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旅情)
풍진만리(風塵萬里), 중국 남부 여행 기록, 넷째 날 오전, 구이린[桂林], 관암(冠岩)동굴/‘계림산수천하지미예’(桂林山水天下之美藝), 남방의 연꽃이나 난의 잎처럼 생긴 봉우리들
청솔고개
2021. 2. 12. 01:24
풍진만리(風塵萬里), 중국 남부 여행 기록, 넷째 날 오전, 관암(冠岩)동굴
청솔고개
중국 남서부 여행은 서서히 아쉬운 종반으로 치닫는다. 가는 곳마다 다소 희한한 사건, 사고(?)가 기다리는 여행이라서 더욱 아련한 아쉬움이 남는가. 그러나 아직 우리 내외를 기다리고 있는 마지막 사고가 있을 줄은 몰랐었다. 새벽 4시 조금 지나서부터 아내가 먼저 일어나 샤워를 하고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감는데 갑자기 안정기가 탈난 듯 정전이라는 돌발 사태가 발생하였다. 나는 그 때 샤워를 막 하기 시작했다. 온 몸에 비누칠을 하고 물을 끼얹으려 하는데 불이 가버렸으니 정녕 낭패로다. 대충 짐작으로 몸을 헹궈내고 우선 객실의 문을 열어 복도의 불빛이 들어오게 한 다음 맞은편 G2님 방에 염치불고하고 쳐들어갔다. 아내는 하던 머리를 마저 손보아야 하였고 나는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G2님의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는 바. 현지가이드에 연락해야 하나, 아니면 인솔 가이드 ㅊ전무에게 연락해야하나 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는데 너무나 침착한 G2님이 벌써 프런트로 대화를 시도한다. 내가 어떻게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하는지 그 우선순위마저 정하지 못하고 멍하게 있다. 프런트에다가 전기 나간 상황을 갑자기 전하는 말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G2님이 조처를 해주어서 해결됐다. 경황 중에도 대화를 엿들어 보니 “The electricity is out."이라고 하는 듯 했다. 정확히 들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다시 자세히 물어보려다가 그만 잊어 버렸는데 앞으로 어디 가서 전기 나갔을 때 하는 전하는 이 한 마디는 결코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중국의 호텔 로비에 이 정도의 영어도 통하는 사람이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몇 차례 건너서 겨우 통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리공이 사다리를 들고 현관 왼쪽 장롱 위 천정을 열고 두꺼비집을 찾아서 이어주니 방안은 한 순간 대낮처럼 환해졌다. 이제 안심이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더러 했더니만 모두들 배꼽을 잡고 웃는다. 실패담이나 실수담이 오히려 인생과 여행을 풍요롭고 즐겁게 하는가 보다.
가까스로 6시 50분까지 식사하고 출발. 대망의 구이린[桂林] 산수 관광에 가슴이 설렌다. 구이린 시내를 빠져서 진창으로 엉망이 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비포장 길을 시속 20km로 기어간다. 가이드 미스터 ㅊ가 서두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울렁울렁 차는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다. 모두들 여독을 못 이겨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 자는지 퍼졌는지 모를 모습으로 구이린[桂林]의 리지앙[璃, 漓江]으로 가고 있다. 이렇게 4, 50분은 족히 기어야 한다나. 그 때다. 차창 왼쪽에 구이린[桂林]의 붉은 아침 해가 기기묘묘한 연봉사이로 솟아오르고 있지 않는가. 가이드 미스터 ㅊ은 그래도 오늘은 날씨가 괜찮을 것 같다고 부언한다. 전 번 팀들은 온종일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못 보다시피 하고 갔다나. 고개를 360도 돌려 동서남북 전후좌우를 다 둘러보아도 끝없이 이어지는 연봉뿐인데 하나도 똑 같은 것은 없다.
이렇게 한 30여분 가니 소수민족 부락이라는 곳을 지난다. 장족(壯族) 마을이라는데 이들은 이렇게 집단으로 취락을 이루고 산다고 했다. 황토 빛 흙길, 군데군데 파아란 푸성귀, 한겨울이지만 남방이라서 그런지 파릇파릇한 푸성귀들이 오히려 정겹다. 2모작이 가능하니 이런 풍광이리라 짐작하였다. 밭 가운데는 소떼나 말떼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마을을 이룬 집들은 투박한 기와에다 붉은 흙벽 담으로 지어져 있는데 친근감이 든다. 소수 민족이라서 그런가. 우리 조선족도 중국 내에서는 어쩔 수 없는 소수민족의 굴레를 쓰고 있지 않는가. 밭에서 일하거나 골목에서 서로 모여 있는 얼굴이 작고 몸이 호리호리하다.
오지 여행전문가 한비야님의 여행 방식은 지구촌 구석구석을 끝없이 유랑하다가 이런 소수민족에게 오히려 관심을 더 많이 기울이는 것인데 이곳을 지나니 생각난다. 한비야식의 여행은 이런 소수 민족 마을에 적어도 한 이삼 일 정도는 묵어가야 하는 것이다. 더불어 나도 하룻밤이라도 이 장족 마을에 묵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 배낭여행자들이 묵고 싶은 1순위라면 일반여행자들이 주로 묵는 구이린[桂林]보다는 양수오[陽朔]를 꼽는다고 했다. 한비야님도 양수오[陽朔]에 숙소를 정하고는 리지앙[璃, 漓江] 유람을 할 때 4~5시간 걸릴 것을 예상하고, 지루할 듯해서 책을 준비해갔지만 그 절경에 빠져서 다음날 한 번 더 오르내리고 싶었다고 적고 있다. 이미 멀리 겨울 안개에 실루엣처럼 드러나는 연봉을 보면서 한비야님의 그런 표현이 전혀 지나치지 않겠다는 좋은 예감과 기대감에 나는 사로잡힌다. 엽서 그림에는 더없이 청명한 리지앙[璃, 漓江] 봉우리였는데 오늘은 너무 흐릿하다. 누가 기록해놓았던데, 겨울에는 운무 속의 리지앙[璃, 漓江] 유람이 가장 제 격이라고 했지만 나는 아마 운무가 이렇게 짙으니 나오는 소리는 아닌지 모르겠다. 나도 엽서에서처럼 푸른 하늘 푸른 강물, 짙은 녹음의 리지앙[璃, 漓江] 모습을 보고 싶다. 다시 와야 하나.
드디어 리지앙[璃, 漓江] 선착장 근처에 도착했다. 강 양안에는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연봉들의 행렬이 우리를 맞이하는 마치 열병 대열 같다. 중국인들이 중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라고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 바로 이 곳. 그래서 ‘계림산수천하지미예’(桂林山水天下之美藝)라고 했다던가? 우리의 산수와는 너무 달라서 흡사 남방의 연꽃이나 난의 잎처럼 생긴 봉우리들이 이 일대에 10만 여 개나 되고 그 중 거북처럼 생기면 거북바위, 버섯처럼 생겼으니 버섯바위, 말 타고 가는 남자처럼 생겼으니 말 탄 총각바위 식으로 이름이 붙은 봉만 해도 3만 개나 된다고 했다. 또 다른 이름의 만물상이다.
리지앙[璃, 漓江] 유람하기 전 관암(冠岩)동굴 탐사를 먼저 하였다. 느닷없이 모노레일을 타고 가는 게 편하다는 가이드의 말만 믿고 탔더니만 불과 10분도 안 되어서 동굴 깊숙이 도착해버렸다. 생각 같아서는 좀 피곤하지만 걸어서 중국 천하절경을 주유산수(周遊山水)하는 맛을 좀 즐겼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모노레일 비용도 비용이지만 중간에 한국형 가마를 들이대며 서툰 우리말로 “가마 천원, 가마 천원”하면서 호객하는 장족들의 모습은 애써 외면하고 싶은 심경이었다. 누가 탔었기에 이런 한국식 가마가 등장한 것이 아닐까? 그게 효도관광하기 위해서 상노인분이나 지체장애자를 태우는 것이라면 좋으련만 행여 호기라도 부리는 속물 한국여행객이라면 얼굴을 좀 붉혀야 될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관암동굴 탐사는 도보, 보트, 엘리베이터, 기차를 번갈아 탈 정도로 그 규모나 그 다양함이 상상을 초월한다. 수십m에서 수백m 규모의 석회암 동굴에 붙어있는 석순, 석주, 종유석 아직도 그 보존 상태가 좋았다. 특히 보트로 동굴 협곡을 지날 때 자연을 보존하기 위해서 개인용 손전등을 활용하는 것은 자연 보전에 대한 중국인들의 세심하고 치밀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다만 군데군데 포진하고서 그들의 고유의상을 입고 사진 촬영의 대가로 “기념 촬영, 천원, 천원”하고 서툰 우리말로 외쳐대는 소수민족 아가씨들의 집요하다 못해 진저리를 칠 정도의 요구에는 모두들 난감한 표정들이었다. 좀 더 머물면서 조용히 느끼면서 감상하고 싶어도 그런 자유를 앗아가는 것 같아서 마냥 곤혹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나는 동굴의 배경은 거의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고성능 플래시를 말았으니 하면서 막 찍어댔다. [2003. 1. 23. 목. 오전] 2021. 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