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우리 집안 안어른 네 분 이야기 3, 막내 종조모님 2/ 당신이 생전에 내 행장(行狀)을 글로 꾸미면 만리장서(萬里長書) 10권은 될 거라고 자주 하시던 말씀

청솔고개 2021. 3. 18. 07:41

우리 집안 안어른 네 분 이야기 2, 막내 종조모님 2

                                                                                             청솔고개

   아침에 아버지를 모시러 갔다가 큰집 벽 사진 액자 속에 할머니, 막내 종조모님, 어머니, 숙모님의 모습을 뵙는 순간, 나의 성장기에 가장 큰 영향을 주신 이 네 분의 집안 안어른들이 이제는 다 안 계신다는 걸 실감했다. 이제 그 네 분 중 가장 연로하신 막내 종조모님마저 가셨으니 그 잔상만 내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이다. 먹먹하다. 나에게는 친할머니 이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셨던, 우리 집안에서 최장수 기록을 세우신 분, 이제 그 분의 낭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좀 있으니 맏종숙모님과 셋째종숙부님이 같이 오셨다. 이어서 내 첫째 여동생이 도착했다. 아버지 말씀 한 마디에 먼 길 마다하고 내려와 준 누이가 참 고맙다. 착하다. 누이가 점심 먹고 바로 가려는 것을 온 김에 아버지 뵙고 가라고 했다.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더니 병원 치과에 계신다기에 같이 뵈러 갔다. 누이가 열차 시간이 여유가 있어서 병원 구내 찻집에서 아버지를 뵙고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이렇게라도 서로 만나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참 소중하게 여겨졌다. 누이를 기차 역사까지 태워주면서 쌓인 이야기는 다음에 나누기로 하면서 배웅했다. 모처럼 남매의 정의(情誼)가 오롯이 느껴진다.

   저녁에도 장례식장에는 조문객이 많지 않았다. 조화도 종제 회사에서 보낸 달랑 하나다. 더욱 쓸쓸해 보였다. 다만 고인의 친정 분들이 모두 소박하고 배려심이 넉넉하셔서 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다른 일로 좀 늦게 온 아내와 미리 온 종수씨가 함께 내일 평토제, 산신제에 쓸 제수를 준비한다고 바쁘다. 모처럼 종동서 사이가 돈독해 보인다. 큰집에 가서 내일 묘원에서 치를 평토제, 산신제 축문에 대해서 아버지께 여쭈어 보았다. 집에 와서 고단한 하루를 눕혔다. 내일 발인식이 새벽 7시니 좀 서둘러야 할 것 같다. [기록, 2016. 3. 17. 목. 맑음]

   새벽에 비가 뿌린다. 평소에는 모처럼의 봄비가 반갑겠지만 지금은 낭패감이 든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새벽 6시 조금 지났다. 모두들 식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고인의 조카로 내게는 사형되는 분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이 분을 보니 몸에 밴 가풍은 숨길 수 없는 것 같다.

   7시 30분에 영결(永訣)종천(終天)을 고하면서 발인식(發靷式)이 엄수됐다. 조촐한 출상의 행렬이 꾸려진다. 발인의 절차가 시작된다. 하늘도 한 많은 고인의 한평생을 애도하듯 봄비를 내려주신다. 검정 색 조문 리본을 두른 선도차인 내가 모는 차에는 손자 종제가 내 옆자리에 영정과 혼백을 거두어 앉았고 동생은 뒷자리에 탔다. 올해 들어 벌써 두 번째 이 시립화장장 행이다. 깊은 산 속 하늘 마루로 가는 길은 비안개로 자욱했다. 길가 산등성이 수목은 아직 겨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쓸쓸하고 황량한 모습이다. 화장장까지는 30분 남짓 걸리니 8시에 도착한다. 8시 30분에 화장이 시작됐다. 대기실에서 위령제를 엄수하고 서쪽 창 너머를 바라보니 비는 아직 그칠 기미가 없다. 10시 20분에 화장이 마무리 됐다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수골실에 들어갔다. 고인의 생전 모습은 이제 한 덩이 뼛조각으로 남았다가 곧 한 줌의 뼛가루로 된다. 구구한 구십 평생이 이 한 순간에 이른 봄바람 한 자락에 날려갈 듯하고, 비 한 줄금에 쓸려갈 듯하다. 필경은 지수화풍(地水火風) 단순물질로 현현(顯現)하는 건 두 달 전 여기서 어머니 모실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모두들 이렇게 가는가 보다.

   고인이 어린 시절과 노년에 기거하신 둥굴 마을 고향집에 들렀다. 고인의 생가이고 친정집이기도 하다. 고인은 만년 이곳을 지키다가 영면하신 것이다. 내 동생은 영정과 혼백을 들고 종제는 유골을 모시고 당신의 생전 거처를 들러서 한 바퀴 휙 둘러보고 나오는데 비감해진다. 마음이 울컥한다. 운구행렬은 율동, 새말, 낸비, 외말 길을 거친다. 이 길은 고인이 생전에 수천 번은 더 다녔던 길이다.

   11시 40분에 남성 묘원에 도착했다. 묘원관리 하시는 조항(祖行)뻘 집안어른이 비를 흠뻑 맞으면서 유골 수습 대비를 하고 계셨다. 우산을 받쳐 가면서 제물 진설, 평토제, 산신제등 절차가 차분히 진행되었다. 고인을 보내드리는 데 대한 마지막 예는 마음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근처 식당에 가서 점심을 대신했다. 고인의 친정에서 댓 분이 끝까지 같이 해 주어서 참 고맙다. 종제 내외를 장례식장까지 데려다 주고 집에 왔다.

   고인이 스물도 안 된 낭군을 삼년 만에 먼저 떠나보내시고 그 후 집안에서 후사를 위해 큰집 양자를 들였었다. 고인은 생전에 당신 몸 한 번 제대로 사리지 않으시고 집안 대소사를 위해 재바르고 ⁰짭질맞은 삶을 사셨다. 어찌 보면 잘못된 관념에 매몰된 지난 시절에 전근대적 인습에 휘둘려 친정과 시댁 가문의 체통과 위신을 고수하기 위해 희생을 선택하신 이 시대의 마지막 여인이실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주변의 눈치 아닌 눈치도 많이 보셨다. 더군다나 양자의 맏이, 당신의 맏손자가 군에서 훈련 중 사망하는 불행을 당하고부터는 이런 일이 당신의 기박한 팔자 때문인 양 평생 마음을 편히 하시시지 못하신 걸 나는 지켜보았다. 흔히 그런 팔자의 안 좋은 기운으로 집안의 불상사를 불러 올 수도 있다는 잘못된 통념에 가슴도 졸이셨다. 생애 전체에서 당신 한 몸도 결코 가족의 누가 되지 않으시려고 무진 애를 쓰셨다.

   생전에 술 한 잔 드시고 마음이 비감해지시면 당신이 평생 동안 겪으신 고초를 한 자락씩 풀어내시는데, 그 서술의 적확함, 유려함과 감동의 깊이는 어느 유명 소리꾼 못지않으셨다. 그래서 당신이 생전에 내 행장(行狀)을 글로 꾸미면 만리장서(萬里長書) 10권은 될 거라고 자주 하시던 말씀과, 장손인 나를 보고 “우리 ㅊㅇ, 니가 중간에서 이런저런 집안일로 너무나 애를 많이 쓴다.”고 늘 나의 고단하고 곤란한 처지를 걱정하고 격려해 주시던 막내 종조모님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낭랑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 증조할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초상에서 탈상은 물론 집안의 대소사의 현장이며 내 졸업식이니 혼례식 등, 내 생애 큰 구비마다 그림자처럼 옆을 지켜주셨던 막내 종조할머니의 영전에 향하나 꽃 한 송이를 마음으로 올린다.

   큰일 치르고 봄비를 맞으면서 어둑어둑해지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비로소 잠이 마구 쏟아진다. [기록, 2016. 3. 18. 금. 비] 2021. 3. 18.

 

[주(注)]

⁰짭질맞은 : ‘살림솜씨가 야무진’의 토박이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