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청사초롱 꽃길/해가 지고 등불이 켜질 무렵, 큰집 가는 길은 청사초롱이 밝혀져 있는 꽃길이다
청솔고개
2020. 3. 30. 17:25
청사초롱 꽃길
청솔고개
해가 지고 등불이 켜질 무렵, 큰집 가는 길은 청사초롱이 밝혀져 있는 꽃길이다. 이 꽃길에서 신혼 시절, 벚꽃 흐드러지게 필 무렵 예비군복 입은 채로 내가 아내와 같이 함께 찍었던 사진이 기억난다. 39년이 지났다. 혼인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내가 예비군동원훈련으로 며칠 동안 아내와 헤어지게 되었는데, 그 애틋함과 아쉬움이란! 우리는 아주 앳되고 풋풋한 모습 그대로였다.
이전 근무지에서의 훈련은 며칠 동안 야영까지 하는 것이었다. 숙영지 옆 반변천을 흐르는 맑은 물을 지켜보면서 그 너머 피어오르는 꽃구름 사연을 아내한테 띄웠었다. 너무나 곡진한 내용이었다. 그전까지 내가 주체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심리적 갈증을 오직 아내에 투사한 것이다. 나의 존재감과 혼인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려 했던 것이다. 대상에 대한 특별한 의미부여의 반복은, 불안한 존재, 사랑, 행복에 대한 인간 본연의 근원적 회의에서 오는 결과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그 반변천의 봄은 또 어떠했던가.
산야에 피어오르는 진달래, 살구꽃, 산벚이 이루는 꽃구름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밤에도 그것은 구름기둥이 돼서 세상을 훤히 밝혀주는 것 같았다. 그 후 봄만 되면 그 길을 한 번 꼭 다시 가고 싶었지만 제대로 가지 못했다. 참 아쉽다. 올봄에는 아내와 같이 꼭 한 번 가고 싶다. 2020. 3.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