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밭

그해의 농막일기 8/ 고추모종 심기, 고구마 모종 심을 밭 일구기, 채소 수확(2012. 5. 2.~2012. 5. 13.)

청솔고개 2022. 3. 23. 18:03

 

                                                                                                                              청솔고개

2012. 5. 2. 수. 흐림

   오후에 아내와 같이 농막을 둘러보았다. 동생은 잘 있었다.

 

2012. 5. 5. 토. 맑음

   아침에 고추모종 준비해서 심는다고 농막에 바로 나갔다. 하루 종일 밭에서 풀매고 고구마 심을 땅을 일구어나갔다. 점심 때 동생과 같이 김치와 참치 캔으로 식사를 했다. 고추모종은 오늘 또 준비 안 되어서 못 심었다. 우리가 그냥 허송한 건 아니지만 좀 마음이 편치 않다. 비닐하우스 속의 고추 모가 괜찮을지 모르겠다. ㅈㅂ아재가 좀 무심해 보인다. 이랑 덮는 비닐은 면 농협과 시내 농약종묘사에서 구입해 놓았다. 각각 4만 2천원, 2만 6천원 들었다. 저녁에는 동생과 같이 달걀과 식빵, 딸기 잼으로 식사를 했다. 형제간에 이런 시간 오붓이 가지는 사람도 흔치 않다고 생각하고 큰 행복이라고 여긴다.

 

2012. 5. 10. 목. 흐림

   퇴근 후 6시 30분 지나서 냉장고 운반차를 만나 동생한테 줄 냉장고를 싣고 농막에 갔다. 동생의 표정이 무척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 동생을 이렇게 주눅 들게 한 근원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어머니 휴대폰도 갖다 주면서 사용법도 일러주고 한번 해 보았다. 이제 급한 연락할 일이 있어도 안심이 된다. 마음을 심하게 다쳐서 그런지 도움을 주어도 고맙다는 표현이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표정은 많이 부드러워지고 좋아졌다.

 

2012. 5. 13. 일. 흐림

   점심 먹고 2시 지나 고향 마을 뒷산에 있는 왕릉 옆 골짜기에 갔다. 좀 깊은 그늘이라 쑥이 부드럽고 키가 크다. 잘 꺾어진다. 잠시 꺾으니 한 봉지가 된다. 어린 시절 소 먹이러 가면서 중간에 목말랐을 때 마셨던 샘구멍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무성하게 자란 잣나무, 소나무들뿐이다. 이제는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려도 큰 감흥이 없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내는 쑥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좀 알아두었다는 취나물종류, 뺍쟁이[질경이]도 뜯었다. 무척 즐거운 표정이다. 농막으로 오면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서쪽 옛날 상엿집 있던 옆 동산에서 아카시아 꽃도 땄다. 차로 달여 먹으면 좋다고 했다. 향이 좋다. 청춘시절 이 아카시아 향 때문에 얼마나 마음아파 했으며 얼마나 아련해 했던가. 그래 아카시아 향훈이라고 했었지. 같이 땄다. 지금은 그냥 지나가는 일일지 몰라도 언젠가는 아름다운 추억의 정수로만 남을 것이리니.

 

   농막에 도착해서 상추도 뽑고, 시금치도 베었다. 관리기가 고장 나서 아직 고추모를 못 심었다고 동생이 말했다. 너무 늦은 게 아닌가, 적이 신경 쓰인다. 동생은 잘 있었다. 그런데 설사가 난다고 했다. 걱정이다. 어제 모임에서 친구 부인에게 얻은 들깨, 부지깽이나물, 우엉 씨를 뿌리고 물을 줬다. 이럴 때가 그래도 제일 마음이 편하다. 아내가 시동생과 함께 상추와 시금치를 다듬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한 30년 전 모습을 보는 듯해서 참 좋다. 저녁 무렵이 되니 샛날이 좀 풀리고 약간 더워진다. 겉옷을 다 벗고 일을 해도 괜찮다. 흐린 날씨지만 마음은 밝다. 7시 지나서 면소 옆 단골식당에서 돼지찌개로 저녁을 같이 먹었다. 그래도 동생과 아내 이렇게 셋이서 시간을 보내니 더욱 좋은 기분이다. 그래도 우리가 이 정도 소통하고 지낼 수 있다는 거, 행복하다. 즐겁다.    2020. 3.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