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밭
그날의 산행일기, 설악산 공룡능선 종주 2
청솔고개
2022. 4. 17. 23:13
청솔고개
2012. 10. 13. 토. 저녁, 맑음.
희운각 대피소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예약 확인을 하고 개인용 모포를 지급받았다. 마치 군대의 보급품을 받는 기분이었다. 숙소는 물론 내무반인 셈이고. 우리는 낮에 속초 시장에서 점심 먹을 때 떡집에서 구입한 찹쌀떡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이런 산행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안전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는 짐의 최소화다. 버너니, 코펠 같은 것은 철제라서 무게가 만만찮은 걸 여러 번 겪었기 때문에 휴대하지 않았다. 식사 후 좀 쉬었다.
대피소의 밤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기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내일 새벽 공룡능선 종주를 앞두고 있어서 휴식과 충전을 위해서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서 미리 잠을 청해 보았다. 표고차500미터 코스를 거의 10시간 정도를 걸어야 한다는 부감감이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실내는 먼지와 땀 냄새, 투숙 산꾼들의 말소리 때문에 거의 잠을 이루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밤이 깊어갈수록 이 대피소에 크고 작은 소란이 발생하고 있었다. 설악산 최고의 단풍철을 맞아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무작정 내일 산행을 이어나갈 무모한 젊은 산꾼들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하도 시끄러워 나도 한번 나가보았다. 그들은 처음에는 대피소 인근 공터에서 노숙하거나 텐트를 치고 숙박하려고 했는데 오늘 저녁 급격한 기온 강하로 추워지니까 대피소 안으로 밀고 들어온 것이다. 물론 야영 준비를 충분히 해서 텐트를 치고 있는 팀들도 더러 보였다. 그때 누가 현재 기온이 0도라고 하는 걸 들었다. 처음에는 한둘이 떼를 쓰듯이 얼어 죽겠다고 읍소를 하면서 밀고 들어오니까 다른 산꾼들도 따라 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어찌 알았던지 오늘 저녁 숙소의 남은 자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예약되어 있다고 관리인이 답변하자 아직까지 도착하지 않는 경우는 예약 규정 위반이니 자기들에게 숙소를 내달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하는 것이다. 관리인도 난감해했다. 급기야 고함소리도 들리고 욕설도 난무했다. 마치 여기가 피난처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남녀 잠자리 구분도 없이 군대 침상처럼 모로 누워 새우잠을 청하는데 옆에 사람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 때문에 피곤이 극에 달했지만 2시 지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2022. 4.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