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이렇게 살아보니, 나의 척추관협착증 체험기 9

청솔고개 2022. 4. 30. 00:33

                                                                                                     청솔고개

   2022. 1. 26. 퇴원해서 집에 온 후 아파트 뜰을 산책하고 싶은데 아직 몸이 그만큼은 회복되지 않아서 자신이 없다. 꾸준히 걷고 자세도 의식적으로 바로 해 보았다. 발바닥 앞의 저림은 그대로다. 이렇게 무료한 회복 기간에 꼬맹이 둘의 재롱은 좋은 치료약이 될 것 같다. 하루 종일 제 할미, 어미, 아비와의 부대낌 그 자체가 양육이다.

   어린이집 갔던 큰 꼬맹이가 원아 중 한 아이의 조부모가 확진자가 됐다고 꼬맹이도 검사 받아야 한다고 연락이 와서 잠시 야단법석을 떨었다. 내심 불안하다. 나 같은 면역 약자가 걸리면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다시 연락 와서 꼬맹이의 검사는 보류해도 된다고 했다. 일단 다행이다. 오후에는 낮잠 한숨 잤다. 환자의 하루하루가 이러한 걸 실감하겠다. 난생 처음 가보는 길이다. 그냥 육신의 회복을 위해 모든 걸 내려놓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하루하루가 갈수록 너무나 단순 명료해진다. 식사시간은 그래도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메뉴가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이다.

   엊저녁부터 책 읽어 주는 유튜브를 찾아내고 나 같은 환자가 집에서 시간 보내기는 딱 알맞은 것 같아서 좋았다. 소설, 수필, 인생 경영, 처세, 심리, 상담, 종교 등 다양한 분야가 있다. 앞으로 이를 맘껏 골라서 즐기면 될 것 같았다. 이 기회를 통하여 법정의 말씀처럼 풍진세상에서 좀 비껴서 나 자신의 내면에 더욱 충실하도록 하자.

 

   2022.1.27. 엊저녁에는 침상 안쪽에서 보조기를 벗고 자 보았다. 괜찮았다. 혹시 잠결에 몸부림치다가 낙상이라도 하면 도로 아미타불이 될 것 같아서였다. 병원에서 간호사가 주의에 주의를 당부하던 게 생각나서였다. 잘못되면 재수술해야 하는데 그 상황은 끔찍하다고 했다. 다만 화장실 갈 때는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기어가야 한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홀가분하다.

   아침부터 딸내미 내외는 큰 꼬맹이 심해진 기침 때문에 전전긍긍한다. 우리 내외가 우리 아이들을 키울 때 어떻게 했던가 하고 얘기를 나눴다. 작은 꼬맹이 백신 맞히는 날이라 둘 다 하나씩 데리고 병원으로 향한다. 점심 때 어린이집에 가지 못한 큰 꼬맹이 밥 먹인다고 또 난리다. 이런 것을 보니 그때 이 꼬맹이들만 했던 딸내미가 정말 두 아이의 엄마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기야 내가 벌써 칠십하고도 하나를 보태는 나이임에랴.

   오늘도 걸으며, 쉬며, 폰의 유튜브 들으면서 자다가 깨서 간식 먹고 때 되면 식사하는 게 하루의 일과다. 생존을 위한 하루 같다. 그래도 틈틈이 글도 쓴다. 이것은 나를 찾아가는 작업은 죽을 때까지 지속해야 하는 것이다.

   저녁에 소변보다가 대변을 실례해버렸다. 난감한 일이다. 내가 아직 대변 뒤처리를 혼자 할 수 없어서 아내를 불러서 도움을 청했다. 내 팔이 처리해야 할 그 부분까지 닿지 않는 것이다. 계속 이렇게 몸이 굳어져있으면 장애가 인정되는가 싶다. 안 그래도 6개월 등 소정 기간이 지나면 장애인 신청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나도 5월 검사때는 장애인 신체 검사 신청을 해 볼 것이다. 전번 2월 진료때에 장애인 검진 예약을 했는데 날짜가 며칠 모자라서 취소한다는 전화까지 받은 적이 있었다.  가뜩이나 거의 1년 동안 운동을 할 수 없어서 굳어질 대로 굳어진 내 팔다리, 허리인데 보조기마저 차고 있으니 유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혹 혼자서 양말이라도 신으려고 용을 쓰면 양발바닥이나 종아리에 영락없이 쥐가 나는 것이다. 병원 당국에 몇 차례 이야기를 했지만 원래 올 수 있는 후유증 정도로 치부하면서 기다려 보자고만 한다. 답답한 노릇이다.

   문득 아침에 식탁위에 내가 남겨놓은 약껍질을 때문에 아내와 티격태격했던 게 생각난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나의 심신이라 아무것도 아닌 언행에 너무 예민해지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아내를 힘들게 하는 나의 이런 막말에 대해서 진솔하게 사과했다. "당신도 이제 나를 귀찮게 여기는 것 같다. 긴병에 뭐가 없다니 그 말이 옳은 걸 알았다. 운운……." 하고 내가 뱉어버린 감당하지도 못할 심한 말이 나중에 생각하니 참 부끄럽다. 아내는 나를 위해 지극정성으로 하는 데까지 다하려고 하는데 무심하게 내가 그런 말까지 했다니.

   아내가 애 아비와 같이 수술 부위에 소독을 해 주었다. 내가 이리 과분한 사랑을 받는다. 두 간호사의 덕에 내가 산다고 말해 주었다.     2022. 4.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