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旅情)
뉴욕의 늦여름 10일간의 작별/미 동부 및 캐나다 동부 기행보고서 10
청솔고개
2020. 8. 21. 15:21
뉴욕의 늦여름 10일간의 작별/미 동부 및 캐나다 동부 기행보고서 10
청솔고개
2003. 8. 22. 금. [여덟째 날 후편]
이제 여기 그라운드 제로를 떠나서 부두로 향해 간다. 오전 11.15에 출발하여 이스트 리버를 따라 자유의 여신상 등 강안을 여행할 배를 타야하기 때문이다.
강은 바다 같이 폭이 넓었다. 강이라 해도 되고 바다라 해도 될 것 같았다. 배를 기다리면서 부두의 부대시설을 찾아보았다. 바깥의 찌는 듯한 더위는 계속되었다. 짙은 습도로 마치 흐린 날처럼 부옇게 된 이스트 강은 북아메리카를 배경으로 한 열 폭 병풍의 수묵화로 담기에 적절한 듯 보였다. 바로 왼쪽에는 아주 익숙하게 느껴지는 두 다리가 있었다. 화려한 치장한 거대하고 정교한 다리, 맨해튼브리지(Manhattan Bridge), 브루클린 브리지(Brooklyn Bridge)였다.
엷은 운무를 뚫고 짧은 크루즈 여행은 시작되었다. 오른쪽 강안에는 마치 죽순처럼 뻗어 오른 크고 작은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선내 방송은 천천히 잘 들을 수 있도록 계속되고 있었다. 방송에 귀 기울일 여유는 없었다.
브루클린 다리 밑을 지나가니 멀리 희미한 시야를 뚫고 그림에서나 보던 자유의 여신상이 눈에 들어왔다. 전에는 저기 내려서 살펴보았는데 9.11테러이후 다중 집합 장소라 하여 금지되었다고 하는데 참 아쉬웠다. 자유와 평등의 건국이념으로 세워진 아메리카합중국의 상징 기념물이다. 그리고 그들이 선도하는 세계 질서의 재편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예상할 수도 없는 불확실성 그 자체인데 이를 위해 세계는 너무 많은 비용과 희생을 감수하고나 있지 않는지. 우리 내외는 자유의 여신상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이 거대도시의 위용에 압도당한 듯 미니 크루즈 여행을 진행했다. 바람은 선선했지만 태양열은 과열되어 있었다. 자유의 여신상의 실물 얼굴 표정이 어떤가 싶어서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머리에는 관을 쓰고 오른 손에는 횃불, 왼 손에는 문서를 들고 있는 르네상스풍의 균형 잡힌 미인상이었다.
자유의 여신상 (The Statue of Liberty : 문화, 1984)에 대한 두산세계대백과사전의 기록을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 뉴욕항의 리버티 섬에 세워진 거대한 여신상. 원래는 ?자유는 세계를 비친다. (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로 불렸다. 프랑스 국민이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서 기증한 것으로, 1875년에 조직되었던 프랑스․아메리카연맹이 기금을 모금하고, F.A.바르토르디가 동상의 고안을 맡았다. 모델은 몸매는 자기애인 얼굴은 자기 어머니였다고 했다. 두꺼운 동(銅)을 늘여서 만든 연판제(延板製) 동상으로 1884년 프랑스에서 완성하여 해체해서 미국으로 옮겨졌고, 1886년 10월 28일 미국 대통령 클리블랜드의 주재로 헌정식을 하였다. 대좌석 위에 세워진 이 여신은 오른손에 횃불을 쳐들고, 왼손에는 ?1776년 7월 4일?의 날짜가 적힌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다. 횃불은 당시 등대의 역할을 했다. 무게 225t, 횃불까지의 높이 약 46m, 대좌 높이 약 47.5m이다. 전체 높이 92m, 내부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머리 부분 가까이까지 오를 수 있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배는 미끄러지듯 떠간다. 반환점을 돌아 다시 부두에 배는 도착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우리 차의 운전자가 아직 오지 않아서 찜통더위에 무척 힘들었다. 모두들 지친 표정이다. 끈적끈적한 무더위가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점심은 한군데 한식당에서 먹었다. 식사 후 시내 중심 마천루(摩天樓) 지역을 걸어서 관광했다. 세계의 중심이라는 뉴욕, 그 중심인 만하단 거리를 정말 바쁜 뉴요커들과 같이 걸었다.
드디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이 나타났다. 그런데 수리 중이라 그물로 가려버려서 꼭대기를 볼 수 없었다. 낙석의 위험을 방지한다고 하지만 저 보이지도 않는 꼭대기에서 뭔가 떨어진다면 그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 것 같아서 왠지 불안하고 짜증스러운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그 안으로 들어갔다. 복잡하다. 많은 사람이 떼밀려 올라간다. 여기서는 도저히 단체로 행동할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서 기다리는 동안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뿌연 안개 속 희미하게 보이는 크고 작은 건물들이 열병식을 하는 듯이 버티고 있다. 동서남북을 둘러보았다. 가이드는 열심히 설명하지만 나는 도저히 그 설명이 와 닿지도 않을뿐더러 머리가 더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 브로드웨이, 스퀘어 등을 설명하지만 혼란스러웠다.
G․E 건물을 중심으로 19개의 거대한 빌딩 군, 옐로우 캡(yellow cab) 등 차분한 뉴욕의 동서남북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위에서 보니 안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일종의 스모그 현상이 틀림없었다. 뉴욕의 날씨는 뉴욕의 여자들만큼이나 변덕쟁이라나. 아쉬움을 뒤로하고 올라올 때 탔던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줄을 섰다.
오페라하우스, 뉴욕시립극장, 줄리아드음악학교, 뉴욕시립교양악단[New York
Philharmonic], 성패트릭 성당[St. Patrick's Cathedral]을 거쳤다. 성패트릭 성당 입구 기둥의 부조는 하나의 예언은 뭔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9.11의 참상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고 성당은 아직 짓고 있다. 악명 높은 할렘(Harlem) 가는 이제 탈바꿈을 하고 있다고 했다.
오른쪽으로 센트럴파크(Central Park)를 지나왔다. 도심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 숲이 많다고 하는 미국이지만 여기는 빌딩 숲만 지천을 이루고 있었다. 자유의 여신상을 숭상할 정도로 자유와 평화에 대한 갈망은 높았으나 빌딩 숲 속에서 치열한 국제경제의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는 살벌한 도시 그 자체였다. 이 도시의 경제력은 전 세계인들에게 군침이 도는 미끼였다. 할렘이란 아랍말로 아방궁이라고 했던가. 아무튼 좋은 이름이었는데 그 새 슬럼이라는 말로 바뀔 정도로 낙후되었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 또 서서히 그 악명을 씻어버리려고 많은 유리한 조건으로 사람들을 모으려고 했다.
다시 한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각자 행선지대로 헤어졌다. 모두들 황황한 걸음, 도로 공항으로 가는 일행은 4분지 1도 안 되었다. 모두들 며칠에서 몇 달간 체류연장 상태, 유학 준비, 어학연수, 이민 준비 등으로 남은 계획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존 에프 케네디 공항[John F. Kennedy International Airport]으로 향하는데 한없는 아쉬움과 미련 같은 것이 엄습한다. 우리는 지친 몸을 끌고 아시아나 항공 OZ 221편에 탑승했다.
밤12:10에 출발했다.
공항 청사의 밝은 불빛도 심신이 지친 나그네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다시 비행기 속에서의 17시간은 밤낮이 없는 아득한 원시의 시공이었다. 솔로우일기를 한 쪽, 한 쪽 읽으면서 마음의 청량제, 위로제로 삼고 자연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았다.
새벽 3시 10분(아래부터 한국시간)에 급유를 위해 앵커리지 국제공항[Anchorage International Airport] 에 도착해서 1시간 30분 정도 머물렀다.
새벽 4시 40분에 앵커리지를 출발했다.
여명의 어스름이 퍼져오는 곳은 분명 동녘이리라. 거쳐 오는 알래스카 만, 툰드라 지역 상공, 바로 아래 지상의 대지에는 아름다운 호수와 꽃들이 있을 터, 언젠가는 한 번 밟아 볼 것이다.
2020. 8.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