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마음, 감정 3/ 분노와 불안, 절망과 고통은 나의 힘!
말, 마음, 감정 3
청솔고개
시내 한 마트에 주차한 후 아내는 장 보러 들어가고 나는 차 안에 있다가 차를 빼려는데 오른 쪽이 옆의 차에 너무 붙어있다. 자칫하면 차끼리 스칠 것 같아서 몹시 애를 먹고 빼고 있는데 옆 차 주인인 듯 한 사람이 차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 보고 얼굴을 많이 찌푸린다. 바쁜데 많이 기다려서 기분 나쁜 듯이, 온갖 인상을 쓰면서 나보고 운전이 서투르다는 식으로, 그것도 못하느냐 식으로, 운전 코치하듯이 “이러저러하면 되는데”하고 한 마디 던진다. 순간 나도 이건 너무 심한 반응이라고 생각돼서 “당신이 그렇게 기분 나쁜 표정으로 코치 안 해도 내가 잘 빼는데 뭐 난리냐?”하고 대꾸해 줬더니 “얼마나 많이 기다렸는지 모른다.”식이다. 내가 순간 짜증과 분노가 확 치밀어 올라 다시 “차 잘 빼서 별일 없으면 됐지 무슨 말이 많으냐?”하고 쏘아주고 빠져 나왔다.
마트 주차비 정산하는 차단기를 빠져 나오면서 내가 마음이 너무 불편해서 “젊은 놈이 좀 기다려 줄 줄도 알아야지, 차 탈 없이 뺐으면 됐지 무슨 그런 잔뜩 구겨진 표정으로 훈수 들고 참견하는가?” 했더니 아내가 옆에서 “정말 당신답지 않게 왜 그리 싸움닭처럼 사나운가. 괜히 험한 말하다가 따라와서 시비 붙을지 모르니 그만 하라.” 는 뜻으로 말하면서 나 보고 더 나무라는 것이다. 내가 계속 화가 난 듯 한 격앙된 목소리로 같은 내용을 반복했더니 아내는 더 큰 소리로 나를 힐난한다. 나도 지지 않고 “최소한 당신이라도 내 편이 돼 줘야하지” 하니, 아내는 더 큰 소리로 이런 기분으로는 산행도 가고 싶지 않다. 바로 내린다고 떼쓴다. 내가 목소리를 낮게 깔아서 “이런 상황에서는 반드시 정면 대응해야 한다. 나이 많다고 점잖고 무르게 대하면 결국 당하게 된다. 나이 많으면 무조건 양보해야 하나?”고 하니 제발 이제 그만 하라고 한다. 나도 그만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번 분노 표출의 촉발 요인은 이 사안에 대한 아내의 일방적인 언급으로 본다. 가까운 유발 요인은 옆 차주의 인상과 언사였다. 먼 유발 요인은 나의 지금까지 쌓여서 봉합된 모든 불편, 불안한 감정의 일부분이 삐져나온 것이리라.
이로 인해 산행은 같이 하면서 우리의 힐링 장소인 바위에 오를 동안까지 서로 좀 서먹서먹하고 불편한 기분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나는 나중에 이 사안에 대해서 곰곰이 복기(復棋)를 해 보았다. “결과적으로 이는 내가 잘 둔 수(手)인가 악수(惡手)인가? 아내의 훈수가 정말 불필요하거나 잘못된 것인가?” 하고. 요즘은 이상하게도 이렇게 나의 감정을 끝까지 표출 혹은 폭발(?)하고 나면 두 가지 감정이 파생한다. 그 하나는 “내가 정말 살아 있는 존재다. 나의 존재를 이렇게 공격 성향으로 증명한다. 후련하다.” 다른 하나는 내가 이제 정말 꼰대소리를 들어도 산 거 아닌가. 나이 먹으면 고집과 화만 는다고 하는데 내가 그런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과 더불어. 그래도 “나는 분노와 불안, 절망과 고통은 나의 힘!” 외냐하면 이 역시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드러낼 수 있는 삶의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질투가 나의 힘!”이란 카피라이터와 마찬가지로 이는 나의 존재의 절대적 이유가 될 수도 있다. 2021. 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