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내 생애의 가장 긴 날 3

청솔고개 2022. 1. 19. 20:00

                                                                                                                          청솔고개

   수술은 끝났다. 내 삶에서 새 세상이 전개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취에서 깨 난지 7시간 정도 쯤 된 것 같다. 곁에 시간을 물어보니 자정을 지나고 있다. 숱한 생각이 머리를 들락거린다. 간호사들이 두런거리는 소리도 한 단편적 기억처럼 내 뇌 속을 들락거리는 것 같다. 스스로의 마음을 무장하기도 하고, 해제하기도 한다. 끊임없이 이런 거라도 해야 이 시간을 나름 죽일 수 있을 것 같다. 내게는 거의 전쟁과 같은 시간이다. 외로운 투쟁의 시간이 흘러간다. 이 시간들을 내가 정말 어떻게 처치한지 모르겠다.

   새벽이 흘러가고 아침이 왔다. 간호사인지 간병사인지 밥상을 들고 와서 나보고 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 무슨 뜬금없는 상황이란 말인가. 내가 먹을 수 있다고 말하자 고개를 오른 쪽으로 돌리라고 한다. 흘리는 걸 대비해서 겨드랑이에 뭔가를 깔았다. 반 숟가락씩 밥을 살짝 살짝 오른 쪽 턱 안으로 넣어주면 나는 조심스럽게 삼키어 보는 거다. 희한하게도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가끔 목이 막힐 것 같다. 불안해진다. 그러니 물도 넣어준다. 이렇게 밥과 물을 먹어보는 건 난생처음이다. 누워서 떡먹기라는 있지만 누워서 떠먹여주는 밥 먹기는 처음이다. 얼굴도 볼 수 없었던 그 간병사의 목소리는 무척 나긋하고 다정했다. 내게는 천사 같은 존재였다. 수술 후 환자를 최대한 배려하는 케어다. 나보고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말해 주니 자신은 부산이라고 한다. 그런데 말투로는 전혀 부산사람임을 느낄 수 없다.  아주 포근한 서울말을 구사한다.

   점심때가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서서히 희망 시간이 다가오는 것 같다. 그래도 현재는 목과 어깨, 무릎만 움직일 수 있다. 수시 무시로 극심한 통증이 따르는 이 시간은 내게는 지옥의 시간이다. 통증에 대한 반응 양상으로 보면 짐승의 시간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많은 측정을 한다. 혈압이 계속 낮다면서 수혈을 두 세 봉지 한 것 같다. 목구멍의 통증이 계속 된다. 물을 마시니 좀 완화되는 것 같다. 장시간 수술에 따른 목구멍의 인공호흡기 설치한 스트레스라고 한다.

   환자 이송 담당이 와서 곧 병실로 옮길 것이라는 말을 전했다. 천신만고 끝에 지친 몸이 반응해서 한 10분 정도 잠이 들었다가 깬 것 같다. 사실 혈압 등 제반 수치가 계속 안 좋으면 하루 더 중환자실에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 불안 심리는 최고조에 달했다. 가족과는 내 용태에 대해서 수시로 연락을 한다고 했다. 엊저녁에 오늘 이송되니 오늘 오전 중 병실로 오라고 연락했다는 것이다. 드디어 아내를 만날 수 있다는 기적 같은 희망이 내비친다.

   드디어 다시 16층 병실에 도착했다. 아내의 놀란 얼굴이 내 부어터진 눈두덩이 사이로 보인다. 내 몸에는 피 주머니 4개가 배액 관에 달려 있다. 수술 후 피가 계속 고이는데 그것을 받아내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이게 빠지거나 작용이 제대로 안 되면 가장 위험한 상황이라고 한다. 병실에서 아내를 만났지만 아직은 중환자실에서의 그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언제 보조기를 착용하고 한번 앉아 볼 수 있을까? 이제는 이게 절대 절명의 소원이다. 새로 배정받아 입실한 2인실 옆 병상에는 70대 중반 남자환자가 들어있고 그 딸이 간병하는 것 같다. 뇌종양 수술 때문에 입원했다고 한다. 종양이 뇌를 눌러서 한쪽 다리를 못 쓴다. 커튼이 계속 쳐져있어 여기서도 한강변을 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좀 걷어달라는 말을 못하겠다.

   내 주치의가 다녀갔다. 내일 아침에 보조기 차고, 앉는 연습부터 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이제 희망이 생긴다. 지옥의 시간에서의 탈출이다. 아침식사는 밥을 먹었다. 점심때부터는 죽을 신청했다. 모두 아내가 먹여준다. 또 저녁이 내려왔다. 나는 잠 들기는 커녕 졸리는 기색마저 없다. 아내가 옆에 있어서 자세 변경, 배액 관, 각종 주사하는 배관 정리 등을 도와준다. 잠시라도 아내가 없으면 마음이 심하게 불안해진다. 내가 아내를 잠시도 떠나지 못하게 붙잡아 놓는다. 갑자기 도저히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엄습한다. 그냥 못 있겠다. 나도 모르게 ‘아야, 아야!’ 하고 신음이 새 나온다. 지금까지의 통증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시 “결국 수술 괜히 시작했다. 죽고 싶다.”하는 말까지 내 뱉었다. 아내도 듣기 거북했는지 좀 참으라고만 말한다. 아내는 다른 환자 잠 방해한다고 눈치 아닌 눈치를 준다. 그런 아내에게 내편이 안 돼 준다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들어서 무척 야속하게 느껴졌다.

   간호사한테 내 통증을 단말마적인 목소리로 호소했더니 새로 주사액을 달아서 관으로 넣어준다. 그러면서 자주 줄 수 없는 진통제라고 귀띔한다. 연결해 준 뒤 얼마 안 있으니 모든 통증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기분도 아주 평온해 진다. 이게 바로 마약성 진통제 모르핀이라는 거로구나 하는 혼자 생각을 해 본다.   2022. 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