 및 수시 모집 결정 건 등 주로 현실 생활에 관한 이야기다. 딸아이와 통화하면서 막상 열흘 동안 헤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 혼자 마음 고생하게 해 놓고 훌쩍 떠나온 마음이 쨍하기 짝이 없다. 둘째는 과외수업 받으러 가고 첫째는 독서실에서 혼자 투혼(鬪魂) 중에 있다. 기특하다.

   

   오후 8시 10분에 뉴욕 행 비행기 출발했다.

   출발 2시간 경유, Asiana항공 222편은 그동안 인천-강릉-동해-일본 열도 나고야를 거쳐 드디어 북태평양 상공으로 진입하고 있다.

   한국시간 새벽 3시 39분 비행기는 로키 산맥을 가로질러 에드몬턴, 캘거리 상공으로 날고 있다. 비행 고도 1300m, 항속1,077㎞, 외계기온 -48℃, 5시 44분 위니펙 상공 통과, 한국시각 8월 16일 새벽 7시, 현지 시각 아직 8월15일 오후 5시를 머물고 있다. 시간과 공간이 정지되는 듯한 기내의 분위기를 바꾸려고 문득 창문의 작은 커튼을 여니 푸른 하늘에 휘황한 비 북부 대륙을 비추는 기름진 햇살이 구름사이로 내리 꽂힌다. 한국시간 8시 35분 온타리오 호수 위에 있다. 도착 55분 남았다. 로체스터, 버펄로, 시카고, 디트로이트 등 미국 동북부 주요 도시가 멀티비전 모니터에 명멸한다. 특히 오대호 상공으로 비행하는데 특히 어리 호수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에 더욱 초점이 맺힌다.

 

   저녁 9시 25분(8월 15일 지금부터는 현지 시간임)에 뉴욕 J․F․K 공항 도착했다.

   드디어 세계의 심장 뉴욕 케네디 공항에 도착하였다. 모두들 내심으로 다소 긴장했나보다. 특히 뉴욕이라는 지역적 특수 상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비행기 연결 관계로 10분 정도 기내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기장의 정중한 안내 방송이 들린다. 기내에는 중국인 탑승객이 꽤 많이 있다. 옆자리에 앉아서 줄곧 굵은 목소리로 유쾌한 여정을 즐기던 그들도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 같았다. 항공사에서는 모두들의 편의를 위해서 그들을 한 곳으로 모아주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인천 공항에서 13시간 비행시간이 걸렸다. 거리가 더 짧다고 생각되는 미 서부 샌프란시스코도 이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린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마 위도의 항법 차이에 기인할 것으로 판단되지만 선뜻 이해가 안 된다.

 

   나는 가져간 비디오카메라로 뉴욕에 무사히 입성한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몇 차례의 같은 내용의 안내 방송을 되풀이하면서 기장의 목소리는 점차 기운을 잃고 있었다. 45분이 경과했다. 아직 비행기는 계류(繫留)장에 들어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뉴욕, 세계의 중심마저 이렇게 교통체증에 시달린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어느 책에서 읽은 뉴욕 인상기에서 혼돈과 복잡의 중심이라는 표현이 생각난다. 10분 늦어진다는 기장의 안내 방송은 결국 정보의 부정확한 전달이라는 오류를 증명할 뿐이었다.

   나는 속으로 도대체 어느 국적의 항공기가 힘센 자랑한다고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가 하고 흥분했었다. 그런데 이제 사단(事端)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10시 20분경 기장의 안내 방송은 뉴욕시의 대규모 정전사태로 벌써 3시간 넘도록 출발하지도 못한 비행기가 있을 정도로 그 후유증이 심각하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아내가 아침인가 뉴욕 주 나이아가라 폭포 발전소에 고장이 있어서 뉴욕을 중심으로 동부의 넓은 지역이 정전의 혼란을 겪고 있다는 TV보도를 보았다는 말을 해 주었다. 거대한 물질문명의 총아(寵兒)로 번성 일로를 달리는 U․S․A도 이렇게 전 도시의 기능이 마비되고 있는 현장을 목격했을 때의 기분은 야릇했다.

   입국 심사대에서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입국자 세관신고서에 비자발급날짜를 겹쳐 썼더니 직원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두 차례나 거부당했다. 또 구여권에 있는 미국비자와 신여권의 사진이 그들이 보기에는 좀 다른 데가 있다는 듯, 미심쩍은 눈길은 불안함보다 아직은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별로 기분이 개운치는 않았다. 나의 여행 과정 처음 겪는 사태였다. 어쨌든 수속시간이 2시간 25분이나 걸려서 겨우 입국할 수 있었다. 계류장 도착 지연과 더불어 또 하나 사건, 짐 찾는 시간 1시간 소요 또한 복잡한 미국 사회 시스템의 취약점을 보는 것 같았다.

 

   저녁 11시 5분 버스로 호텔을 향해 출발했다.

   일행들의 구성을 확인해 보았다. 아시아나 항공에서 모두 19명이 아시아나 연합관광이라는 이름으로 인천에서부터 동행한 셈이다. 이어서 1번 터미널에서 KAL 탑승객 3명을 태워서 일단 22명의 여행단이 결성되었다.

   대기하고 있던 38만 달러짜리(한화 약 4억 원 상당)로 소개하던 대형버스에 승차하여 숙소로 출발하였다. 버스 차창으로 내다보는 뉴욕일대의 밤은 한마디로 어두컴컴한 그 자체였다. 버스 차창이 짙은 선팅을 하여서 불빛이 많이 죽어 보인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어두워서 사람들의 얼굴을 잘 식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테러는 아니라 지만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짐작에, 우리가 어쩌면 테러의 중심에 와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숨길 수는 없었다.

   현지 가이드 장ㅇㅇ씨가 걸쭉한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하였다. 공항을 출발한지 20분쯤 되었는데 벌써 시간은 자정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호텔 저녁 식사 예약을 벌써 취소되어 버렸고, 호텔 근처 햄버거 스토어에서 더블사이즈(2개)햄버거로 때웠다.

 

   자정이 다되어 가는데도 일군의 흑인 남녀 젊은이들이 뭐가 그리 즐거운지 히히거리며 남의 눈은 전혀 의식하지 않으며 마구 떠드는 모습에서 미국식 자유주의의 전형을 엿볼 수 있는 것 같았다. 과장된 몸짓과 표정으로 기분들을 만끽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서 여기가 뉴욕의 변두리 한 지역임을 비로소 실감하겠다. 깜깜한 뉴욕시티의 첫인상, 나는 어둠 속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며 가이드가 가리키는 왼쪽은 양키즈 스타디움의 뉴욕 메츠 야구 경기장, US 오픈 테니스 코트, 호러스 한인 사회 거주지 등 96번 도로 연변을 찍으면서 정신없이 메모도 시작했다. 왼쪽의 맨해튼 지구는 야경도 좋은데 지금은 전력 사정 때문인지 아니면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별로 볼 것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바로 화이트 스토운 블리지를 건넜다.

   가이드는 뉴욕을 네 구역, 즉 퀸즈, 부롱스 등 한인들의 거주 실태를 중심으로 설명을 하였다. 롱아일랜드와 뉴저지 주 사이 헨리 허드슨 강을 이어주는 조지 워싱턴 브리지는 1931년에 만들어졌고 위 8차선 아래 6차선 총 14차선의 특수 공법 다리이며, 여기 포트 Lee는 Lee장군의 묘소가 있는 뉴저지 주의 관문이라고 소개했다.

 

   우리가 묵는 첫날밤 호텔은 HOLIDAY INN SADDLBROOK이다. CNN에서는 연신 ‘POWER BLACKOUT’이라는 자막이 이어진다. 뉴욕의 정전사태 속보였다.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 대중 매체보도의 속성이라지만 좀 심했다.

   우리의 미 동부 도착 첫날은 이렇게 마무리 돼 갔다.

                                                     2020. 8.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