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어린 다섯 마리 모두가 엄마아빠 제비와 같이 힘찬 날갯짓으로 비상하는 것을 보면서 내 가슴을 쓸어내렸다
제비
청솔고개
엊그제 밤늦게 아버지 보살펴 드리고 큰집에서 나갈 때, 마당 나뭇가지와 추녀 끝, 어둠 속에서 뭔가 새 소리 같은 게 들려서 보았더니 제비 한 쌍이 보인다. 3년 내리, 올해도 또 제비의 방문이 있는가 싶었는데, 어제 오늘 자세히 확인해 보니 정말 제비 내외가 작년에 기거했던 제비집에 들락거리는 게 보인다. 참 반갑다. 나는 옛 친구를 다시 만난듯하다. 우리 집에 살러 온 제비를 보니 괜히 우리한테 뭔가 좋을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 동안 우리 집에서 제비살이가 뜸하다가 재작년에 살러 온 제비부부는 새끼 다섯 마리를 부화했다. 다산이라 참 좋았는데, 새로 집짓기가 힘들어서 그런지 오래 전에 다른 제비가 지어 놓은 집에 생각 없이 입주했다. 아래서 봐도 그 집은 식구에 비해서 평수가 너무 좁아서 하루하루 커 가는 덩치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다. 적이 걱정이 되더니만 하루는 결국 새끼 두 마리가 마당에 떨어져 꼼지락 거리는 게 아닌가. 벌써 잔 개미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너무 불쌍하고 안 돼 보여서, 내가 조심스레 그 두 놈을 다시 집어넣어주고는 또 아래로 떨어질까 봐, 그 아래에 종이, 스티로폼 박스 같은 걸 높이 쌓아주고 떨어지더라도 그 안에 살짝 들어가도록 해 놓았다. 혹 떨어지더라도 치명상 입지 않게 해 놓았다. 약육강식이라는 동물 생존 세계에서 아마 떨어진 두 놈은 더 약해서 먹이 경쟁에서 다른 튼실한 놈들에게 떼밀려 떨어진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마음 졸이며 올 때마다 늘 제비집과 그 아래를 살펴보았지만 괜찮아보였다. 뜨거운 그해 여름을 나고 어느 가을날 오후, 나뭇가지에 앉은 식구는 모두 일곱. 이렇게 온 식구가 함께 앉아 있는 걸 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 결국 무사함을 확인했었다.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린 다섯 마리 모두가 엄마아빠 제비와 같이 힘찬 날갯짓으로 비상하는 것을 보면서 내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가 키운 건 아니지만 내 자식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다행이고 기뻤다.
그래서 그 후손들이, 따지면 그 손자뻘들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우리 집 처마를 둥지로 삼은 건 혹 아닐지 모르겠다. 제비집 바로 밑, 마당의 바닥은 늘 하얗고 까만 제비 똥이 쌓인다. 어린 시절 시골집에서는 농사 일손이 바빠 이 똥마저 아주 귀찮아했던 할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도 온 식구들이 늘 조심하고 소중하게 제비를 대접했던 기억은 있다. 똥이 쌓여도 좋다. 이전에도 수차례나 제비가 우리 큰집에 둥지를 틀었었지만 이렇게 연거푸 손자제비까지 오는 건 처음이라서 제비 부부가 더 반갑고 고맙다. 제발 올해도 우리 집에서 제비 부부가 인간들처럼 티격태격 부부싸움, 가정폭력 같은 건 하지 말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 식구 많이 불리고 튼튼히 키워, 가을에는 남쪽나라 너희 고향에 무사히 돌아가기를 빌 뿐이다.
제비의 우리 집 입주라는 좋은 일에 즈음해서, 나는 나의 현재 삶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만큼이라도 유지되기를 제비 부부에게 빌어본다. 단연코, 제비를 빌미로 해서, 니 할애비제비를 좀 도와준 일이 있었으니 흥부처럼, 나나 우리 집에서 좋은 일 생기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라고 선언한다. 내게 제비에게 부탁할 소망이 있다면 이집 주인장이신, 자리보전 우리 아버지 통증 좀 가시게 하고, 기운 차리시어 툭툭 털고 일어나시게 해 주는 것, 그리고 예부터 전해오는 말, “인심 좋은 집에는 제비가 들고, 솜씨 좋은 집에는 장맛도 좋다.”는 것만은 진실이었으면 한다.
우리 큰집에는 지금 두 채의 제비집이 있다. 하나는 3인용 서민 주택이고 하나는 6인용 대가족용이다. 앞으로 내가 바라기는, 매년 우리 큰집 처마에 달려있는 제비집 두 채 모두에 두 쌍 제비 식구가 다 입주하고 비어있는 제비집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대대손손 제비 후손이 번성했으면 좋겠다. 2020. 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