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밭

그해의 농막일기 23/ 홍고추 6차 수확 및 말리기, 참깨 타작 마무리, 말린 고추와 참깨 판매, 호박 찾아내기, 가을 무와 상추 씨 파종(2012. 9. 17.~2012. 9. 27.)

청솔고개 2022. 4. 7. 03:10

                                                                                           청솔고개

2012. 9. 17. 월. 심한 바람과 비

   태풍 '산바' 때문에 세상이 몽땅 우왕좌왕한다. 농막 사정이 걱정이 되어 동생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원이 꺼졌다고만 한다. 내심 큰 걱정이 되어서 ㅈㅂ아재에게 연락했더니 괜찮다고 했다. 오후에 겨우 연락이 되어서 확인해 보니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저녁에 아내가 동생 줄 반찬을 준비해서 농막에 가보자고 한다. 이럴 땐 아내가 정말 고맙다. 동생이 반가운 표정으로 우릴 맞는다. 비가 농막 안으로 넘쳐 들어와서 많이 걱정했다고 내게 보고한다. 동생에게 고구마 줄기 무친 것 등을 전해 주고 고추를 좀 다시 널어놓고 왔다.

 

2012. 9. 20. 목. 맑음

   학교 개교기념일로 휴일이다. 점심 먹고 늦게 아내와 같이 농막에 갔다. 이제 고추도 끝물이다.

   여섯 번째 수확하는 고추의 모양이 기괴한 것들도 있다. 병이든 것도 꽤 있었다. 그래도 다 소중하다. 호박밭에 들어가서 단호박, 애호박, 누릉디도 찾아보았다. 마치 숨겨진 검은 보물처럼 단호박의 발견은 그 자체가 작은 감동이고 기쁨이었다. 혹 깨를 잃어버릴까봐 차에 실어왔다. 들어간 정성이 얼마인데.

 

2012. 9. 22. 토. 맑음

   한없이 맑은 가을 날씨다. 좀 늦게 농막에 갔다. 동생이 따다 놓은 고추를 다시 건조기에 넣어야 하는데 1시까지 가지고 오라는 전갈을 받고 선별한다고 세 사람이 부산을 떨었다. 고추가 많이 물러 터졌다. 아깝다. 진물이 나고 거품도 생긴다. 12시 30분경 종숙모님 모시고 건조기가 있는 그 집으로 갔다. 주인 할머니와 아들이 논에 가고 아직 오지 않았다. 주인할머니가 와서 새 고추를 다시 집어넣고 말린 고추를 가져왔다. 30근 18킬로그램이다. 많은 양이다. 오늘 가져가는 것도 그만할 것 같다고 했다. 이것도 보람이다. 점심 때 모처럼 동생과 나는 볶음밥, 아내는 짜장면을 시켜서 먹었다. 볶음밥이 생각보다 맛이 없었다.

   오후엔 다시 호박밭에서 호박 탐사, 큰 것 작 은 것, 단호박 등이 줄줄이 나왔다. 또다시 산모기의 습격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따갑다. 아내가 무씨와 상추씨를 준비해 놓아서 채전밭 들깨와 콜라비 옆에 밭을 다시 일구었다. 그런데 여름내 잡초뿌리가 너무 억세서 일단 시작만 해 놓았다. 정구지를 캐내서 차에 실어 놓았다. 이놈이 우리 집 뜰 화분에서 탐스럽게 자라는 모습을 상상하니 참 즐거워진다. 정구지의 진한 내음이 코를 찌른다. 집에 오면서 동생이 따 놓은 끝물 풋고추 홍고추를 우리가 자주 가는 근처 오리식당에 한 자루 주고 왔다. 주인이 참 좋아한다. 이런 모습을 보니 우리도 기분이 좋다. 오늘 깨 타작과 손질의 최종 마무리를 했다. 개운하다. 늘 아내가 큰 일꾼이다. 이제 깨를 나눠주거나 파는 일만 남았다. 돌아오면서 둘째의 초등 때 담임교사 댁을 방문해서 고추 18근 전달하고 호박, 참깨 등 우리 수확물은 선물로 전했다. 기분이 좋다. 이렇게 나눠 먹을 수 있는 거 역시 농사일의 기쁨이 아니겠는가. ㅈㅂ아재한테 우리 셋이 가서 깨 5되(고봉 한말)를 전했다. 두 말은 선물로 받고 세 말 값은 치른다고 하는데 극구 사양을 했다. 동생한테 깨 자루를 들게 해서 같이 감사의 뜻을 전하도록 한 게 더 의의가 있었다.

 

2012. 9. 23. 일. 맑음

   친구 혼사에 참석했다가 답례금만 받아서 황황히 집으로 왔다. 아내는 농작물 뒤처리 때문에 정신이 없다. 고구마 줄기 벗겨서 삶아 말리고, 단호박 찌고, 생 땅콩 사서 찌고. 오후 3시 가까이 되어서 농막에 나갔다. 동생은 남은 고추를 따고 아내는 연한 호박잎을 따서 손질하거나 고구마 줄기를 다듬었다. 나는 어제 일구어 놓은 채전밭에 무, 상추씨를 뿌리고 물을 주었다. 무는 어떻게 싹이 틀까 기대가 잔뜩 된다. 가을 상추는 또 어떻고. 오후 참 먹을 시간에 준비해간 족발로 ㅈㅂ아재 내외를 불러서 같이 소주 한 잔 했다. ㅈㅂ아재가 고맙다. 참 좋은 모습이고 분위기다. 결과적으로 이번 농사가 그런대로 성공을 했으니 모두들 고무되어 있어 이런 자리도 더욱 보람을 느낀다. 날씨는 선선해지고 하늘의 구름도 더욱 상쾌해지는 것 같다. 참 평화로운 풍경이다. 오늘도 또 단호박 세 덩이를 찾아냈다. 마치 검은 보물과 같이 소중한 느낌을 주는 단호박이다.

2012. 9. 24. 월. 맑음

   아내가 지인들에게 깨와 고추를 많이 팔았다고 신명나 한다. 나는 아내에게 세일즈를 참 잘한다고 추켜세워 주었다.

 

2012. 9. 27. 목. 맑음

   저녁에 고향 마을 가서 고추 말린 것 찾아왔다. 이 모두 아내의 일 몫이니 참 기가 찰 노릇이다. 팔목, 손가락, 어깨 등이 모두 아프다고 난리인데.    2022. 4.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