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이렇게 살아보니, 나의 척추관협착증 체험기 4

청솔고개 2022. 4. 25. 22:42

                                                                                                  청솔고개

   2021. 12. 16. 의 5차 방문에서는 종일 검사만 하였다. 지난번 방문에서 예약한 대로 진행했다. 병원에서의 검사는 완전히 외계 탐사와 같은 분위기다. 너무 어리둥절하고 각 과를 몰라서 이리저리 물으니 다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그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 같다. 어제 집에서 미리 직접 출입증처리 같은 걸 조치해 놓아서 다행이다.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아주 혼란스러웠을 것 같았다.

   먼저 출입증 큐알코드 확인해서 출입하고 바로 수납 코너에 가서 오늘 비용 모두 수납했다. 47만원 가까이 된다. 서관 2층 입원전검사실에 가서 흉부엑스레이, 채혈, 소변 검사, 입원전 심전도검사 등을 하고 나니 오전 11시 반이 지났다. 오후 1시 반 재개되는 검사까지는 시간이 애매해서 아내가 준비해준 빵을 먹으러 적당한 데를 찾아도 잘 없다. 결국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봐 가면서, 또 이 밀폐, 밀접 극치의 공간에서 내가 마스크를 벗고 점심 때우기 위해서 우적우적 빵가루 흘리면서 먹는 몰골이 어찌 보면 처량하기도 하고 또한 생존의 그 현장이라고 생각되기도 하였다.

   문득 감염병으로 좀비처럼 된 인간 군상이 드러나는 극한 상황이 생각난다. 내가 마스크를 잠시 벗었다는 것만으로도 벌써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고 일식당, 중식당에 마구 들어갈 수도 없는 것이다. 거기도 줄을 서서 출입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 마스크 벗고 먹을 것이니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급히 먹어치웠다. 목이 좀 막히는 것 같아서 아내가 준비해준 식수와 홍삼음료로 목을 틔웠다. 강화유리 너머로 시원하게 자란 나무들이 부러웠다.

   갈수록 마음이 무거워진다. 여기 방문객이 다 그럴까. 병원 지하 편의점 근처였다. 바로 옆은 병원지하공간 특유의 조경이 돼 있고 집에서 역시 아내가 싸준 홍삼 주스를 체하지 않을 정도로 급히 먹고 물마시고 쉬고 있었다. 어제 상경할 때 고속철 안에서부터 답답한 이 기분의 실체가 뭣인지 잘 모르겠다. 여기 있으니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이 실감 날 듯하다. 즐거움이 일순 정지된 것 같다. 다만 고향서 아이의 배웅과 아이와의 대화만 생각날 뿐이다. 사람의 노경의 생존이 이렇게 번잡하고 지난한 지 순간순간 실감하겠다. 빨리 고향 가고 싶은 생각뿐이다. 이제 한 시 지나 다시 세 가지 검사가 남았다. 이렇게 그냥 흘러가는 거다.

   미리 배부해준 자료에 나타난 순서래도 동관2층 심장검사실 심장초음파 검사, 서관2층 호흡기 검사실 폐기능검사, 신관2층 신관핵의학과 골밀도 검사 다 끝내니 3시 조금 지났다. 시간을 많이 단축한 셈이다. 중간 중간 걷기가 힘들고 때로는 지팡이를 짚고 중심 잡는 것도 잘 안 돼서 많이 주저앉고 싶었다. 이제 남이 어떻게 보는 건 별로 신경도 안 쓰인다. 나는 잘 걷지도 못하는 처지에서 이 곳 저 곳 검사실을 물어서 진행하는 검사는 무척 힘이 들었고 번거로웠지만 만의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수술 부적응증이나 후유증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사전 대비라 오히려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어찌 보면 나의 척추관협착증은 큰 수술이긴 하지만 보편적으로 노화로 진행되는, 쉽게 말하자면 ‘다 아는 병’이라서 생각에 따라 크게 중시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병의 치료를 위한 수술에서도 이만큼의 치밀한 사전 검사를 시행하는데 다른 중증 암이나, 뇌심혈관계 중중 질환의 수술에는 오죽하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안 되는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의 진료 시스템은 대단히 잘 갖춰져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러니 모든 환자들이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러한 환자 개개인이나 가족들을 쉽게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4시 좀 지났다. 오늘은 정말 꽉 찬 하루였다.

   2021. 12. 22. 의 6차 방문에서는 검사 결과 확인과 수술을 위한 입원 전, 관련된 과의 의사와의 면담이 예정돼 있다. 새벽부터 마음이 또 바빠진다. 11시 15분 오전 진료인데 어쩌다 보니 9시에 나갔다가 조금 기다려서 택시를 기다렸는데 다행히 좀 있으니 온다. 2시간도 더 남았다. 날씨는 참 푸근했다.

   오늘도 역시 너무나 복잡하고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몇 번 와 보았던 터라 이제는 좀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동관 1층 심장내과에 일단 가 보았다. 위치 확인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냥 자리에 앉아서 기다렸다. 오전에는 혈압측정 후 심장병원 심장내과 외래 방식으로, 오후에는 호흡내과 외래 방식으로 진료했는데 검사 결과 상 특별한 사항이 나타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날이 좀 추웠지만 바깥 벤치에 나가 햇살을 받으며 식사를 했다. 밀폐 공간이 아니라 감염병에 대한 걱정이 많이 줄어들었다.    2022. 4.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