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3월의 스키 장 1/ 매화꽃이 피어나고 진달래 꽃봉오리 맺혀가는 초봄의 따스한 햇살을 즐기며 서둘러 스키장으로 향했던 그 시절의 찬연한 기억이 더욱 새롭다

청솔고개 2021. 3. 9. 03:41

3월의 스키 장 1

                                          청솔고개

   엊그제는 요즘 같은 감염병 시절에도 유일하게 개인적으로 자주 대면하는 고향 친구 하나를 만나서 따로 돼지국밥으로 식사를 같이하고 모처럼 술도 한 잔 했다. 이 친구를 만나면 방송이나 언론에 나오지 않는, 요즘 주요 이슈가 되는 정치나 사회 문제의 비하인드 스토리나 가십 거리를 새로 들을 수 있어서 늘 흥미와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때로는 우리 사이의 사안을 바라보는 견해 차이도 솔직히 인정해 주는 멋진 대화 상대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 고픔을 해소해 주는 좋은 친구다. 그날도 식당에서 거의 2시간, 2차 찻집에 가서 2시간 가까이 같이 보냈다. 그 4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버렸는지 그냥 몰입이었다. 그 시간이 아주 잠깐인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행복이다.

   내가 집에 돌아오기 위해서 그 친구와 헤어질 무렵, 아직은 밤 날씨가 쌀쌀해서 이 겨울에 자전거 탈 때 늘 애용하던, 준비된 짙은 회색 빵모자를 눌러쓰고 있으니 친구가 내 모자를 보고 관심을 표한다. 그래서 모자를 가리키며 오래 전 우리 둘째가 초등시절에 쓰던 스키 모자인데 이번 겨울에 자전거 탈 때나, 산행할 때 애용하는 거라고 말해 주었다. 아주 보드라운 모직으로 짜진 짙은 회색을 띤 모자 앞에는 ‘SPY’라고 굵은 검은색으로 찍혀있다. 그 모자를 보니 둘째가 야간 스키를 즐기는데 스키에 빠져서 영하 10도가 더 되는 스키장 리프트를 오르내리면서 보온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심한 저체온증으로 어지러움을 호소해서 리프트 타는 근처 의무실로 급히 옮겨져 온몸을 마사지하고 더운 물을 마시게 하면서 크게 놀랐었던 기억도 소환된다.

   친구는 “스키 탔었구나, 나는 스키장에 한 번 딱 갔는데 도저히 안 되어서 못 타고 그냥 와버렸다.”고 한다. 나는 이에 화답하면서 대략 20년 정도는 주로 무주스키장에서 중급코스까지 즐겼고 아내, 아이들까지도 다 배우게 했다고 꽤 자랑삼아 말했다. 첫째는 나중에 스노보드까지 배워서 아직도 즐기고 있다는 사실, 나는 5년 전인가는 마지막으로 인근 에덴밸리 스키장까지 다녀왔다고 자랑을 하고 있는데 횡단보도 보행자신호가 떨어져서 건너가 버리고 우리는 헤어졌다.

   자전거에 몸을 싣고 집에 오면서도 불현듯 그 때가 생각났다. 아내와 아이 둘을 데리고 네 식구는 겨울 방학에는 전국 스키장으로 여름 방학에는 남해 땅끝마을이니, 강화도니, 동해 북부 화진포, 고성 통일 전망대 등을 여행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내가 가족을 위해서 그렇게 열정적으로 보냈던 시절이 있었구나 하고 그 지난날들을 떠올리니 가슴이 알싸해진다. 깊은 한숨이 쉬어질 정도로 그리워진다.

   내 나이 40대 전반 그러니, 1990년대 전반을 생각하면 가장 역동적인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결코 다시는 되돌릴 수 없겠지만 나에게도 이런 찬란하고 뜨거운 시절이 존재했었다는 기억이 왠지 나를 아프게 하는 것 같다.

   내가 가족들과 이러한 여행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아주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사실을 목격하게 되었다. 같은 학교 행정실 실장이 일찍이 상처를 하고 딸 셋을 키우고 있었는데, 방학만 되면 제 엄마의 부재로 인한 아이들의 상실감을 메꿔 주기라도 하듯, 아빠가 최소 2박 3일 길게는 3박 4일 여행을 같이 하는데 그러기를 벌써 몇 해째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속으로 옳다 이거다 하는 생각과 더불어 내 스스로는 과연 우리 아이들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도 실천하자고 다짐을 하고 큰 용기를 냈다.

   바로 그해 여름 방학 때, 첫 이벤트로 3박 4일 일정, 1번 국도를 중심으로 전라남도 일대를 답사하는 코스였다. 당시 한참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문화유산 답사기를 들고 출발했다. 한여름 낮에는 남도의 붉은 땅을 누볐다. 말로만 들었던 남도 땅이 그렇게 붉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밤에는 바다 안개가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땅끝마을까지 갔다. 밤늦게 도착해서 당시 가장 맛있다고 알고 있는 값나가는 감성돔 회를 주문해서 늦은 저녁을 먹었었다. 아이들도 이 기억만큼은 아직도 생생하다.

   스키 도전장 던져 놓고 아직 턴도 제대로 못하는 초보 스키어였던 내가 또 바로 그해 겨울에 우리 가족 모두를 스키장으로 이끈 것은 암만해도 무모한 짓이었다. 내가 결단한 가족 체험활동의 결정판 같은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나는 나의 가족들에 대해서는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 후 해마다 3월만 되면 스키 시즌이 마무리된다고 참 아쉬워하였었고, 국도의 길가에는 매화꽃이 피어나고 진달래 꽃봉오리 맺혀가는 초봄의 따스한 햇살을 즐기며 서둘러 스키장으로 향했던 그 시절의 찬연한 기억이 더욱 새롭다.    2021. 3.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