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밭

그해의 농막일기 18(채전 밭 돌보기, 8월 3일 납품 내역, 청과시장 경매장 직접 출하하기, 비 맞으면서 홍고추 수확, 2012. 8. 10.~2012. 8. 15.)

청솔고개 2022. 4. 2. 01:03

                                                                                                               청솔고개

2012. 8. 10. 금. 흐린 후 비

   일주일간의 빡빡한 일정을 마치고 모처럼 가지는 자유 시간이 주어진 아침. 오히려 아득하고 답답하다. 좀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농막에 나가봐야 한다는 생각에 나갈 준비를 했다. 농막에 도착하니 동생은 길 옆 그늘 밑에서 쉬고 있었다. 밭에 물은 다 댄 상태였다. 이것저것 그동안 일을 물어 본 후, 채전 밭에 가서 가지, 호박 등을 살펴보았다. 물을 좀 준 흔적이 있어서 반가웠다. 가지가 저번보다는 좀 탱탱해진 것 같다. 호박 두어 개, 가지 대여섯 개 등을 땄다. 호박은 거의 크고 작은 것 합쳐서 열 개 이상은 달린 것 같았다. 너무 가물어서 호박 줄과 잎이 시들어버리는 바람에 그동안 잘 보이지 않았던 호박 달린 게 많이 드러났다. 그런데 논 가까이 물기가 좀 있는 서쪽은 아직 호박넝쿨이 무성하게 땅을 덮고 있어서 잘 알아볼 수 없었다. 그 동안 동생이 꾸준히 물을 준 듯한 가지가 제법 실하고 탱탱하다.

   오후에는 동생과 같이 이웃 마을 ㅇㅇ가든에 가서 개고기 수육을 먹었다. 기침하는 동생한테 좋을 것 같았다. 오후에 계속 홍고추 따기 작업을 했다.

   다음은 8월 3일 납품한 것의 시세 단가 확인 사항이다. 상품 13박스, 단가 14,700원, 중품 1박스 단가 13,000원, 하품 2박스, 단가 11,600원, 경매비와 운송비 다 제하고 입금된 돈은 200,990원이다. 공제 내역은 상장 수수료 15,910원, 하역비 2,400원, 운임 8,000원 등으로 명세서에 기록돼 있었다.

 

2012. 8. 11. 토. 맑음

   서너 가지 공적 사적 모임이 시작되는 날이다.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고추밭에서 홍고추를 수확했다. 고추가 너무 많이 오지게 달렸다. 어떤 포기는 고추가 굵어져 손가락 들어갈 틈이 없다. 그냥 전지로 잘라 버릴 수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따도 두 줄 겨우 땄을까. 오늘은 일 마치면 많이 지칠 것 같았다.

 

2012. 8. 12. 일. 맑음

   오전 내내 어제에 이어 고추를 땄으나 출하 장소에 도착하는 오후 2시까지의 시간을 맞출 수는 없었다. 그만큼 고추가 많이 달렸다. 얼굴을 타고 내리는 땀 때문에 눈가가 따갑고 짓물러지는 것 같았다.

   수건이 땀에 흠뻑 젖어서 무거울 정도였다. 1차로 72 박스 따 내고 저녁 늦게까지 천천히 선별 작업한 후 아주 더 늦은 시간에 공판장에 직접 납품할 예정이다.

   28박스를 다시 따서 ㅇㅅ중앙청과시장 경매장으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마음이 급해 몇 차례 전화를 하니 새벽 3시까지 받아준다는 것이다. 가는 도중 빵으로 저녁을 때우고. 이리저리 물어서 겨우 하치할 수 있었다. 대단한 농산물의 집하장이다. 경북, 경남의 모든 농산물은 다 여기에 모이는 것 같았다. 오이, 호박, 과일 등도 산더미 같이 산적해 있다, 여름밤의 열기가 이곳 집하장에 가득하다. 다 마치고 돌아오니 기분이 정말 좋다. 오는 길은 7번 국도로 돌아서 도착했다. 밤 11시가 지났다. 너무 피곤해서 몇 차례 졸음운전을 한 것 같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냥 씻지도 않고 고꾸라지듯 잠들어버렸다.

 

2012. 8. 14. 화. 흐림

   둘째가 내 차를 쓰는 바람에 큰집에 가서 아버지차를 몰고 오전 10시까지 농막에 나갔다. 오늘 동생 월례 진료가 있기 때문이다. 마치고 오는 걸음에 내과 의원에 들러서 동생 기침을 진료하도록 하고 난 후 같이 농막으로 갔다. 점심은 동생과 함께 근처 반점에서 모처럼 짜장면을 먹었다. 오후에는 다시 고추 따기 작업을 했다.

 

2012. 8. 15. 수. 비

   비가 온다. 가지고 간 우의는 동생한테 주었다. 비를 흠뻑 맞고 고추를 따니 안면 튼 근처 농장의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안쓰럽다는 듯이 말을 건넨다. “괜찮습니다. 비오니까 더 일하기가 좋은 데요. 샤워하듯이 시원해서 덥지도 않고요.” 그분들의 마음 써줌과 정겨움이 고맙다. 비는 오지만 땅의 열기, 기온 등으로 더욱 후텁지근하다. 추위나 저체온증 같은 건 걱정할 필요도 없다. 문득 둘째와 같이 지리산 종주 때 종일 비 맞아서 힘들었던 생각이 난다. 오늘은 2차 고추 따기 3일째, 지난 일요일까지 다 따지 못한 몇 줄을 마저 따니 상품 23박스, 중품 2박스가 나왔다. 농협에 납품했다.

   동생이 계속 기침을 한다. 혼자 힘들게 살아가는데 몸 건강이라도 뒷받침되어야 할 텐데 걱정이다. 어제 내과의원에 다시 가서 치료 받았지만 별로 차도가 보이지 않는다. 저녁 무렵에 아내의 제안으로 부모님 모시고 식사하러 오리가든 식당에 갔다. 우리 중국 여행 여비 지원에 대한 답례라고나 할까. 이번 농사일에 동생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좋은 시간이었다.    2022. 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