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밭

그해의 농막일기 14/ 참깨포기 솎아주기, 고춧대 세워주기(2012. 7. 1.~2012. 7. 3.)

청솔고개 2022. 3. 29. 01:44

                                                                                                                    청솔고개

2012. 7. 1. 일. 맑음

   둘째를 시외터미널까지 데려다 주고 큰집에 가서 부모님께는 그간의 농사 진행 상황을 간단히 말씀 드렸다. 이어서 동생한테 줄 쌀과 우리 먹을 쌀을 나눠 싣고 농막에 갔다. 동생은 더러 그랬듯이 약간 의아해하면서 뚱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아준다. 마침 ㅈㅂ아재를 만나서 참깨 솎아주는 작업 설명을 듣고 바로 돌입했다. 가끔씩 구름도 끼고 선들선들 바람도 불지만 역시 7월의 더위는 얼굴과 온몸을 화끈거리게 했다. 세 사람이 꼼짝 않고 달라붙어 가장 실한 놈 한 포기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ㅈㅂ아재가 건네주는 농사용 작은 전지로 작업을 하니 오후 2시까지 거의 열한 개 이랑 중 여덟 이랑 정도는 마칠 수 있었다. 모든 생명의 원리, 실한 놈만 살아남고 약한 놈은 도태된다는 비정한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오후 5시쯤 참깨 솎아 주는 작업은 마무리하고 고춧대 세우는 작업을 오른쪽 이랑부터 시작했다. 욕심내서 좀 더 바르게 잡아 주려니 뚝 하고 그만 대 전체가 부러진다. 가슴이 아려온다. 마치 내 자식의 뼈가 부러져 잘못되어 버린 심경이다. 뭐라도 욕심내 무리하면 이런 불행이 오는 것 아닌가. 사람 농사도, 자식 농사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 실감난다. 오후 8시가 넘도록 고춧대 작업을 하니 아내는 폐현수막을 깐다. 고맙다. 아픈 팔목을 무릅쓰고 이렇게 동행해 주는 것만 해도 고맙다. 그래서 "당신의 동참은 내가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것보다 더 큰 힘을 보태는 것 같다." 하고 말해 주었더니 아내는 "그 말을 듣고 내가 어찌 당신을 도와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고 화답해 왔다. 집으로 오는 차안에서 아내와의 대화다.

2012. 7. 2. 월. 맑음

   며칠 전부터 농막, 농장 관련 비용을 정리해 본다. 이게 내 생애 자료 중 참 중요한 것이 될 것 같다. 진작 정리해 두었다면 쉽게 처리될 것인데 이리저리 확인해 보아야 한다. 오후 5시 퇴근 시간 맞추어 농막에 나갔다. 동생이 무척 지친 표정이다. 무어라고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얼굴은 익어서 검붉고 항상 땀이 비친다. 고추밭 맨 오른쪽 이랑부터 넘어지거나 뒤틀어진 고추를 바로 잡아서 묶거나 잡아매어 주고 어떤 것은 살짝 들어 올려 잡아매어 주는 작업의 손길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엊그제 두 그루 정도 무리한 힘을 주다가 부러뜨려 보았기 때문이다. 주렁주렁 달린 고추대가 부러진 모습은 참 안쓰럽고 아까워보였다. 고추들이 모두 검푸른 윤기를 내며 싱싱하게 굵어지고 있다.

   마침 ㅈㅂ아재가 보였다. 풀 매기, 약치기, 넘어진 고추 잡아매어 주기 등에 대해 궁금하거나 걱정되는 걸 물어 보았다. 풀매기는 2명 분량의 일손만 하면 될 것을 그만 시기를 놓쳐서 5,6명 일손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조만간 놉을 해야 할 거라는 사실, 벌써 벌레가 고추를 파고들어 안을 파먹는 걸 확인한 사실, 농약은 지금 배합해서 치면 좋겠다는 사실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모두 여간 힘이 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12. 7. 3. 화. 맑음

   아침에 농사 짓는 문제로 아내와  살짝 언쟁을 벌였다. 내가 놉 하는 이야기를 했더니 그런 마음으로 어떻게 농장을 꾸려나가겠느냐 하면서 나를 나무라는 듯한 말을 한다. 참 어렵다. 어제 ㅈㅂ아재 말은 동생은 일을 하면 잘 하는 데, 그래서 조금만 해 주면 될 텐데 의욕이 부족하다고 했다. 너무 많은 걸 기대하지 말자. 그 아이한테. 애초와 비교했을 때 이 정도라도 얼마나 발전한 거냐. 무덥다. 장마 기간의 전형적인 습도가 불쾌지수를 더욱 높인다.    2022. 3.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