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행로(行路)
8소년의 방황 12, 새로운 도약
청솔고개
2022. 3. 15. 23:36
청솔고개
예비고사를 치렀다. 합격했다. 솔직히 예비고사는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었다. 본고사에서 학과 선택 문제가 당면 과제였다. 그 때 같은 비의 교단에서 절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한마디 던진 말, ‘국립 사범대 국어교육과가 괜찮다. 고향 마을 두 해 선배가 그러더라.’ 옳다! 이거다! 그때 언뜻 스쳐가는 한 생각, ‘지금까지 살아온 내 생애가 나름 억울하다. 그러면 이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라도 이 사실을 해명해야 한다. 그러자면 글 쓰는 학과, 아니면 적어도 글과 관련된 학과를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교사되는 건 차치하고라도 일단 국문학 혹은 국어교육을 전공하자. 그래서 나의 이 억울함을 글로써 풀자. 또 고등학교 시절에 내가 아무리 공부를 안 해도 국어 성적만큼은 계속 유지해 오지 않았던가. 국어과 내용에 제일 흥미와 관심이 많았지 않았던가. 비록 지방 국립대지만 당시로서는 그 대학의 사범대 국어교육과에 들어가기는 무척 힘든 건 사실이지만 한 번 도전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야말로 소년의 진로 방향의 급선회다. 자연계 과정에서 인문계 중에서 인문계라 할 수 있는 국어교육과 선택한 것이다.
국어교육과에 불합격하면 후기 공대라도 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때 대학의 자연계 학과 선택에 대한 정보와 진학지도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공대하면 떠오르는 게 지역의 철공소나 변전소 같은 것밖에 없었다. 소년 자신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학교에서도 지도하지 않았다. 고3 담임교사는 수학 담당이었는데 나처럼 한미(寒微)한 아이한테 관심을 줄 만큼 한가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는 거의 대부분 영수 교과 현직 교사들은 과외지도를 일삼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처럼 현직 교사의 과외 행위가 불법이 아니었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국립 공대는 전기(前期)가 몇 안 되었고 그나마 거의 신설 단계였다. 실험 장비가 불비하고 강의 수준도 아주 낮았다고 했다. 물론 이 사실을 소년이 직접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심지어 모 국립대 공대 모과는 인근 공업고등학교 실험실을 빌려서 사용한다는 말까지 돌았다. 지방 사립 공대는 기반을 갖춘 학과도 많았었지만 국립대와 공납금 차이가 많았다. 대부분의 사립 지방 공대는 후기였었다. 그래서 당장 선택할 필요는 없었다. 소년이 수학과 과학에 보통이상의 수준이라도 보였다면 과감하게 서울에 있는 하나밖에 없는 국립 공대에 지원해 볼 생각도 했지만 이는 미달이나 되면 몰라도 1%의 가능성도 없는 일이었다.
사실 소년이 국립 사대 인문계 학과에서 첫째 둘째 다투는 학과에 합격하리라는 보장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뭔가 내심 믿는 구석이라도 있었는지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졌다.
소년은 아버지와 함께 입학시험을 치르러 갔다. 아버지와의 이런 동행은 참 부담스러웠다. 소년 일가의 대구 인근 해안마을 큰집에 갔다. 마음이 불안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었지만 하늘에 모든 것을 맡기는 심경으로 닥치는 대로 처신해 갔다. 솔직히 합격 가능성은 1%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솔직히 전기(前期)(1차) 기회가 있으니 기회를 한 번 써 본다는 것 외에 다른 의미는 없었다. 아버지한테 소년은 솔직히 말해서 자신이 없다고 말씀드리면서 후기 원서라도 사 가야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래도 한 번 기대해 보자고 하셨다.
드디어 합격자 방이 발표되는 날, 대학 본관 앞 돌벽에 합격자가 공개되었다. 소년은 눈을 크게 뜰 수가 없었다. 그런데 1%밖에 안 된다는 합격 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소년은 감격했다. 그의 생애에 가장 감격스러운 날이 아니었을까 싶다. 2.5:1 경쟁률, 그 당시 예비고사 거르고 난 뒤 비율치고는 만만치 않은 거다. 그런데 경쟁률이 문제가 아니라 도전하는 수준이 내가 거의 범접할 수 없었던 것이기에 그 감동은 더했다. 지역 및 전국의 명문고등학교에서 뽑힌 준재들인 것이다. 소년은 그때만 해도 그것이 소년을 비호(庇護)해 주시는 그분, 절대자의 섭리하심이라고 굳게 믿고 더욱 그 믿음에 보은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바로 고향에 와서 다시 성전에 가서 진정성 어린 감사 기도에 매진하였다. 소년의 인생은 비로소 제자리를 좀 찾아 앉은 것 같았다.
소년의 심리적 힐링은 이 뜻하지 않는 대학 합격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건 정말 이전과 이후,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되는 것’과 같은 세상의 열림이었다. 2022. 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