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밭

그해의 농막일기 22/ 5차 홍고추 수확 및 경매장에 납품, 참깨 타작 마무리, 홍고추 건조(2012. 9. 2.~2012. 9. 16.)

청솔고개 2022. 4. 6. 06:59

                                                                                                                  청솔고개

2012. 9. 2. 일. 맑음

   새벽 5시까지 농막에 나간다고 해 놓고 내가 일부러 알람을 못들은 체 해버렸다. 아내가 수면시간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견뎌야 일도 하는 것 아닌가. 아침 7시에 출발해서 큰집에 가서 김치 가지고 가니 7시 30분쯤 되었다. 아무래도 오늘 고추 수확량만 해도 청과물경매장까지 가야 할 것 같다. 햇볕은 쨍쨍하지만 역시 그 맛이 가을 맛이다. 선들선들한 기운이 섞여 있다. 암만해도 53상자 이상은 안 될 것 같아서 일단 납품하고 오후에 다시 작업했다. 납품하러 가는데 농협의 경제부 직원이 우리를 보더니 연신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오후 6시 좀 지나서 경매장으로 출발했다. 동생한테도 수고 했다고 등을 토닥여 주니, 밝고 진지한 표정으로 “수고했니더.”라고 화답하는 게 참 좋았다.

   홍고추 10상자는 실어 가지고 한 시간 정도 걸려서 중앙청과 시장 경매장까지 갔다. 아내와 이렇게 살아가는 치열한 나날, 이 열정의 나날과 순간은 영원히 기억되리라. 가는 길에 고개 넘어가다가 아내가 휴게소에서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사먹자고 해서 잠시 숨을 돌렸다. 그래, 늘 이렇게 여행하는 기분으로, 드라이브하는 기분으로 살아가는 거다. 웃음경 삼아서. 납품은 순순히 이루어졌다. 참 쉬웠다. 그 자리에서 빵과 커피로 저녁을 하고 디엠비시청도 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오니 9시 쯤. 아! 열심히, 열정만으로 산 하루. 암만 생각해도 이번 농막 일은 잘 착수한 것 같았다. 동생한테 형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고, 그 동한 함께한 시간, 함께 흘린 땀, 함께한 식사 자리도 결코 헛되지는 않으리라.

 

2012. 9. 4. 화. 흐린 후, 비, 갬

   오늘 이상하게 많이 피곤하다. 잠이 막 쏟아진다. 주말 농사일 과로 때문인가. 비가 온다고 해서 오늘 저녁에 참깨 타작하러 가야 하긴 하는데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 아내는 비가 오든 안 오든 일단 주말로 미루자는 생각인 듯했다. 내심 나도 거기에 동조하고 싶다. 주말 농장 일이 천연 사우나 몇 시간 한 것 같다. 이렇게 땀을 쏟으니, 체중이 붙을 일이 있는가. 이러다 당뇨, 혈압이 있는 나로서는 망가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 오전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다. 많이 시원해진 느낌이다. 비는 이래서 좋다

 

2012. 9. 8. 토. 맑음

   아침에 정말 일어나기 싫었다. 속으로 비라도 억수로 좀 퍼부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내가 다그친다. 야속하다. 천천히 일어나서 나가니 10시 되었다. 6차 홍고추 수확이다. 마지막 고추 한 줄씩 따고 참깨 타작을 했다. 지겹기도 하고 망념도 자꾸 떠오르는 게 기분이 다소 저조해진다. 오후가 되니 좀 괜찮아진다. 여기 모기가 정말 영악하다. 작은 산모기는 소리 없이 끝까지 따라 붙어서 고통을 준다. 오늘 저녁이 유별나게 심하다. 오리가든식당에서 오리 불고기로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동생이 잘 먹어서 참 좋다. 식당 주인하고 농사 이야기 등을 나누다 보니 학교 후배였다. 반갑다. 아내는 농사나 많이 아는 것처럼 이것저것 막 주워 삼키는 거 보니 대견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고추건조기 이야기도 나왔다. 잘 될 것 같았다.

2012. 9. 9. 일. 비

   오전엔 묘원 합동 벌초 묘제 행사 후 점심 먹고 회의를 했다. 오후에 다시 농막에 가서 아내와 동생은 참깨 타작을 마무리하고 난 주변을 벌초했다.

 

2012. 9. 15. 토. 비.

   태풍이 온다고 한다. 흐리고 비가 내린다. 오전에 고추 건조기가 있는 집을 종숙모님께 안내 받아 고추를 싣고 갔다. 생전의 우리 할머니를 잘 아신다는 주인 할머니는 참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정말 별것도 다해 본다. 농막에 나가 고추를 담아서 종숙모님이 아는 댁에 건조를 맡겼다. 우리 고추를 보고 실하다고 했다. 이번으로 여섯 번째 수확인데도, 아직 상품이 괜찮은 모양이다. 내심 정말 뿌듯한 기분이 든다. 아내도 동감일 것이다. 오후에는 태풍 오기 전에 서둘러 홍고추를 땄다. 오늘 점심은 아내가 삼계탕을 끓여 와서 모두 같이했다. 아내의 정성과 애살이 고맙다. 영계백숙의 정이 진한 국물처럼 듣는다. 그간의 노동의 후유증인가. 아내가 팔과 허리가 많이 아프다고 했다. 아내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꾸역꾸역 일한다. 농삿일해 보면 의욕이 넘치는 것 같다. 욕심이 있다고도, 앙발궂다고도.

 

2012. 9. 16. 일. 심한 바람과 비

   태풍이 영향이 점점 거세지는 것 같다 벌써 비가 세차게 내리고 바람도 심하다. 오늘 농막에는 늦게 나갔다. 나는 고구마 줄기 들쳐주고, 호박, 가지 등을 찾아보기도 하고, 고추도 좀 땄다. 온 몸이 젖어 추워서 혼이 났다. 아내의 우의를 걸치니 괜찮았다. 아내는 참깨를 까불고 동생은 젖은 고추를 닦았다. 먼 훗날 이날의 모습은 추억 속의 한 풍경으로 남을 것 같다. 태풍이 몰려오는 우중에 바람은 고추밭을 휘감고, 농막은 빗소리에 잠겨 들고 만산은 운무에 휘감겨들고 바로 옆 산의 운해는 색 다른 정경을 제공한다. 선경이다.        2022. 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