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旅情)

홋카이도의 늦가을 자작나무 숲길, 둘째 날(2/2)/희뿌연 수은등 아래 운하의 강물이 조용히 흐른다

청솔고개 2020. 11. 14. 00:39

홋카이도의 늦가을 자작나무 숲길, 둘째 날(2/2)

                                                   청솔고개

 

   늦가을 해가 이미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이상하게 해가 일찍 지는 것 같다. 비교적 북위도라서 그런가 보다. 우리는 자주는 석양에 바쁜 나그네였지만 여기서는 느긋하게 운하 가운데 다리에 있는 양지바른 벤치에 앉는다. 낡은 창고 건물 위로 늦가을의 높은 구름이 떠 흐르고 있다. 그 구름이 운하에도 떠서 흐른다. 나는 여기까지 입고 온 잿빛 생활한복 소매를 여미고 포즈 취해 사진도 남겨본다. 준비해간 간식도 먹었다. 정말 자유롭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지금 이 순간의 행복감을 오래 기억하자고 했다. 운하는 끝이 안 보이게 이어져 있다.

   다음 다리까지 갔다가 다리를 건너본다. 다시 돌아와서 운하 반대편 창고 옆길을 걸어보았다. 한국에서부터 준비해간 안내서에 소개된 110년 된 ‘가마에이[かま榮]’ 어묵공장을 찾아보았다. 먹을거리에 목을 매는 아내 취향에 맞추어서 들어가 보았다. 자리에 앉아서 한참 쉰다. 각종 어묵을 천천히 살펴보고 사 먹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서 그런지 많은 주부들이 어묵 사러 들락거린다. 여기서 푹 쉬었다. 자유 여행의 묘미다. 어묵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좀 달라진 것 같다. 맛이 좋다. 어묵이 이렇게 고급 식일 줄은 몰랐다. 여기서 오후 3시 좀 지날 때까지 있었다.

   나와서 아까 보아 두었던 “和樂[와라쿠]” 회전 초밥 집을 찾았다. 종업원의 일본어로 뭐라고 설명한다. 간단한 영어 설명도 곁들인다. 잘 알아 들을 수 없었다. 우리에겐 초밥이 아직 생소한 음식이라서 그럴 것이다.

   처음엔 어떻게 주문하고 또 먹는지 몰라서 눈치만 살피고 있는데, 바로 오른쪽 중년 남자 한 사람이 말을 걸어온다. 양념 통 찾아서 찍어 먹는 방식 등 시범을 보이면서 열심히 설명한다. 자기는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한국어는 배우지 못했지만 영어, 러시아어, 독일어는 능숙하단다. 좀 지나니 물미가 틔어 결국 연어, 성게 알 초밥까지 시켜 먹었다. 부드러운 생선과 생선 알의 식감도 좋지만 밥맛이 기가 막혔다. 둘이서 무려 18개를 시켜 먹었다. 4,663엔을 지불했다. 나중에 시킨 연어, 성게 알 같이 비싼 건 한 쌍에 4,5백 엔 하는 것도 있었다. 나중에 성게를 뭐라 하는지 몰라서 한영사전에 찾아보니 ‘a sea urchin [chestnut]: an echinoid’로 나와 있다. 이렇게 해서 여행 영어 하나 습득하나 보다. 포식했다. 기분 좋다.

   이제는 많이 어두워졌다. 지금은 멋진 설경은 기대하지 못하겠지만 많이 알려진 오타루운하의 야경은 어떤 느낌을 줄까? 희뿌연 수은등 아래 운하의 강물이 조용히 흐른다. 주변의 형상에 따라 그림자가 고요히 일렁인다. 주변은 어둑어둑하다. 벤치에 앉는다. 잠시 이국에서 상념에 젖어본다. 많은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중국인들이다. 잠시 둘러보고는 바로 오타루 역 방향으로 갔다.

   구내 들어가자 바로 JR열차가 있었다. 이제 능숙한 방식으로 매표기 기계에서 표를 끊고 탔다. 삿포로 역에 내려서 다시 지하철로 바꿔 타고 호텔 옆 나카지마고헨 지하철역에 무사히 도착했다.

   호텔에 바로 들어가려다가 이제 삿포로 도심에서의 마지막 밤이라고 생각하니 좀 아쉽다. 내가 아내한테 옆에 있는 마트에 한 번 가보자고 했다. 삿포로, 아사히 상표 캔 맥주 각 1통, 귤 한 봉지, 찹쌀모찌 4개 합쳐서 1,152엔어치 샀다. 이것도 여행의 한 즐거움 아닌가. 저녁 8시 다 되어 호텔에 들어오니 로비에서 종업원들이 늘 하던 것처럼 친절하게 맞아준다.

   오늘 저녁에도 노트북에 인터넷을 연결해서 한국의 KBS 방송을 시청도 하고 인터넷 검색도 했다. 가져올 땐 무거워서 힘든 것 같았지만 여기서는 여행 정보 등도 잘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 [2014. 11. 11.화. 맑음]

 

                                                                                2020. 1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