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창안의 풍경, 창밖의 풍경

청솔고개 2022. 2. 21. 21:30

 

                                                                                                                              청솔고개

   새벽은 항상 두 아이의 방문과 특유의 떼쓰는 듯한 소리로 우리는 잠을 깬다. 내가 그런 아이 울음을 돌고래 울음이라고 이름 붙여 줬다. 아이들은 아침마다 이 시간이면 우리 방에 나란히 들어와서 자명종 구실을 해 준다. 제 외할미는 그런 아이가 마냥 살가운 듯 안아주고 잡아준다. 지금부터 첫째가 아침 9시 30분 즈음에 어린이집 출발할 때까지는 이 공간은 혼돈 그 자체다. 나는 그런 정신없는 시간이 오히려 좋다. 너무 조용한 시간은 오히려 망상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오늘도 이런 아이들의 함박 같은 웃음소리, 재롱, 울음소리, 떼쓰는 소리가 아득한 여운으로 남는다.

   오늘 아침에는 잔뜩 흐린 날씨였다. 곧 무어라도 내릴 것만 같다. 멀리 산록에도 구름인지 먼지인지 뿌옇게 덮여있다. 언젠가는 한 번 가봐야 하겠다면서 여태 산 이름조차 잘 모른다. 오늘 아침은 그런대로 여유가 있어서 이렇게 바깥을 살피게 된다. 아이 엄마, 아빠는 오늘 출근했다. 아침 이유식을 달게 먹은 둘째가 제 외할미 등에 꼭 붙어서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다. 외할미의 아이 업는 솜씨는 제법 맵다. 아이 금세 볼이 발그레해진다. 아내는 곧 두디기를 풀고 내려 누인다. 아이가 눈을 살포시 감고 있다. 살며시 이불을 덮어주고 등을 토닥토닥 다독여 준다. 아이는 조금 꼼지락거리더니만 이내 곤한 잠에 빠진다. 아이가 잠자고 있는 얼굴에는 세상 모든 평화가 다 내린 것 같다. 축복이다. 아이는 오전 잠에 빠져 있는 아이의 입가에 볼우물을 짓는다.

   다시 창밖으로 눈을 돌린다. 빨간 색 코트를 여미고 있는 여자 행인이 하얀 반려 견 하나를 끌고 바삐 걸어가고 있다. 검은 패딩을 입은 젊은 듯이 보이는 여자는 주민 센터로 향하는 계단으로 해서 바삐 내려가고 있다. 직원인가, 민원인인가. 주차장에는 노란색 버스가 미등을 켜고 빠져나가고 있다. 1층이라 창 너머는 그대로 작은 정원이다. 청록색 구상나무에는 오늘은 눈이 안 덮인다. 그 너머 벚나무는 아직 짙은 갈색을 띠고 있다. 봄을 대비해서 생명의 에너지를 비축하고 있는 듯 믿음직하다. 벚꽃 필 때 있어보지 않아서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다.

   키가 나지막한 노부부가 앞길에 오늘도 동행하고 있다. 서로 팔짱을 끼고 있다. 아내가 약간 불편해 보인다. 그 아내의 몸이 옆의 남편에게 살짝 기울어져 있다. 이 부부는 오전 산책을 매일 나오는 것 같다. 이제는 그 걸음걸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머리가 새하얀 할아버지가 킥보드를 타고 가는 사내아이를 끌고 가듯이 데리고 간다. 아마 아이가 어린이집 가는 데 안 간다고 떼쓰다가 늦게 출발한 것 같다. 머리를 곱게 묶어 올린 고운 눈매의 아낙이 오른손을 들고 아주 천천히 걷고 있다. 왼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있다. 걸음마 연습한다. 수족이 불편한가 보다. 왼쪽 골목에서 목줄에 이끌려 나오는 강아지가 화단에 뒷다리 하나를 들고 찍하고 제 땅 표시한다고 오줌을 산다. 강아지 주인은 천천히 기다려주는 것 같다. 앞길의 행인들은 걸으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나는 참 궁금하다.

   점심때는 눈발이 내린다. 제법 굵은 눈송이가 바람에 펄럭인다. 눈보라다. 아내가 눈발을 보고는 “여기서는 눈 구경은 많이 하네요.” 한다. 두 살 꼬맹이 둘째한테도 눈 구경을 시켜 주고 싶어서 창가로 데리고 갔다. 둘째는 “우우, 푸푸” 하는 소리를 내면서 신기한 듯 눈발을 바라다본다. 그 소리가 마치 타잔 울음 같다. 문명사회에 적응하지 못해서 내는 동물적인 울음 같아 보인다.  아이의 그런 원시의 생명성이 부럽다. 아이의 눈에는 펄펄 날리는 눈발이 어떤 모습으로 비칠 것인지 궁금하다. 아이는 마냥 천진한 웃음을 짓는데 입가의 작은 보조개가 웃을 때마다 살짝살짝 파인다. 이 아이는 에너지가 넘친다. 혼자 뭔가 마음대로 안 돼서 용을 쓸 때는 얼굴이 빨개지는 게 마치 역도 선수가 포효하는 목소리와 표정을 짓는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실제 두 살 남짓 더 먹은 제 오빠를 제압한다. 또 뭔가 끄집어내서 집어 던지기 선수다. 투포환 선수라도 하려는가. 나는 둘째의 얼굴에서 이맘때의 제 어미를 찾아낸다. 눈매와 입매가 바로 제 어미 것이다. 제 어미가 우리에게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면 이 둘째는 제 어미의 가장 소중한 보물일 것이다.

   제 오빠는 제 엄마 아빠에게 이런 터프한 동생을 “혼내 버려, 혼내 버려!”하고 일러 주기 일쑤다. 그리고는 늘 먼저 울음을 터뜨린다. 엄마 아빠는 연신 “그러지 마!”를 연습시킨다. 제 동생에게 제가 당당하게 대응하라는 거다.

   3년 전 5월 봄날에 내가 달포 간 첫째 돌보아 준 적이 생각난다. 아이가 6개월 되었을 때다. 제 어미가 산후 무리해서 팔목을 잘 못 쓴다 해서 내가 도와주러 왔던 것이다. 그 때 첫째는 너무 차분했었다. 내가 안아서 창가 의자에 앉혀서 창문을 두드리며 “아가야, 세상 구경하자, 저건 택시란 차이고, 그 앞에는 버스라는 차란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있구나. 어어, 멍멍이가 오늘은 세 마리나 보이네. 저 봐라, 처음 보는 멍멍이 끼리 코를 부비고 인사하네. 어째 이 외할비가 세상구경 시켜주니 재미있재? 너도 나중에 크면 이 외할비한테 더 큰 세상구경 시켜 줄래?”하고 설명해 주면 아이는 다 알아들었다는 듯이 미동도 하지 않고 바깥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이 너른 거실의 창을 통한 세상구경에 아주 관심을 보였다. 이제 다섯 살이 된 그 아이는 그래서 그런지 호기심 천국이었다. 그새 시간이 많이 흘렀다.

   이 도시에 기거한 지도 어언 42일이 됐다. 한 달 살이는 훨씬 지났다. 여기서 나의 바깥나들이는 채 일 주일도 안 되는 것 같다. 당분간 허리의 보조기가 내게는 멍에다. 언젠가는 멍에를 벗어 던지고 나도 세상구경 하러 가야할 터인데. 이제 이번 주말에는 여기를 떠나야 한다. 그 동안 미루기도 하고 부탁해 놓았던 고향에서의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는 제주도 한 달 살이 간다고 하는데 나는 나만의 서울살이를 마치고 귀향한다.    2022.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