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2022. 5. 25. 00:46
청솔고개
2014. 12. 13. 아버지가 간병 교대를 잊으신 것 같아서 내가 병실에 달려왔다. 11시 쯤 됐다. 12시 지나서 아버지한테 전화 드렸더니 곧 간다고 하신다. 오후 1시 지나서 둘째 여동생과 질녀가 왔다. 오후 4시 다 되어서 나왔다. 김밥 집에 가서 김밥 한 줄과 마트에 가서 빵 세 개를 사서 병원에 왔다. 아버지가 오늘 밤 간병하겠다고 했으나 내가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약주 두어 잔을 하셨지만 별 일 없을 것 같아서 집에 돌아가시게 했다. 둘째 남동생이 내려왔다고 해서 전화했다. 내일 아침 8시 쯤 식사 후 좀 와주었으면 하고 부탁했다. 첫째 남동생하고 같이 오라고 했다. 형제가 많다는 것은 이게 좋은 거다. 십시일반, 수고도 마찬가지다. 10시 죽을 먹이는데 처음엔 물이 안 들어가 간호사를 불러서 조력을 구하는 등 좀 서툴렀지만 잘 한 셈이다.
이제 혼자서 이 밤을 보내야 한다. 아니다. 내 사랑하는 어머니와 같이 보내는 거다. 낮의 그 옭죄어오던 마음이 이제 좀 여유가 생긴다. 6305병실 북쪽 창 너머 보이는 대학 캠퍼스의 불들이 별빛처럼 명멸한다. 아, 내 생애 한 순간, 내 사랑하는 엄마와의 하룻밤, 언젠가는 엄마가 가신 후라도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손을 매어 놓아서 아까 식사 드릴 때도 참 힘들어 하셨는데, 그래서 잠깐 풀어드렸는데 참 편안해 하시는 모습을 뵈니 내가 밤을 새더라도 그리해 드려야 할 터인데. 이제 한밤이다. 병실도 고요하고 병상에는 두 손목이 결박당한 체 고개를 괴롭게 지으시고 눈을 이리저리 불안하게 돌리시는 어머니 모습이 보인다. 아, 언제, 그 먼 후일에 이날, 이 밤, 이 순간을 꼭 기억하리라.
2014. 12. 14. 새벽에 일어나니 마음이 좀 안정된다. 5시 알람에 깨서 좀 머뭇거리다가 어머니 6시 위관식사 준비를 했다. 엊저녁은 좀 비교적 조용히 보내신 것 같다. 내가 네 시간 정도는 잠을 잘 수 있어서 그렇게 생각되는가. 미지근한 물 준비, 주사기 펌프로 소화 정도 검사, 미지근한 메디푸드캔 준비, 약을 물에 개기 등 이 간병인 생활이 좀 익숙해지는 것 같다. 6시 어머니 위관 식사는 잘 처리되었다. 어제 준비한 빵 3개와 커피로 아침을 먹었다. 이제 어머니와의 마지막 동행, 동침인가. 건강하실 땐 큰집에 같이 지내면 뭐라도 잘못되는가 싶을 정도로 하룻밤도 모시지 않았었는데 이제 심신이 피폐해질 대로 된 지금에야 밤새 단말마의 통증 비명 소리를 들으면서 보내는 거다. 이렇게 늦게야. 세상일 다 이런 건가. 8시 좀 지나 남동생 둘이 모두 왔다. 반가웠다. 엄마가 셋째 아들을 자주 찾는다. 막내아들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속을 많이 쓰시게 해서 그런가. 저도 지금에는 여러 많은 생각이 떠오르겠지. 이 말을 둘째 남동생이 듣고는 “엄마, ㅎ이 왔다.”고 하니 생뚱맞게 “ㅎ이 왔으면 어짜라고?”하신다. 목이 메는 것 같다.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기도 한데 한편은 또 담담하다.
6시 위관 식사는 가장 체계적으로 잘 된 것 같다. 어머니는 끊임없이 통증을 호소하신다. 정말 아파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정신 없으셔서, 치매 증상의 일환으로 치부한 것 같기도 하고. 내일 회진 오면 의사한테 물어보아야 할 것 같다. 첫째 여동생 ㅇ이 또 전화했다. 어머니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대화는 잘 안 되었다. ㅇ이가 ㅎ서방을 바꿔줘서 안부 전화를 서로 나누었다. 부서를 바꾸어서 많이 바빠서 전화도 이렇게 늦게 했다면서 2주 후에 아이들하고 꼭 한 번 오겠다고 약속했다.
9시 다 되어서 제일 쿨하게 느껴지는 간호사가 예의 그 씩씩한 목소리로 어머니를 좀 끌어올리자고 한다. 두 번이 더 위로 옮겼다. 그렇게 하루 종일 통증을 호소하다가 거짓말 같이 고요히 잠드신다. 이 간호사 늘 참 고맙다. 어머니 욕창도 보였다. 치료를 부탁했다. 오늘 치료하러 온다고 했다. 정말 너무 아파서 저렇게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고함치는지 아니면 단순히 치매 증상인지 하고 물었더니 “그렇지요. 당연히 통증이지요. 코줄, 오줌 줄도 아프지요.” 이 공감 발언이 참 따스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손 결박, 욕창, 손등 부기 등이 더 있으니 분명 아프실 거다. 어머니는 몸이 저리 단말마의 고통으로 아프고 난 소금기 저벅이며 공포의 불안의 마음 아픔이 극에 달하지만 정말 내 사랑하는 처자, 부모, 형제를 위해 버텨야 한다. 이들에게 내가 필요하다. 내 존재의 이유다. 내 심적 고통과 내 존재의 이유를 대비해보았을 때 그 결과는 명명백백.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잘 견뎌간다. 팽팽히 당겨진 고무줄 같은 내 의식, 언제 뚝 끊어질는지 알 수 없는 상황 아닌가. 2022. 5.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