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아내와 일 1/“언즉시야, 말인즉 자네 말이 맞소.”
청솔고개
2021. 1. 17. 04:32
청솔고개
아내가 어깨가 아프다고 하소연한다. 왼쪽 어깨에 심한 통증이 있단다. 무거운 것을 운반하는 작업 때문에 근육이나 힘줄이 무리해서 일 것이라고 일단 추정을 했다. 나보고 두드려 달라하기도 하고, 사용 안하던 안마기를 가지고 두드려주니 자지러질 듯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면 목 디스크? 왼쪽만 아프다하니 혹 풍 운? 온갖 의학 지식을 다 동원해서 진단해본다. 지난 성탄절이 들어 있는 토요일은 쉰다고 해서 아내보고 거의 협박에 가까운 어조로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막무가내다. 내가졌다. 그러고도 또 새벽부터 출근한다고 야단법석이다.
출근 첫날 풍경 스케치는 이러하다.
새벽 다섯 시 알람 소리에 내가 먼저 깬다. 우선 보일러를 급탕으로 작동해 놓는다. 한 10분 후 아내를 깨운다. 처음에는 잘 일어나더니만 지체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그러면서 밖의 정수기를 급수로 작동한다. 샤워하고 난 후 아내는 출근 준비에 돌입한다. 주로 화장이다.
내가 우리만의 아침 건강을 위한 비방 식단을 조제한다. 우유 두 컵을 데운다. 홍국균미, 마가루, 청국장가루를 타서 우유에 녹인다. 홍삼정 5알, 비타민 2알, 프로폴리스정 1알, 오메가쓰리 1알씩 처방하고 아내에게는 칼슘제 1알을 더한다. 이게 주식인 셈이다. 부식으로는 삶은 고구마, 빵, 밥 중 하나가 오른다. 빈도수는 순서대로다. 고구마를 세 상자나 얻어 놓아서 썩기 전에 이걸 빨리 먹어야하기 때문이다. 후식으로 귤, 바나나, 사과가 번갈아 오르고 요구르트는 빠지지 않는다. 식사가 끝나면 대략 7시 30분, 아내는 칫솔질 하고 코트를 걸치고 방을 나선다. 우리에게는 서로에게 치유의 효과를 주는 나름대로의 인사법이 있다. 아침에는 아무리 바쁘지만 한 번씩 살짝 안는 시늉을 하면서 어깨를 다독여 주는 것이다. 이어서 대문간에서 하이파이브 흉내를 내면서 주목을 불끈 쥐면서 포효하는 시늉, 아니면 팔과 손으로 하트그리기 등. 이것이면 우리의 출근 과정은 완료다. 이걸 해야 아침 기분이 살아난다. 힘이 솟는다.
아내의 어깨 통증이 점점 심해져서 병원가자고 다그쳤던 그 날로부터 3일 후, 아내는 퇴근 시간에 자진해서 피부과에 데려다 달라 했다. 정형외과부터가 아니고 왜 피부과일까 속으로 의아해 했다. 얼마 안 있어 진찰 받고 나오는 아내의 표정이 좀 야릇했다. 대상 포진이란다. 아내가 먼저 말했다. 아무래도 들은 게 있어서. 정형외과에 먼저 갔더라면 괜히 헷갈리게 되었을 것이라면서 자신의 선택에 매우 만족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내는 열심히 치료에 임하고 있으면서 좀처럼 알바를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기가 막힌다. 팀 4명이 조를 이루기 때문에 혼자 빠지기 어렵다는 둥 온갖 구실을 다 동원한다.
오늘은 드디어 아내가 알바 그만두는 날이다. 아내가 선언했다. 자진해서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젊은 여자 대학생들의 알바팀과 교체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아내는 홀가분하기보다는 섭섭한 표정이 더해 보인다. “잘 됐다. 안 그래도 힘들어 팀원들에게 폐를 끼쳤는데 끝까지 같이 하게 되어서 모든 게 해피엔딩이다”라고 말은 하면서도 12년 전 구조조정으로 20여년이나 다니던 은행 전화교환직을 그만 둔 후 가장 길게 잡아본 자기 일에 대한 미련과 애착은 그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이런 아내의 모습이 왠지 안스러워 보였다. 은행 퇴직 후 그 동안 너덧 종류의 봉사 단체에 가입해서 총무 등 살림살이로 많은 체험을 해왔던 아내에게 이번 일자리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었을 테니까. 비록 일당 몇 만원 밖에 받지 못하는 일용 임시직이었지만. 나는 이런 아내의 의중을 알면서도 모른 체하면서 이렇게 너스레를 떨어본다.
“그런데, 여보시오. 왼쪽 부위에 퍼져가는 대상 포진 증세는 어디 가서 하소연 하노? 어떤 보상, 어디다가 보상 받는고. 산재 신청은 할 수 있는가. 혹시 아프다고 요령피우고 하던 당신 땜에 생산성 떨어진다고 4명 모두 집단 해고된 거 아닌가? 어쨌든 체험 삶의 현장 치고는 비싼 인생 수업료를 치른 셈이라고 생각하소.” 아내 왈, “이제 젊은이들 어려운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나이 많은 우리는 물러나 줘야 하는 것 아니겠소.” 아내의 논리는 이렇게 빈틈없이 마지막이 완벽에 가깝다. 그래서 내 답하길 “언즉시야, 말인즉 자네 말이 맞소.” [2010. 1. 22.] 2021. 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