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우리 집안 안어른 네 분 이야기 2, 막내 종조모님 1/ 일제 강점기, 해방 직 후, 6.25 한국전쟁 와중에서 시대의 격변을 온몸으로 겪고 받아들이셨다
청솔고개
2021. 3. 17. 03:32
우리 집안 안어른 네 분 이야기 2, 막내 종조모님 1
청솔고개
아침에 초등 동기로부터 막내 종조모님께서 별세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친구가 막내 종조모님과 한 마을에 살기 때문이다. 나는 바로 장례식장에 갔다. 빈소는 벌써 막내 종조모님의 친정 조카가 지키고 있었다. 막내 종조모님의 친정 측에서 장례일은 맡아서 한다고 하니 좀 황망한 일이다. 내가 바로 아내, 종숙 한 분, 종제 등에게도 부음을 전했다. 장지 준비로 묘원 관장하는 조항(祖行) 집안 어른 한 분한테도 전했다. 맏종숙모님께는 몇 차례 연락해도 잘 되지 않았다. 큰집에 들러서 아버지께 막내 종조모님 유고(有故)를 전했다.
오후에 아버지를 모시고 다시 장례식장에 갔다. 아버지도 매우 애통해 하셨다. 이제 한 분 남으신 당신의 숙모님이시니까. 좀 있으니 고인의 손자로 상주 대행인 종제도 도착했다. 종제는 큰일을 앞두고 내가 있으니 그래도 좀 안심이 된다고 했다. 내 역할이 아직 남아 있어서 좋다. 아버지는 오후 내내 상가에 계시다가 함께 저녁 식사 후 집에 모셔다드렸다. 고인의 친정 조카 한 분이 이 상례를 주도하게 되었다. 고인의 고모가 된다. 그는 차분한 성품에 분별력이 있어 보인다. 고인의 친정조카에게 아버지는 친조카로서 이번 상례를 숙모님의 친정 분들에게 맡기게 되어 참 미안하고 고맙고 면목이 안 선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자정까지 계시다가 내가 집에 모셔드렸다. 나는 어제 장거리 운행으로 지쳐 있지만 마음은 더욱 명징해 지는 듯하다. [기록, 2016. 3. 16. 수. 맑음]
막내 종조모님 상례 이틀째다. 피곤해서 좀 천천히 가 보려하려는데 종제로부터 고인의 친정 동생 분들이 오셨다고 전해 왔다.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서 내게 전화한 것이다. 입관식 참례도 해야 하니 9시 반쯤 나갔다. 참관실에 가서 막내 종조모님 영안을 뵈었다. 평온하고 그냥 잠드신 모습 같았다. 친정의 혈육들의 호곡소리가 서럽다.
고인은 18세 때 우리 가문에 오셔서 15세 막내 종조부님과 혼인하여 3년 동안 함께 하다가 돌연 낭군이 먼저가시는 비운을 견디며 72년 세월, 정말 상상도 안 되는 고단한 삶을 사시었다. 그 모습은 내가 자라면서 고비마다 보고 들은 걸로도 충분이 짐작이 된다. 나는 나직이 이제 이승에서 그토록 고단한 삶은 다 접으시고 편안한 곳으로,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축원해 드렸다. 친정 가문에 누가 될까봐 오롯이 평생 자신을 희생하신 셈이다. 양자로 간 큰집의 둘째아들, 그러니 내게는 삼촌 되시는 분이 봉양한다고 하셨지만 스무 살도 채 안 된 낭군을 먼저 보내버린 평생의 공허감이 쉽게 메워질 수는 없는 일이다. 겉으로는 양아들 내외가 늘 잘해준다고 하며 좀처럼 섭섭한 내색 한 번 안 하시던 속 깊은 성품이셨다. 늘 자식이라고 감싸던 모습이 떠오른다.
일제 강점기, 해방 직 후, 6.25 한국전쟁 와중에서 시대의 격변을 온몸으로 겪고 받아들이셨다. 특히 국방경비대에 입대해서 한국전쟁 때 돌아가신, 고인에게는 장조카가 되는 나의 백부님을 고인이 마음 졸이면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수용하셨다고 생전에 말씀을 하셨다. 그러한 급변했던 전환기의 숨은 스토리는 늘 나에게 큰 울림을 주셨다. 생전에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 근황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평을 서슴지 않으셨던 분이었다. 평생토록 잔치니, 초상이니 하는 집안 대소사에는 종부인 어머니를 대신하고 도와서 남다른 기획력과 추진력으로 진두지휘하여 원만히 치러내는 능력을 보이셨다. 그래서 어머니도 시숙모님의 말씀이라면 전적으로 신뢰하시었고 장손인 나를 위해서도 많은 용기, 희망을 주시고 기대하시었다. 생전에 음주가무와 풍류가 남달랐고, 더군다나 우리 안태고향 마을과 집안의 해방전후사에 대한 소상하고 적확하고 실감나는 구술은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았다. 들을 때마다 감탄을 자아냈다. 타고난 구변가이셨다. [기록, 2016. 3. 17. 목. 맑음] 2021.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