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버지!
어머니의 노래 4
청솔고개
2022. 5. 19. 23:19
청솔고개
2014. 12. 5. 어제부터 날이 많이 차다. 오늘 -3.7도라 한다. 새벽 6시 반 지나 아내와 같이 병원으로 갔다. 도착하니 아침 7시 다 되었다. 좀 있으니 간병사가 왔다. 화요일 오후 요양병원에서 나와 오늘까지 이 병원에 와서 네 번째 이사다. 응급실, 7113호실, 8106호실, 7101호1인실, 3층중환자실. 언제까지 이리해야 하는가. 이리라도 할 수 있으면 어머니가 아직 계시는 것이고 못하면 어머니는 이 세상에 안 계시는 거다. 이리 생각하니 이런 수고도 아직은 감사해야 하지 않는가.
면회시간을 기다리다가 아내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면서 첫째한테 오늘 서울 가는 것은 물론, 1월 여행 비행기 표 취소까지 부탁한다. 나도 이번에 친구 개업 사무실도 찾아볼 겸 다녀오면 기분이 좀 전환될 것 같기도 하지만 욕심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세상사, 인생사 마음대로 되던가.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내려놓자. 아침 7시에 아내와 내가 같이 3층 외과계중환자실에 들어갔다. 어머니는 기력이 많이 쇠잔해지신 모습이다. 안쓰럽고 불쌍하시다. 가만히 다가가서 어머니를 일깨워드린다. 아직까지 날 아시는 것 같기는 하다. 퉁퉁 부은 손등과 발등을 만져드린다. 산 사람의 몸에서 물이 살짝 배어나온다. 어떤 고통일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터. 이 자식의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다. 이 순간 자식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이것뿐. 눈을 감고 손을 모으면서 간구해본다. 천지신명이라도, 부처님이라도 아니면 하나님이라도 좋다. 눈시울이 뜨거워져 오는 것 같다. 다른 것은 없고 모쪼록 고통이 한 점이라도 덜하시도록 기도한다. 한참 동안 어머니를 지켜본 후 다시 나왔다. 간병사가 와서 아버지를 기다린다. 이윽고 아버지가 오셔서 병실로 들어가신다. 아버지가 한참 있다가 나오셔서 간병사에게 이틀 치 간병비를 지불했다.
집에 와서 아내와 같이 빵과 커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아내는 어제 한 숨도 못자서 잠을 청한다. 나는 점심 면회 시간을 기다렸다가 갔다. 오전 11시 40분 면회했다. 담당 간호사한테 답답해서 물었더니 현재 어머니는 폐부종으로 폐에 물이 차고 그래서 약간의 호흡곤란이 있으며 영양은 링거액으로 섭취하고 있고, 이뇨제를 투약해서 신장치료를 하고 있다고 했다. 혈압과 산소포화도는 90%로 거의 정상이다. 맥박도 정상이다. 내가 말을 시켜보니까 뭐라고 하시는데 잘 못 알아들을 것 같다. 내가 *이 큰 아들이라는 건 아시는 것 같다.
집에 와서 있는데 또 병실 담당자가 연락을 해왔다. 몸에 모든 주사, 영양 통로가 막혀서 하는 수없이 목 핏줄에 구멍을 뚫고 처치해야 한다고 했다. 다소간의 기흉과 부정맥, 혈류 같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면서 아들인 나의 양해를 구한다. 아내가 잠결에 듣고 있다가 간병사가 그것만은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면서 정색한다. 내가 결정할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아버지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나는 병원에 환자를 의탁하고 있는 한 의사를 믿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봐야 하는 건 아버지와 내가 같은 생각이다.
지금은 오후 3시, 어머니의 명운이 이렇게 경경각각(頃頃刻刻)인데 밥은 나 혼자서도 잘 먹고 우유도 마시고 또 이렇게 생애기록도 기워본다. 그리고 보다 현실적인 대처로 혹 큰일을 당할 시에 해야 할 매뉴얼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장례식장 연락처, 영정 확대, 부고장 발송할 곳 등을 챙겨서 정리해 보았다. 이럴수록 침착하고 냉정해야 하며 현실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것 정도는 나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목 동맥에 관을 꽂은 어머니 모습이 자꾸 어른거린다. 내 하초도 점점 더 그 마비 증상이 심해온다. 날이 추워져서도 그렇겠지만 요즘 야외 운동, 걷기 같은 건 마음의 여유가 없어 꿈도 못 꾼다. 아! 언제까지 이런 마음과 몸의 상태가 이어질 건지. 아득하다. 아득한 절망, 아득한 절망의 지평선이 안 보이는 것 같다. 오후엔 하 답답해서 좀 쌀쌀하지만 혼자 공원을 걸어보았다. 서러움 같은 것이, 쓸쓸함 같은 것이 밀려온다.
저녁에 아내와 같이 아버지를 모시고 문안 가면서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지금 내 심경으로는 백일이고 천일이고 이렇게 하더라도 어머니께서 일어나실 수만 있다면 원이 없으련만 하는 생각뿐이다. 담당의사와 면담 약속이 있었는데 의사는 아직 오지 않아서 중환자실 간호사한테 거듭 부탁했는데 통화 중이라고만 한다. 참 무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 어머니만 환자가 아니시니 어떡하나.
면회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도 주치의는 오지 않았다. 일단 밖에 나왔다. 좀 있으니 담당 의사가 왔다고 하면서 들어오라고 한다. 셋은 들어갔다. 주치의는 뇌경색, 신부전, 심부전을 담당하는 신경과, 내과, 심장내과로 전과된 상태이고 현재 몸이 부어 있는 상태인 신부전은 이뇨제로, 심부전으로 폐기종이 발생해서 치료 중이며 맥박이나 호흡은 거의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의사가 심각하게 말하는 것은 인공호흡이나 심폐소생술 같은 연명치료 동의 여부를 묻는 것이다.
아버지는 신중하게 듣고 계시다가 우리 보고 먼저 나가 있으라 한다. 의사는 옆에 있다가 아드님의 의견도 필요하다고 거든다. 그래도 내가 다시 아버지한테 나가 있을까요 하고 여쭈니 “그래, 나가 있거라.” 한다. 아버지는 의사가 말한 최종 단계를 상정한 연명치료와 심폐소생술은 동의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엔 대략 2주 정도로 본다는 사실을 들었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을 전해 듣는 순간 이제 정말 올 게 온 건가 싶은 깊은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난 아버지의 결정을 중시할 수밖에. 65년 동고동락 해로하신 두 분의 인연을 그만큼 존중하는 거다. 그리고 환자에 대한 제1 결정권자가 배우자가 아닌가. 아버지를 태워드리고 오는 밤은 너무 춥고 쓸쓸하게 느껴진다. 거의 한 달째 회복의 기미는 홀로 계실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집에 오면서 줄곧 “2주…….”가 되뇌어진다. 2022.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