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버지!

어머니의 노래 6

청솔고개 2022. 5. 21. 01:00

                                                                                                    청솔고개

   2014. 12. 7 아무리 기분 좋게 마신 어제의 술이라지만 과음을 해서 속이 좀 쓰리다. 그렇지만 마신 술만큼 심하진 않고 좀 피곤하다. 잠이 좀 오는 것 같아서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났다. 어제 대 여섯 시간 최고의 기분을 다 소진해 버려서 그런지 아침부터 또 어지러운 마음, 망념, 마음의 구름이 나를 힘들게 한다. 50년 전에도 그랬고 40년, 30년 전에도 그랬었는데 이제 육십 중반에 접어 들어서 그까짓 것 뭐 대수라고 이런 생각이 들 때 최고로 기분이 좋다. 어느 한 순간 격렬하던 치통이 신기하게 멎을 때처럼 말이다.

   아침에 늦잡치다 보면 면회시간 11시 40분을 지키는 것도 허둥대게 된다. 사람은 이렇게 길들이기 나름인 모양이다. 오늘 점심땐 아버지는 안 오셨다. 면회 중 혹 오셨는가 싶어 몇 번이나 밖을 기웃거려도 보았다. 어머니는 몸의 부기는 많이 빠졌다. 보기가 좋아보였다. 맥박수와 호흡수도 무리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몸의 멍도 많이 엷어져 간다. 드리워놓은 약봉지와 계기의 숫자는 한 둘 준 것 같다. 가끔 눈도 좀 뜨시고 우리가 하는 말은 다 들으시고 반응하신다. 다만 통증에 대한 무의식적인 방어가 작동해서 그런지 몸에 손가락 하나만 대도 소스라치게 놀라고 움츠리면서 격렬한 반응을 한다. 말을 붙여도 똑 같은 반응이다. 도리질도 하신다. 잘못하다가는 얼굴이나 피부가 긁힐 것 같기도 하다. 코의 산소호흡기도 빼 놓았다. 워낙 많이 움직이시니 그런가 보다. 그래서 산소포화도 계기 숫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면회 마치고 아내와 같이 시장을 보았다. 그래도 이 시간, 아내와 동행하는 이 시간이 내겐 좀 위안의 시간이다. 요즘은 한 순간도 각종 부정적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시장에서 군밤을 사와서 한겨울의 정감을 만끽했다.

   주변에 대한 나의 오래 굳어지는 인식, 내 허리 통증 등이 번갈아가면서, 혹은 동시 다발적으로 날 옥죈다. 그러면 순간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다. 현직에 있을 땐 그래도 자구책으로 시간 억지로 내서 명상도 하고 체조도 했는데 내가 덜 답답해서 그런가. 그래도 내 생애 어느 한 순간도 쾌청한 하늘이 있었던가. 한두 점 구름은 언제나 내 마음의 하늘에 떠 있었거니, 그 구름송이가 있었기에 오히려 내 생애의 길을 좀 더 낭만적이게 하지는 않았던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내 생애의 가는 길이 소금기만 저벅이거나 풍진만 가득한 건 아니었을 터, 그 졸음 겨운 따스한 봄날 같은 한 순간도 분명히 있었으리라. 찬연한 가을의 양광이 비춰 한들거리는 억새꽃의 춤사위도 있었으리라. 그래서 가슴의 시가 나오고 마음의 글이 나오고 여정의 서정이 샘솟지 않았던가. 이젠 내 마음의 하늘엔 먹장구름만이 짓누르는데 곧 뇌성벽력이라도 휘몰아 칠 기세지만 언젠가는 또 맑아진 해살을 쬘 수 있으리라.

   오늘도 공원을 아내와 같이 걸었다. 햇살도 숨어버리고 음산함과 을씨년스러움, 초겨울날 흐린 하늘의 새꼬리함이 내 기분날씨이자 공원 하늘의 풍정이다. 다리가 좀 저렸지만 걸을 만했다. 동상위에 올라가서 여남은 바퀴 돌았다. 몸에 열이 좀 나니 기분도 좀 고조되었다. 한 두 바퀴는 뛰어보기도 했다. 내가 지금 맘껏 뛸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어떻게 기분이 달라질까? 문득 불과 2,3년까지도 뛰었었는데. 그 때 한 번씩 느끼는 고조된 기분은 정말 잊을 수 없었는데.

   혼자 면회 가는데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와서 다시 했더니 휴대폰을 잘못 건드린 것 같다면서 벌써 와 있다고 하셨다. 만나서 둘이 같이 들어갔다. 어머니의 상태는 좀 좋아진 듯 했다. 목소리에 힘도 실리고 사람도 더 분명히 인지하시는 것 같고 몸의 부종도 거의 가라앉은 것 같았다. 다만 멍 자국은 더욱 퍼져갔지만 농도는 많이 엷어졌다. 코에 산소 호흡기를 꽂아서 산소포화도가 나오는데 80전후이다. 괜찮은 수치라고 생각된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얼굴을 만지시다가 다리를 가볍게 주무르시는 시늉을 하면서 “이렇게 하니 좀 편하나? 시원하나?” 하고 간절하고 다정하게 말씀하신다. 그 목소리와 얼굴 표정엔 60여년의 사랑이 배여 있다. 내가 하나 회한이 드는 것은 어머니의 다리가 저렇게 오글아들 때까지 한 번도 주물러 드리지 못한 거다. 내가 큰집에 갈 때마다 조금씩이라도 주물러 드렸다면 이 지경은 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왠지 손대면 안 되는 걸로 지레짐작하고 한 번도 해 드리지 못한 게 지금에야 생각하니 나의 생각 짧음이고 무심함의 소치 아닌가. “어머니 간호사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빨리 나을 수 있어요. 내일 또 올게요. 편안히 계셔요.”하고 낯에다 가볍게 손으로 만지고는 손끝도 잡아 드렸다. 내 말씀은 알아들으시니 그래도 낫다. 이 인사가 마지막 인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목소리에 더욱 간절함이 묻어난다. 아버지도 “ㅇㅅㅎ씨, 잘 자요. 낼 또 올게”하고 인사를 하고 나오시더니 머뭇거리다 옆에 있는 간호사 보고 정중하고 간곡하게 “ㅇㅅㅎ 환자 잘 좀 부탁드립니다.”하신다. 아버지의 진심이 느껴진다. 아버지는 피곤하시다하면서 그냥 벤치에 앉아계신다. 그러다가 계단으로 내려가는 게 더 쉽다면서 같이 내려왔다. “아버지 밤길 운전 조심하십시오.” 이 순간 따라 구부정하게 걸어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참 쓸쓸하고 외롭고 힘겨워 보이었다.    2022. 5.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