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가을날의 동화 2, 나락 논 이야기/책보로 싸맨 도시락에 딸깍딸깍 젓가락 소리가 요란히 박자를 맞춘다
청솔고개
2020. 9. 8. 22:20
가을날의 동화 2, 나락 논 이야기
청솔고개
초가을이다. 온 들녘이 누래`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의 색깔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마을 국민학교 동기들은 모두 열 넷, 그 중 열이 남자고 넷이 여자였다. 당시 한국전쟁 직후 베이비부머 풍조의 결과다. 학교에서 공부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1킬로미터도 체 안 되는 짧은 거리였지만 우리 열 악동(惡童)들은 늘 손이 근질근질하고 심심해한다. 뭐 재미있는 것, 해볼 것 없나하고 옆을 두리번거린다. 악동들은 오늘 따라 더욱 심심해서 못 견딘다. 뭐, 재미있는 구석은 없나싶어 살피다가 옆에 지나가는 여생도 하나 보고 그냥 “야야, 저 봐라. 니 머리에 벌이 앉았다.”하고 소리친다. 여생도는 정말 그런 줄 알고 제 머리 벌을 살핀다고 한눈 파는 사이에 악동은 여자애를 나락 논에 살짝 밀쳐 넣어버린다. 다행히 질벅거리지 않은 논바닥이라 그냥 떠밀릴 정도였는데, 이번은 잘못 건드린 경우 같다. 이 여생도도 성질 또한 보통이 아니다. 그냥 성내거나 눈 흘길 정도로 그칠 경우가 아니다. 엉금엉금 나와서 그 아이한테 앙갚음한다. 두들기고 꼬집고 막 팬다. 아프다고 소리치면서도 그 남생도는 이런 상황을 미리 예견하고 은근히 즐기는 눈치다. 여생도의 리액션이 크면 클수록 그 재미도 커지니 밀침을 당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늘 무료하고 심심하다. 그런 기분이나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자연 발생적 또래 놀이라고나 할까. 남생도가 덩치나 몸피로 봐서는 여생도에게 늘 달린다. 왜냐하면 당시 부모들이 여자아이들의 삼분지 이 정도를 학령보다 한두 살 더 먹여서 입학시키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발달 과정에서도 같은 나이이면 유소년 시절에는 여자아이의 심신이 더 숙성한 것은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남생도는 그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도망치면서 달리다 보니 발바닥에 땀이 난다. 고무신 바닥에 먼지가 들어가 미끈거리니 급기야는 고무신을 모두 벗어들고 마을로 가는 고개 언덕 위로 삼십육계 줄행랑을 친다. 다른 여생도들도 합세해서 그 아이를 공격해 대니 당할 수가 없는 거다. 여기에 동조한다고 나머지 남자아이들도 덩달아 고무신을 양손에 벗어들고 마구 달린다. 책보로 싸맨 도시락에 딸깍딸깍 젓가락 소리가 요란히 박자를 맞춘다. 마을 언덕까지 오르는 길은 운동회 마지막 경기인 단축 마라톤 코스가 되어 버린 것 이다. 외말 우리 마을 그 악동들의 이런 거친 행태로 ‘땡피부대’라는 악명을 근린까지 떨쳤었는데 이런 일 때문인 것 같았다. 그 아이는 오늘 여자 ⁰땡피들에게 제대로 한번 톡톡히 독하게 쏘인 셈이다.
60년도 더 지난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때 그 여자아이들이 내심으로는 우리 남자아이들의 그런 거친 장난을 은근히 기다리고나 있지는 않았는지 하는 혐의가 있다. 그 후 고향마을에서 간간히 들려오던, 누구와 누구는 눈이 맞았고 또 누구와는 배까지 맞아서 그렇고 그런 사이더라 하는 소문들이 그 충분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가을날 오후,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시간은 이렇게 흘러가곤 했다. 추수하기 직전까지 소를 부릴 일이 있거나 해서 소 먹이러 안 가면 그날은 들의 나락 논에 나가라는 작업지시가 기다리고 있다. 해질 때까지 ¹활대를 들고 ‘후여! 후여!’하면서 참새 떼를 쫒는다. 그 일이 오후 일과가 된다. 혼자 하는 이 일만큼 지겨운 건 세상에 없다. 혼자 가을 들판에서 새떼를 쫓는다고 서 있는 일은 열 살 전후 사내아이가 감당하기엔 참 힘든 일이었었다. 그래도 저 멀리 몇 몇 내 또래 친구들도 나처럼 새 ²훝는다고 후여후여 하면서 있는 목청, 없는 목청 다 뺀다. 이렇게 들판의 나락 논바닥에서 우리의 가을은 깊어가는 것이다.
2020. 9. 8.
[주(注)]
⁰땡피 : ‘땅벌’의 토박이 말
¹활대 : 대나무 작대기란 뜻으로 “장대‘의 토박이 말
²훝는다고 : ‘쫓아낸다고’의 토박이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