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生涯)의 아이들

끝까지 네 편이 되어 줄게 (2/2)/이런 내 ‘생애의 아이들’을 만나서 이제야 나는 참된 ‘어른의 시간’을 가진다

청솔고개 2020. 5. 14. 06:30

끝까지 네 편이 되어 줄게 (2/2)

                                                                      청솔고개

 

*다음은 5월만 되면 생각나는, 끝까지 네 편이 되어 주지 못해서 가슴 아파했던 지난날 나의 교단 이야기이다.

한 해 우리나라에서 학업 중단하는 학생은 6만 여명, 그 중 절반은 건강, 가정 사정이고 나머지는 학교 부적응이 그 원인이라고 통계에 나와 있다. 매년 3만 여명의 학업부적응학생이 사회에 나와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직간접적으로 우리 사회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가뜩이나 저출산으로 인구부족 위기에서 인적자원 활용 측면에서도 필요한 사업이라고 국가가 판단한 것이리라. 수년 전부터 교육부가 주관해서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학업중단숙려제 프로그램 활동이 그 중심이다.

올해로 두 해째, 나는 교육지원청을 통해서 의뢰된 위기의 청소년들을 찾아 각급학교 상담실로 향한다. 나는 중등학교 교단교사로 396개월 동안 교과 및 진로 진학 지도, 교육 행정 업무 등에 쫓겨 반 아이 하나하나에게 모두 진정성어린 맞춤형 돌봄이 충분하지 못했음을 절감해왔다. 70년대 후반엔 한 반에 60 여명이나 되어 좁은 교실 공간에서 몸도 제대로 돌리지 못했었다. 그들의 마음까지 살피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었다. 세심하게 맞춰진 보살핌과 돌봄 없이 그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더 많은 k와 같은 아이들이 나왔을까. 그래서 가슴이 더 먹먹해진다.

여기서 상담 사례의 세세한 내용을 드러내는 건 상담 윤리 상 허용되지 않지만 실제로 부적응으로 고통스러워하다가 더욱 삐뚤어져서 주위의 미움까지 받는 아이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좀 달라져야 한다. 그 절반의 책임은 어른들에게도 있다. 아이들에 대한 방치, 무관심, 무시, 소외, 어른들의 편의주의로 인한 가정 해체, 양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 등은 인권적인 차원에서 볼 때 일종의 학대다. 어른들은 내 자식이니 내가 알아서 한다.’는 아집으로, 또는 개인의 불만, 불안함을 아이들에게 푸는 행태가 근절되지 않을 때 우리 아이들은 더욱 마음이 병들어 간다. 한 아이 개체는 본래 전 세계이고 한 우주이다. 지중(至重)하다. 난 이런 아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새로운 세계를 들여다본다. 존중 한 번 제대로 받아 보지 못해 상처투성이가 된 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이 모든 건 내가 상담활동을 통해서 재확인한 사실이고 절실하고 소중한 깨달음이다.

이 상담 활동의 1차적인 목적은 학업복귀에 있지만 무조건적인 학업복귀 요구는 그런 마음의 힘이 소진된 아이들에게는 마치 말기 암 환자에게 몸에 좋으니 운동을 꾸준히 하라는 소리와 같다. 아픈 마음부터 치유해 주어야 한다. 마음의 힘을 키워주어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2주내 문제 해결을 위한 단기상담이지만 상담 거부 의사 표명으로 만날 약속 정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 동안 매일 전화와 문자를 3~4회 이상 해도 응답 한 번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상담원은 나는 네 편. 기다릴 게. 연락 주렴.’ 하는 심경으로, 마치 집나간 탕자의 아버지, 해질녘 집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 심경이 된다. 아랫목 이불 밑에 따스한 놋그릇에 밥 담아서 이제나 저제나 올까나 싶어 잠 못 이루고 문풍지 바람 소리만 나도 버선발로 달려갈 옛 아낙의 심경이 된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마음 졸이며 다시 마음의 문을 두드리면 몇몇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대화에 응한다. 전화도 받고 상담 약속도 한다. 말문을 닫았던 아이의 입이 트이는 이때가 가장 고맙다. 그 아이는 속으로 분명 나의 도움을 말없이 기다렸을 것이다. 그 순간 그 아이들도 내가 자기편이라는 걸 안다. 그럴 땐 진정한 소통이 된다.

나는 지금도 많은 k와 같은 아이를 기다리고 지켜본다. 그들을 돌보기 위해서는 상담원 마음 하나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최신 상담 치료 이론과 실제에 대해서 공부하고 사례개념회의에도 열성을 다하고 있다. 개개 아이들이 처한 입장이 다 다르니 거기에 따른 맞춤형 처방이 필요하다. 청소년의 심리 이해와 공감은 기본이다.

오늘도 나는 나의 내담자를 만나러 상담센터에 들러 기록하고 멀게는 40km도 더 떨어진 관외 지역까지도 나간다. 미리 준비하여 메모해간, 내가 전해줄 말과 아이들에게 들을 말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조금씩 바뀌어가는 아이의 표정과 미소를 그리면서, 그에 따른 학업복귀, 대안학교 위탁, 검정고시, 재입학, 사회취업의 뉴스타트라는 새 출발 희망을 꿈꾸면서…….

올봄에는 작년에 상담했던 한 아이가 메시지로 다시 상담 받기를 원해왔다. 내가 그 아이한테 마음의 힘을 좀 되었던 것 같아서 정말 보람을 느꼈다. 그래서 내가 더 고맙다. 나의 자존감도 되살아나는 순간이다. 그러나 상담했던 다른 한 아이는 결국 집을 나오고 학교까지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 가슴이 참 아프다. 다 나의 잘못 같다. 그 아이한테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다.

일주일 동안 전화, 메시지, 음성메시지 모두 21회로 나타나 있지만 한 번 만나는 건 고사하고 응답하지 않은 아이도 있다. 하루에 약속 시간을 너덧 번 바꾸고도 결국 상담 장에 나오지 않은 아이도 있다. 그래도 기다리면서 끝까지 네 편이 되어 줄게!’

이런 내 생애의 아이들을 만나서 이제야 나는 참된 어른의 시간을 가진다. (‘끝까지 네 편이 되어 줄게후편, . 20175월에 쓴 글)

                                                                        2020. 5.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