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旅情)

뉴욕의 늦여름 10일간의 작별/미 동부 및 캐나다 동부 기행보고서 2

청솔고개 2020. 8. 19. 13:13

뉴욕의 늦여름 10일간의 작별/미 동부 및 캐나다 동부 기행보고서 2

 

                                                            청솔고개

    2003. 8. 16. 토. [둘째 날]

   실질적인 첫 여행길, 시차에 신체적인 적응이 다소 혼란스럽다. 새벽 3시에 취침, 새벽 5시 기상했다. 그러나 잠을 잤는지 말았는지 그냥 멍한 상태, 가수(假睡)상태랄까. 이렇고 보면 2시간 겨우 잔셈인데, 실제로는 비행 속에서 11시간 시차를 전부 수면 등 휴식으로 보냈으니 잠은 부족할 리는 없다. 새벽 6시 30분에 식사를 하였다. 오랜만에 맛보는 호텔의 아침식사 빵과 육류, 과일, 채소, 음료가 골고루 곁들여진 이 식사가 내게 딱 맞다. 나는 영락없는 보헤미안인가 보다.

   가이드 미스터 장의 차분한 설명이 이어진다. 접근방식이 차분해서 가슴에 와 닿는다. 왕성한 기억력을 동원하여 미국 대륙의 발견에서부터 현재 독립국으로 세계 최고의 강국으로 발전하기까지의 과정을 마치 대학 강의식으로 진지하게 설명해 준다. 어떤 사람은 지루해 할는지 몰라도 나는 맘에 든다. 미국 건국정신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는데 이 역시 미국인들의 시각으로 보는 것에 불과하다. 만약 인디언이나 흑인의 시각으로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를 본다면 어떻게 되는가. 역사는 이렇게 어떤 시각, 입장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엄청난 인식의 차이를 가져온다. 어쨌든 아메리카 건국사의 이면에는 분명코 오늘의 미국을 형성하는 그 무엇은 있다. 종족과 자연과의 끝없는 투쟁, 그 와중에서 다져진 동류의식(we-feeling) 같은 것이 오늘날 200여 종족이나 아우르면서 이렇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마음속에는 이렇듯 역사의 현장에서 끝없이 용솟음치는 호기심과 질문감이 가득 차 있다. 95번 동서대륙 횡단도로는 뉴저지 리틀 페리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진 3일 걸린다고 했다. 한국 유선방송 57번 여행 전용 채널에서 시청한 바 있는, 이미 잊어지는 동서횡단 66번 도로에 대한 미국인 추억과 사랑이 생각난다. 이 도로는 골드러시의 물결을 타고 미 서부 개척의 애환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추억의 도로인데 그 66번 도로는 여기서 어디쯤 되는지 가보고 싶다. 오전 8시 55분에 동부여행단 중간 집결지 슈퍼마켓 주차장에서 나머지 여객을 기다렸다. 이렇게 집결하고 나니 54인승 버스에 일단 42명이 합류했다. 계속 합류하여 오늘 오후가 되면 거의 다 찬다고 했다.

   이제 워싱턴(WASHINGTON) D․C로 향발이다. 우리의 여정 총 거리는 2,300마일, 약 4,000㎞, 우리 이수로 만 리 길이다. 뉴저지(NEWJERSEY)주는 한국 면적의 1/4, 인구 800만, 주의 별명은 가든 스테이트[garden state, 물과 나무의 주]이다. 이어서 미국 50개 주 중에서 가장 먼저 생긴 델라웨어(DELAWARE)주, 메리라는 영국의 왕족의땅이라는 뜻을 지닌 메릴랜드(MARYLAND)주를 거쳐 워싱턴(WASHINGTON) D․C로 계속 남으로 내려갔다. 12시 45분 경 인구 300만 명의 항구도시 볼티모어 시를 통과했다. 이곳은 해저터널도로가 유명하고 특히 미국의 국가 ‘성조기여 영원하라!’의 가사의 발상지라고 소개하였다. 워싱턴(WASHINGTON) D․C 근처를 지나간다. 미국 정치의 중심이다. 미 국방부(PENTAGON)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직 복구가 덜 끝난 듯 복구 장비가 보인다. 새로 보수한 건물의 벽채 색깔이 다르다고 설명해 준다. 그런데 이 건물은 너무나 단순하고 평범하게 보였다. 미국 패권주의 상징인데 그냥 납작한 성냥갑 같은 건물이었다. 멀리서 보아서 그런지 운동장보다도 더 넓은 주차장, 그리고 좀 작아 보이는 창문들이 보일 뿐이었다.

   오후 1시 30분경 드디어 워싱턴(WASHINGTON) D․C에 도착했다. 다시 12명 합세하여서 모두 54명, 대 여행군단이 완전 결성되었다. 버스는 거의 정원을 다 채웠다. 뉴욕을 떠난 지 4~5시간, 이제부터는 그 옛날 초등학교에서부터 교과서에서 말로만 배웠던 곳을 직접 가보는 것이다. 나는 ‘이제부터 미국의 정체성, 양면성, 이중성 및 세계전략을 내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을 재화인해 본다. 나의 모든 감각, 사고 기관을 동원하고 촉수처럼 동물적인 감각을 집중해야 한다.’고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다지고 있었다. 이제부터다. 당초 계획했던 아메리카 문명의 허(虛)와 실(實)에 대한 나의 입장을 밝히고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워싱턴 D․C는 프랑스의 공병 장교인 설계자가 계획하였다. 그 당시 벌써 폭 20-30m 도로가 방사형으로 배치된 점이 특히 선견지명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원래 이 도시를 흐르고 있는 포토맥 강은 갈대와 벌레가 기승을 부리는 늪지대였는데 이 도시를 완성하고부터는 세계 정치의 1번지로 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제퍼슨 기념관의 동상과 백악관을 마주보게 하고 링컨 기념관의 동상과 국회의사당을 마주보게 함으로써 견제와 협력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점이 더욱 인상 깊었다.

   점심 식사는 오후 1시 50분 경 ‘삼보’라는 한식당에 순두부찌개로 했다. 양도 많았으며 다소 짠 것을 제외하면 먹을 만했다. 일행 중 한, 두 팀이 팁이 습관화되지 않아서 다소 민망한 모습을 연출하였다. 식사 전에는 이상한 피곤함과 절망적인 생각의 엄습으로 무척 불쾌한 기분이었으나 식사 후 포만감은 이 모든 것을 일시에 날려버렸다. 여행 증 식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 본다.

   우리는 여행 증 식사에 대해서 너무 편의주의적 발상을 한다. 행자(行者)는 잘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탐욕 넘치는 자기합리화이다. 행자(行者)-수행자(修行者)가 아님-혹은 행려(行旅)자는 육신과 정신의 안락함을 너무 추구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끊임없는 고행(苦行)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마음의 바탕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많은 행비(行費)를 내었으니 그 만큼 꼭 보상받아야 한다거나 누리려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특별한 고행(苦行)을 겪은 후에 오는 긴 열락(悅樂)의 정신 평화 경을 우리는 간과(看過)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인도에서나 중세 유럽의 많은 수행자, 선지자들은 여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구하려고 하는가 하고. 따라서 먹는 음식, 자는 잠자리에 너무 민감하다보면 여행길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많은 것을 놓친다. 나는 돈 주고 사는 고행이 바로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몰론 고급 휴양지에 며칠 간 푹 빠져 있다가 오는 새로운 패턴은 여행이라기보다 휴양, 쉼, 릴랙스라고 명명해야 한다. 여행은 심신의 고통을 동반해야 한다. 육체적이거나 심리적 고행이 진정 행자(行者)의 깨달음을 북돋워준다. 지금보다 나의 여행길이 더욱 고달파질지라도 나는 여행할 것이다. 여행에 마치 최면이나 마술에라도 걸린 듯이 빠져 들어서 비싸게 준 상품을 마음껏 즐기지 못했다 해서 아쉬워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오십 평생에 내 마음에 평화가 찬란한 호수 면처럼 관조의 경지를 느끼던 때가 과연 몇 차례나 되었을까?

   먼저 미국 국회의사당[Capitol]을 찾았다. 미국을 이끌어 가는 거대한 흰 건물의 위용이 눈앞에 펼쳐졌다. 전에는 사전에 연락만 하면 건물 내부에 들어가 보았었는데 이제는 안 된다고 했다. 왼쪽 건물이 상원이고 오른쪽 건물이 하원이다. 바로 미국 민주주의의 산실이라고나 할까?

   이어서 스미소니언박물관(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을 찾았다. 우주항공관은 나라의 역사가 일천하여 상대적으로 정신유산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미국인들의 편집(偏執)적인 정신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인들은 불과 몇 십 년도 안 되는 어떤 사실을 정리하여 무슨 무슨 전시관, 기념관 같은 것을 만들어서 보여주길 좋아한다. 7년 전 미 서부 모하비-애리조나 사막 여행 때 그들이 한 때 노동 현장이었으며 서부개척 골드러시의 상징이었던 은광 등 폐광 마을마저 잘 보존하여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데서 알 수 있었다. 서부개척시대의 교회, 자질구레한 생활상을 보여줄 수 있는 여러 건물들도 그대로 남겨서 관광자원으로 삼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의 역사 및 기록 보존에 대해서 많은 것을 느낀 기억이 떠오른다. 길고 긴 사막여행길에 이러한 옛 마을 보존은 자칫 단조로운 구경꾼들에게는 좋은 볼거리로 작용할 것은 틀림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양동이로 물을 들어 붓 듯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로 차안에서 10여분은 족히 꼼짝 못하고 있다가 가까스로 들른 이 항공우주관에서의 풍경은 좀 달랐다. 아버지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자상하게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많은 자료들을 설명하는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미국의 우주 정복 전략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는데, 뉴요커나 아메리칸들의 대단한 자부심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연사 박물관에서는 오랜 기간 원주민 인디언들의 역사의 현장이 되어버린 북미대륙의 자연사를 입증할 수 있는 거대한 나무화석, 코끼리 박제, 공룡 뼈, 광물, 동식물 등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44.5캐럿짜리 블루 다이아몬드 ‘호프’는 유명세만큼 실감은 나지 않았다. 1640년 인도에서 들여온 이래 이 다이아몬드 소유주들이 모두 비운을 맞이하는 일명 ‘저주받은 다이아몬드’는 특별 전시되어 있지만 별다른 감동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거대한 공룡 뼈가 내게는 더 실감나게 다가왔다.

   백악관[White House] 앞 광장에 도착했다. 이 건축물의 분위기는 좀 잘사는 미국 상류층 저택 같다. 울타리 너머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그 안쪽에 흰 석조건물은 그림같이 앉아있다. 비둘기 몇 마리가 오르내리락하고 있다. 그 때 일행 중 최고령자 여행객이 갑자기 넘어져서 머리에 피가 나는 가벼운 사고가 발생했다. 민망한 모습을 뵙는 듯하다. 고로 ‘발품이라도 세게 팔 수 있을 때 떠나라!’라는 카피라이터가 생각난다. 한국통일 기원 퍼포먼스를 주도하고 있는 한국 국적인 듯 한 할머니의 모습이 이채롭다. 그 할머니의 손에 쥐어져 있는 태극기가 내게 주는 감정은 참 복잡하였다. 애틋함 같은 거, 슬픔 같은 거가 복합된 거다. 합법적인 자기주장은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는 나라. 집회와 시위의 문화가 성숙한 이 나라의 면모를 보는 듯해서 마음이 묘하다. 한국전쟁기념 조형물을 찾았다. 대체 한반도에서 미국은 이제 무엇이란 말인가? 특히 그 어떤 이유나 설명을 다해서 말한다 해도, 미국 시민으로서 한국전 참전 용사들의 희생, 전쟁 기념조형물을 보는 순간 나의 준비된 논리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드디어 나의 여행 증후군 시작되었다. 하루 종일 피로, 또다시 그림자나 악령처럼 따라 붙는 여행 증후군, 가끔은 이런 것들이 오히려 나를 더욱 뭔가 생각하게 하는 행려자(行旅者)로 만들게 한 것이지만 왜냐하면 내가 이국정취에 그대로 몰입해서 그 환상과 다름과 경이로움에 주저앉게 하지 않은 묘한 작용 때문이다. 눈이 감기고 속이 메스껍고 다소 어지러운 증상에도 안내자의 설명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신고를 다하려고 감겨지는 눈 거죽에 더욱 힘을 가한다. 그래서 95번 도로 뉴욕에서 워싱턴D․C 로 이어지는 이 대륙 동안 종단도로 주변에는 심술 나고 얄미울 정도로 가꾸어진 숲길 그 자체의 무성함이 미국인들의 세계화 전략의 왕성함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서 종국에는 내 가슴 한켠에는 경이와 찬탄보다 어떤 절망감, 무력감, 단절감 같은 것으로 남는다. 아, 이 땅이 이렇게까지 탐욕적이란 말인가! 이렇게 4시간이 넘도록 95번 길을 달리고 있지만 문득 문득 나의 가슴에 남는 애틋함-지, 호 우리 아이들에 대한 배려와 기억이다. 아내는 애써 집 떠나오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란다. 그러나 그 매정함, 매몰참에 나도 동참하고 싶지만 좀 화도 난다.

   워싱턴(WASHINGTON) D․C의 숙소 COMFORT INN 513호(버지니아 주 VIRGINIA)에 도착했다. 여행 제 2일 밤을 보낸다. 아내는 벌써 여독에 중독된 듯 잠에 빠져들었고 내 생애에 중요한 어제부터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밖에는 밤새도록 버지니아 처녀림들의 일상과 역사가 이루어지고 끝 간 데를 알지 못하는 이 처녀림들은 오후부터 내린 굵은 빗줄기로 싱그럽게 한여름의 욕망을 발산하는 듯하였다. 버지니아의 검푸른 한밤, 마치 심해에 일렁거리는 무성한 해초를 연상케 한다. 그들은 그래서 강렬한 아메리카의 생명력을 잉태하고 있는 것이다. 여사(旅舍) 구석의 잔등(殘燈)아래 이렇게 진실 된 기록을 남기면 마음이 안정되고 역시 잘 떠나왔다는 생각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결코 휘황한 눈요깃감 찾기, 게걸스러운 먹을거리를 찾아가는 것이 여행의 진정한 목적은 아닐진저. 웨스트 버지니아나의 짧은 밤에 긴 생각을 정리해본다. 문득 존 덴버(John Denver)의 '컨트리 로드[Take Me Home, Country Roads]'가 생각난다. 미국 대중문화를 선도한 팝 아트들의 정신세계를 통해서 미국 정신에 접근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미국 정신의 한 단면을 이해하기 위해서 일찍이 점찍어 둔 책을 한 권 준비해왔다. 솔로우의 ‘솔로우의 일기’이다. 그는 그의 일기를 이렇게 말했다. “나의 일기는 추수가 끝나고 들판의 이삭줍기다. 일기를 쓰지 않았더라면 들에 남아서 썩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오늘 저녁부터 틈나는 대로 이 일기를 통해서 아메리카 정신을 들여다 볼 것이다. 지금은 새벽 네 시다. 여사에서 하루의 여정을 정리하는 것은 곧 나의 정신사를 정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2020. 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