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어떤 결별이 주는 두려움/문득 열이레째 이어지던 이 코스 산행은 오늘로서 종언을 고할지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솔고개 2021. 2. 16. 01:59

어떤 결별이 주는 두려움

                                                                    청솔고개

   어제는 산행 대비해서 출발 1시간 전부터 북쪽 내 방에서 스트레칭 세 순배는 족히 했다. 엊그제 산행 때 다리 저림이 너무 심하였는데, 억지로 무리하게 사용해서 그 후유증이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오늘 산행 과정은 지금까지 중 최악으로 자평한다. 오른쪽 종아리는 통증이 더 심해져서 거의 쩔뚝거릴 정도였다. 걱정이 돼서 엊저녁부터 근육 통증 완화하는 바르는 약제를 두세 번이나 발랐는데도 약효가 쓰며들지 않아서 그런지 효험이 전혀 없었다. 오른쪽 다리가 통증이 심해서 절뚝거리면서 걷다가 보니 몸 전체 균형이 무너져 버린 것 같다. 급기야 왼쪽 골반 통증도 느껴졌다. 내가 안 봐도 전반적으로 내 걷는 자세가 다 무너져버린 것이다. 앞서 올라가던 아내는 수시로 뒤로 돌아보고 너무나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서 내가 쉬거나 천천히 절름발이 걸음으로 따라가면 그냥 왔다 갔다 하면서 걸음 숫자를 보태곤 한다. 처음엔 나보고 자세 바로 하라고 다그치다가 지금 자세가 문제가 아니고 내가 통증과 저림이 겹쳐서 걸음의 속도가 배나 더 늦어지는 상황임을 호소했더니 더 이상 그런 주문도 하지 않는다.

   내가 엊그제까지는 저림과 통증에 대해서 나름대로 형이상학적인 해석과 평가를 했지만, 그건 아직 여유가 있을 때 이야기다. 이제 그냥 아픔 혹은 통증 그 자체의 현실로 다가오니 마음과 몸, 정신과 육체 등의 치환 관계를 논할 여유조차 없어진다. 마치 그날 산행 출발하기 위해서 등산화를 갈아 신으려고 발바닥을 옆 밤송이에 얹었다가 찔려서 길고 짧은 밤송이가시에 그득 찔려서 정신이 아득할 때 느끼던 심경 그대로 같다. 아내는 또 “엄살 부린다.”고 난리지만 직접 수십 개의 미세한 바늘 같은 밤송이에 발바닥을 찔려보면 그 끔직한 맛은 제대로 실감할 것이다. 내가 아내한테 “독립지사들이 감옥에서 일제에게 고문당할 때 이런 고통이 아니었을까?”하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이런 고통을 참아 낸다는 것은 인간이 아니거나, 즉 초인[super man]이거나 아니면 인류의 정신사를 리드한 성인(聖人)들로서 위대하고 고매한 정신의 승리자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라고 전하던 게 생각난다.

   아내는 나의 호소와 실제 참상을 보더니 “바로 돌아내려 갈까요?”한다. 포기하고 내려가는 것, 나는 이건 또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일단 오늘은 늦게라도 좋게 표현해서 쉬엄쉬엄이라도 바위에 올라가서 커피 맛과 홍삼차 맛을 느껴야 할 것 아닌가 하고 품격 있는 말을 하고는 계속 진행하자고 했다. 아내에게 정말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았다. 천신만고(千辛萬苦)라는 말이 이 경우 어울리는 것 같다.

   마지막 고비인 바위에는 거의 기어오르다시피 해서 올랐다. 그 기분이 묘했다. 마침 동해남부선 하행 열차가 마치 장난감처럼 미끄러져 간다. 오후 이 시간 산행하면서 자주 보던 풍광이다. 새 폰으로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아 보았다. 혹, 오늘 이 산행이 나의 일천 바위 마지막 산행이 될 수도 있다는 절망적인 생각과 함께.

   문득 죽을 시점을 미리 알고 있는 사람이 취하는 마지막 행동과 생각은 과연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승에서의 목격되는 마지막 모습을 눈을 통해서 가슴까지 잘 간직하고 싶어질 것이다. 지금 나의 심경이 꼭 그러하다.

   이럴 정도면 내일은 이곳까지 오는 것은 장담하지 못할 터이니, 멀리서 은은히 봄이 오는 저 들녘의 풍광을 고스란히 가슴에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

   내려오는 길은 그 상황이 더 비참했다. 오늘은 골짜기로 내려오지 않고 왔던 길 능선 길로 바로 내려왔다. 그동안 백여 번은 족히 답파(踏破)했을 이 길이 이제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자꾸 뒤돌아보아진다. 저물어가는 이 길에 깔려 있다가 비바람과 뭇사람의 발바닥에 잘게 부서진 솔가기, 말라 으스러져 가루가 다되어 가는 낙엽, 그 위를 덮고 있는 뭇 나무들의 드러난 뿌리들, 서쪽 소나무 숲 너머 지는 저녁놀까지 다 내 눈을 통하여 가슴에 넣고 싶어진다. 문득 가슴이 뭉클해진다. 나의 걸음은 그야말로 퇴각하는 부상병 걸음 그 자체다.

   아내는 몇 차례나 연민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다본다. 나이 앞에 장사가 없다는 말이 실감이 든다. 문득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시기 직전 집에서 갑자기 보행이 실종돼서 엉금엉금 기시다시피해서 화장실 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급해서 중간에 볼일까지 실례해 버리니 그 참상이 어떠하셨을까 하는 생각도 함께. 나의 노화도 이제 서서히 실존으로서 다가오는 것 같다.

   오늘 내려오는데 거의 한 시간 이상 걸렸다. 날이 제법 어둡다. 아내는 틀림없이 내심 날은 저물고 혹 못 내려오나 하는 불안감으로 많이 떨었을 것이다. 차에 오르니 아내가 결국 그런 말을 한다. 나로서는 가장 듣기 거북한 말이다. 참 민망하다. 문득 열이레째 이어지던 이 코스 산행은 오늘로서 종언을 고할지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1.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