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旅情)

홋카이도의 늦가을 자작나무 숲길, 넷째 날/공항 출입 도로에도 키 큰 자작나무가 열병식을 하듯 서 있다

청솔고개 2020. 11. 16. 21:06

홋카이도의 늦가을 자작나무 숲길, 넷째 날

                                                          청솔고개

 

 

 

   새벽에 잠 깨서 창밖을 보니 비는 그친 것 같다. 혼자 다시 지옥곡으로 가 볼거나 하다가 아내 혼자 두고 가려니 맘이 내키지 않아 새벽까지 견뎠다. 엊저녁 그 지옥곡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밝은 날 그 민낯은 안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이런 내 나름대로의 못 가서 아쉬움을 달래는 합리화 논리를 설정해 본다.

 

   준비해서 나가니 10시 다 되었다. 하룻밤 풋사랑이란 말처럼 이 ‘石水亭’[SEKISUITEI, 세키쉬테이 료칸]호텔을 두고 가려니 참 아쉬워 다시 한 번 돌아보고 그 모습도 채록해 놓는다. 드디어 출발, 버스 너덧 대가 동시에 출발하는데 료칸 전 직원 종업원들이 버스 맞은편에 나란히 도열해서 버스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면서 배웅하고 있었다. 이런 광경은 몇 차례 일본 방문 때 보아왔던 광경이라 좀 익숙해진 듯 했다. 그래도 그 친절은 참 고맙다. 그들의 진정한 속내는 잘 모르겠지만 예절만큼은 기릴 만하다.

 

   신치토세 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말끔히 개 있었다. 하늘은 흐리지만 비는 오지 않아 어제 어둠 속에서 보았던 바다도 다시 보인다. 아쉽다. 오늘 드디어 여정의 마지막 날, 비록 짧았지만, 그래서 더 강렬하다. 아쉬움, 설렘, 감동을 더 크게 안겨 준다. 짧아서 더욱 그런 것 같다. 공항 출입 도로에도 키 큰 자작나무가 열병식을 하듯 서 있다. 이곳을 말해주는 나무, 자작나무인가.

 

   11시 좀 지나 공항에 도착했다. 어떤 한국인 여행객이 일본 국내선 청사에서 쇼핑할 게 많다고 안내해 준다. 우선 거기 갔다가 마음이 급해 우선 절차를 확인해 놓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이 든다. 2시 55분 비행기 출발 시간이니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만 출국 탑승 수속을 위한 여행사, 항공사 위치를 우선 파악해 놓아야겠다 싶어 아내의 느긋함을 일축하고 우선 안내센터에 문의했더니 내가 한국임을 알고는 일본어로 안내하다가 여행사 **투어를 바꿔준다. 안내센터 바로 오른쪽 티웨이항공사에 12시 30분까지 가서 수속하면 된다고 안내해 준다. 이게 수순이다.

 

   다시 긴 통로로 따라 국내선 청사 쇼핑센터에 갔다. 치즈콘, 카라멜 콘 등 780엔, 찹쌀모찌 4개 560엔을 주고 사서 어제 먹다 남은 오뎅과 같이 점심 요기를 했다.

 

    첫날 신치토세 공항에서 친절하게 안내해 주던 ***님이 생각이 나서 감사의 전화라도 하고 싶어서 전화를 거니 일본어가 나와서 그냥 끊어버렸다. 언젠가 문자메시지라도 한 번 전해 드려야 하는 게 도리일 것 같다. 외국 나오면 다 이렇게 애국심이 생기는가 보다. 며칠의 여독 때문인지 다리가 좀 저리다. 이럴 땐 또 새로운 절망이 시작된다.

 

   티웨이 항공사 앞에 가서 항공권 교환을 했다. 일본인 직원이지만 우리말을 잘해서 큰 불편은 없었다.

 

    드디어 이륙, 출발이다. 원래 2시 45분 이륙인데 2시 40쯤 떴다. 좀 가다가 올 때처럼 난기류로 기체가 심하게 요동친다. 아내는 또 내 팔을 꼭 붙잡는다. 그래도 올 때보다는 덜 심했다. 그땐 정말 그처럼 심하게 요동친 걸 경험한 적은 내 기억에 없었는데, 다만 구이린 갈 때 중국 동방민항의 상태가 좀 그랬고 귀국할 때 몇 번 선회해서 겨우 착륙했던 기억이 있다. 피로해서 그냥 잠 들다가 깨 보니 조국 대한민국의 창공과 산하가 전개된다. 드디어 첫 자유여행은 이렇게 무사히 ‘여행 성공’인가. ‘여행 성공’, 내겐 맞지 않은 용어 같다. ‘세상에 성공 아닌 여행은 없다’라고 고쳐야 할 것 같다. 감개가 무량하다. 드디어 세계적인 대한민국의 인천국제공항에 무사 안착했다. 연착륙이다.

 

   다리가 또 저려온다. 짐을 찾고 내려가는 차표를 끊고 오늘 두 번이나 전화 온 기록이 있는 아버지한테 전화를 했다. 어머니가 심하게 편찮으시단다. 며칠째 식사도 안하시고 해서 병원에 입원시키려 무리하게 휠체어에 태우시려다 그냥 빠져버려서 온몸에 상처가 나고 이로 인해 마음이 상한 아버지가 어머니와 심하게 싸우고 함부로 대했다면서 무척 힘들어하시면서 자책도 하신다. 내일 아침에 들리겠다고 말씀드리고 나서 전화를 끊었지만 마음이 또 무거워 온다.

 

   김밥과 우유로 저녁 요기하고 7시 30분 공항 리무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드디어 일상으로 돌아간다. 마음이 또 무거워 오려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견디는 거다.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 아닌가. 스스로 다독여본다. 눈을 감고 마음을 안정시켜 본다. 3박 4일의 여정이 푹푹 스쳐간다. 밤 12시 지나 터미널에 정말 최종 안착했다. 감회가 새롭다. [2014. 11. 13. 목. 흐림]

                                              2020. 1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