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어떤 삶/ “자네는 150년 전 미국의 자연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삶에 대한 인식과 행동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청솔고개 2021. 4. 3. 17:51

 

어떤 삶

                                                                       청솔고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라는 작가가 있었다. 150년 전 미국의 자연주의 철학가이며 자연철학을 구현한 실천 사상가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근교의 월든 호반 옆 숲속에서 오두막을 짓고 자신 만의 정신을 펼치다가 45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떴다. 20년 전 쯤, 나는 이 작가의 시대를 초월한 혜안에 경도돼서 그의 저서가 눈에 띄는 대로 구입하거나 빌려서 줄을 쳐가면서 읽었었다. 2003년 미 동부를 여행할 때는 그의 일기를 모아놓은 《소로우의 일기》를 들고 다니면서 숙소에서 틈틈이 읽었다. 월든 호반이 그리 멀지 않은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을 거쳐 가면서 그의 숨결이라도 느껴보려고 애썼다. 다만 일정상 여기까지 와서 직접 월든 호반에는 가 볼 수 없었던 것이 무척 안타까웠다. 그의 자연주의 사상은 32세 때 펴낸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에서 태동된다. 하버드 대학 출신이지만 평생 독신으로 지내면서 무소유(無所有)의 철학을 통한 자연생태학자로서 선구자적 역할을 한 것이다. 내가 그를 가장 존경하는 것은 1년 중 한두 달 동안만 단기간의 육체노동으로 배를 만들거나, 식수, 접목, 측량 등으로 최소한의 생계를 꾸려나간 그의 실천하는 삶 때문이다. 나머지 시간은 그가 꿈꾸는 대로 자연관찰자 역할에 충실했던 것이다. 동시대에서 그는 진정한 자유인이며 자연인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나는 한 친구의 삶을 곁에서 지켜본다. 그 친구는 더 높은, 정신의 자유를 위해서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있다. 구도자 같기도 하고 생의 철학자 같기도 하다. 내가 그 친구에게 “자네는 150년 전 미국의 자연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삶에 대한 인식과 행동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말해 주었더니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나의 인식은 이와는 좀 다르다.

   소로우가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 옆 숲 속 통나무 오두막집에 살면서 1년의 생활비를 감당할 만큼만 일하고 나머지는 숲속 산책, 명상, 집필, 마을 사람들과의 생활로 평생을 보냈다. 절대자유를 추구하는 한 생애다. 이런 생활 패턴에서 볼 때, 그 친구는 일정 부분 소로우와 닮은 모습이라고 여겨진다. 보스턴에서 태어나 소로우와 동향이며, 평생 동안 절친한 친구였던, 동시대의 시인이자 철학자였던 에머슨이 “그는 결코 방종하거나 게으르지 않았다.”고 하는 평가에서도 그 친구와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그 친구는 자신의 삶에서 최소한의 활동반경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산야를 헤집기는 좋아하며 나무와 꽃, 버섯과 풀, 딱따구리나 까마귀, 가재나 도롱뇽, 물방개 등 계곡의 온갖 동식물을 관찰하는 데 많은 흥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150년 전의 자연철학자 소로우와 상통한다.

   법정스님은 그의 수필집에서 “소로우는 여가가 사업만큼이나 중요한 것이고, 부자가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거의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라고 평가 하는 데서 150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두 자유인의 교감(交感)을 읽을 수 있다.

   나는 늘 사람의 한 생애를 어떤 틀에 넣어서 재단하는 것은 한 세기나 한 세대 전의 전근대적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대의 비극성은 모든 걸 정형화하고 인간성마저 틀에 넣어서 평가하려고 하는 데 있다. 평가는 곧 대상과의 비교를 수반한다. 인간의 불행감은 심한 비교와 평가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상대적 박탈감이 수반된다. 이 때문에 삶이 불안하고 우울해지는 것이다.

   영유아기의 성장에서도 그 또래나 발달 연령에 맞춰 그 생애주기가 독자적으로 존중되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과 상통한다. 이처럼 평생을 통해서 추구하는 개인의 이상과 꿈은 더욱더 존중되고 고양돼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기저에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정신이 깔려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그 친구의 자유와 자연 정신을 지지한다. 한번 씩 내가 바로 그 친구가 되었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오늘이 내가 이 공간에 다시 글 올린 지 만 1년이 되는 날이다. 이 글은 여기에 367개째 올리는 글이 된다. 1년 전 미증유의 감염병 사태로 두문불출, 칩거 생활을 하다 보니 비로소 나와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이 났다. 내가 이 공간을 마련한 후 첫 글은 2016년 4. 12.에 올린 걸 확인했다. 그 순간 나는 이거다 싶었다. 이제부터는 평생토록 말하고 싶었지만 어떤 이유로든지 못한 이야기를 정리해 나가는 공간으로 여기를 잘 활용해야 하겠다. 평생동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여기에다 올리면서 나의 삶을 정리해가는 장으로 제대로 삼을 것이다. 내 평생의 고백록이고 또한 자서전이기도 하다.

   지난 1년 동안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하루에 한 편씩만 올리는 것이 나와의 약속이었다. 물론 매일 그 날짜를 어김없이 한편 씩 올리는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다. 때에 따라서는 일주일도 더 지난 후에 숙제하듯 몰아서 올린 적도 있었다. 그래도 제대로 된 글을 올리려고 무척 애를 썼다.  내 글 끝 부분의 기록 날짜는 그대로 이어져 나갔다.

   내가 여기 글을 올리는 데에는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사이버 상에서 내 글을 읽은 사람 숫자에는 결코 연연하지 않기로 할 것, 이를 위해 나의 블로그 개설 사실을 개인적으로 일부러 알리지도 않을 것, 따라서 글에 나타난 모든 인명, 지명은 익명이 이니셜로 할 것' 등이다. 물론 주변에서 나를 아는 사람이 우연히 이 블로그를 어떻게 알게 되는 경우는 불가피하겠지만. 또한 사진과 영상이 무분별하게 범람하는 오늘날의 사이버 공간에서 과도한 그림과 영상으로 인한 상상력 박탈을 최소화한다는 의미에서  나는 가능하면 문자로써만 나의 모든 걸 드러내고자 했다. 지금까지 나의 이런 원칙은 대체로 지켜지고 있다고 본다. 그 친구가 지금 여기에 올린, 자신에 대한 이 글을 언젠가는 볼 것이다. 그때 그 친구는 어떤 생각을 할까 자못 궁금하다.    2021. 3. 28.

[주(注)] 사진 및 사진 설명 전재함 : 위에서부터 '솔로우가 28세때부터 2년간 살았던 한 칸짜리 통나무집', '윌든 호수', '콩코드 강. 소로우는 이 강을 검은 동맥이라고 표현했다.' 헨리 D. 소로우 지음, 윤규상 옮김, 소로우의 일기 (서울: 도서출판 도솔, 2008) 앞 속표지에서 전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