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밭

그해의 농막일기 4(농막이사, 채전밭 일구기, 묵밭에 묻은 쓰레기 파내기, 2012. 3. 10.~2012. 3. 11.)

청솔고개 2022. 3. 19. 16:28

                                                                                                                              청솔고개

2012. 3. 10. 토. 흐림

   10시에 이것저것 모두 준비해서 큰집으로 향했다. 아내도 반찬이랑 비누 등 생필품을 챙겨주었다. 고맙다. 큰집에 가니 여기는 준비가 덜 되었다. 나도 모르게 이사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며 약간 투덜거려진다. 시장과 하나로 마트에서 휴대용 가스버너, 풀, 생수, 라면 등 여러 가지를 동생과 같이 준비해서 갔다. 아침엔 진눈개비가 내리더니 날이 좀 춥다. 이것저것 치우면서 점심은 시험 삼아 라면을 끓여먹어 보았다. 동생에게 휴대용가스버너 사용법도 일러 줄 겸. 그런대로 생활이 되는 것 같았다.

   오후엔 문 뒷면 등 아직 좀 더러운 부분을 도배했다. 한결 깨끗해진 게 보기 좋았다. 햇빛에 말리려고 했던 침대 매트는 날씨 변덕 때문에 몇 번이나 내놓았다가 들여 놓곤 했어야 했다. 오후 3시쯤 방향제를 친 침대를 깔고 전기담요도 얹고 이불도 펴 보았다. 제법 아늑했다. 동생과의 이 작업은 앞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ㅈㅂ아재가 손봐주는 바람에 지하수도 개통이 되고 해서 저녁엔 일부러 밥을 해 먹어보았다. 물 조정이 좀 잘 못되어서 밥이 많이 질다. 그래도 좋았다. 김치로 밥을 먹으니 맛이 좋았다. 전기담요는 무척 따뜻했다. 첫 하룻밤은 동생하고 꼭 같이 자 보려고 했는데 전기담요를 두 사람이 깔기에는 너무 좁아서 저녁 8시 지나서 집에 돌아왔다. 동생 혼자 두고 오려니 마음이 무척 애잔했다. 오늘 저녁 몹시 춥다고 하는데 걱정이다. 오는 길에 빵 세 통을 샀다. 한 통은 어머니 아버지께 드리니 퍽 좋아하셨다. 이런 저런 경과보고를 드리고 집으로 왔다. 내일은 오전 10시 쯤 가기로 약속했다.

 

2012. 3. 11. 일. 맑음

   아침 7시 40분에 텔레비전에서 내가 즐겨하는 영산앨범 ‘산’ 프로를 보았다. 나도 숨이 턱턱 막히는 산길을 한 번 원 없이 걸어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당분간 동생 일 때문에 좀 접어 두어야지. 11시 거의 다 되어서 큰집에 들러서 남은 이사 물품을 실었다. 이불, 요, 옷도 다 내 놓은 걸 보고 동생이 한 번씩 큰집에 올 수 있으니 좀 남겨 놓았으면 좋겠다고 말씀 드렸다. 이런 걸 볼 때, 아버지는 동생이 영 성가신 존재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좀 서운했다.

   점심은 밥과 라면으로 했다. 버너가 화력이 약해서 라면 하나 끓이는데 30분 이상 걸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밥부터 먹고 라면은 나중에 먹었다. 오후 늦게 비로소 시간이 좀 나서 옆의 묵밭을 손질해 보았다. 쓰레기 태운 찌꺼기가 땅에 그대로 묻혀 있어서 파내니 마대로 4개 이상 되었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것 같았다. 바람이 심해서 일하는데 애를 먹었다. 그래도 동생은 묵묵히 해 나갔다. 이 모든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두었다. 고랑을 파고 풀을 캐냈다. ㅈㅂ아재가 일러준 대로 풀뿌리 흙을 다 털어내는 작업은 무척 더디었다. 그래도 완두콩 한 줄은 심어 보았다. 고랑에 심는지 이랑에 심는지 잘 몰라서 일단 고랑에 심어 놓았다. 작업을 하면서도 자꾸 떠오르는 망념, 그래 언젠가는 이 모든 일들이 하나의 기억으로만 존재할 날이 오겠지라는 생각만 간절하다. 육체적 고난, 봉사의 염만이 나를 구원할 거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6시 다 되어서 내가 할 일도 남아 있고 해서 집으로 출발했다. 큰 집에 잠깐 들러서 어머니 아버지 뵙고 왔다. 그래도 네가 수고해서 이 정도라도 된다고 하시는 말씀이 듣기는 좋았으나 여전히 가슴이 아프다.    2022. 3.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