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버지!
9개월 7일 만의 만남 3/ 파르스름해지려는 잔디밭에서 예닐곱 먹은 두 누이동생이 내 양옆에 얌전하고 다정히 앉아 있다. 내가 두 누이의 어깨에 살짝 손을 얹고 있는 우리 삼남매 사진을 보니 ..
청솔고개
2021. 4. 1. 16:49
9개월 7일 만의 만남 3
청솔고개
어머니 무덤 앞에서 나는 고개를 숙이고 어머니께 “엄마, 그 동안 평안히 보내셨는지요? 제가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오늘 어머니가 그리도 사랑하는 두 딸내미가 오고 싶다고 해서 제가 같이 오게 됐습니다. 참 잘했지요. 오늘 봄날이 정말 맑고 따스하네요. 여기 어머니가 더욱 포근하고 편안히 잘 계시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입니다. 옆에 보니 어머니께서 그리 좋아하시던 참꽃이 만발해 있습니다. 엄마께서 이런 좋은 곳에 계시니 꽃구경 마음껏 하십시오.”하고 전한다. 처음 몇 마디는 나직이 소리 내서 말씀드렸고 나머지는 마음속 말로 전해드렸다. 누이동생들도 “엄마, 그 동안 편안히 계셨지요? 생전에 꽃 좋아하셨는데 주변에 이렇게 진달래가 만발해 있어서 엄마께서 좋아하는 걸 생각하니 정말 잘 됐군요. 좋아하는 꽃 많이많이 보시고……. 엄마, 사랑합니다.”하고 어머니께 인사말을 전한다.
두 누이동생이 준비한 주과(酒果), 생전에 엄마가 아주 좋아했던 아침햇살 음료 등 조촐한 제물을 차리고 깔아 놓은 돗자리에서 함께 재배(再拜)했다. 이어서 그 자리에 앉아서 음복(飮福)을 같이 했다. 한 시간 정도 앉아서 봄볕을 쬐면서 그동안 쌓인 살아가는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묘소 주변도 둘러보았다. 남매의 정리를 되새겨 본 소중한 시간이었다. 너무 포근해서 햇살 아래는 살짝 더운 것 같았다. 묘원 옆 솔숲에는 포근한 봄바람이 일고 있다. 잔디밭에는 봄기운이 꿈틀대고 있다. 생명이 움트고 있다. 아지랑이인지 안개인지 모를 여린 기운이 묘원을 떠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혹 어머니의 혼백(魂魄)은 아니실지. 구천(九泉)에서 내려와 우리와 같이 계시지는 않으실까? 그리 믿고 싶다. 그래서 엄마 옆에서 두 누이동생과 봄날 이 한 순간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제 정말 헤어져야 한다. 서로 세 살 터울인 누이동생들도 어언 쉰 후반에 드는 나이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만큼이나 쌓인 정의(情誼)가 사무쳐와 내 가슴을 치는 것 같다. 그 동안 큰 오라버니로서 좀 더 포근하게 감싸주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집에 오니 왠지 내 가슴이 텅 비어버린 것 같다. 하도 아쉬워서 근 45년 전 이맘때, 내가 군대 입대하던 그해 봄, 큰집 근처 공원에서 우리 오남매와 함께 찍은 흑백사진, 칼라사진을 들쳐보았다. 파르스름해지려는 잔디밭에서 예닐곱 먹은 두 누이동생이 내 양옆에 얌전하고 다정히 앉아 있다. 내가 두 누이의 어깨에 살짝 손을 얹고 있는 우리 삼남매 사진을 보니 가슴이 에인다. 그 얼굴들은 세상 근심 하나 없이 해맑게 웃고 있다. 어린누이들의 귀여움과 어리광이 봄 햇살처럼 환하게 번져나고 있다. 이 자리에 안 계신 우리 어머니 아버지께서 이 사진을 보신다면 어떤 마음이실까? [2021. 3. 23. 화. 맑음] 2021. 3.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