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버지!

어머니의 노래 14

청솔고개 2022. 5. 29. 00:31

                                                                                     청솔고개

   2014.12. 24.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행복감, 만족감도 좋지만 끊임없는 호기심, 새로움, 가슴 떨림, 신기함, 신비로움이 참 소중하다는 걸 나이 먹을수록 절실히 느낀다.

   1인실에서 어머니와 24시간 혹은 48시간, 72시간 동거를 통해서 또한 새로운 걸 많이 겪고 느낀다. 삶과 생명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인식, 가족 등에 대한 부채의식 등 여러 가지를 발견한다. 오늘따라 어머니는 다리가 오그라들어 가뜩이나 작은 키가 더 작아 보인다. 전장 1미터 조금 더 되는 것 같다. 그런데 팔, 다리의 힘은 대단하시다. 이제 나도 간병에 여유가 생겨서 어머니 굽어진 다리도 열 번씩 자주 펴 드리기도 한다. 제발 이래서 몇 자국이라도 걸어 다니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변을 봐서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하고 다른 데에 묻지 않도록 잘 처리하고 곧잘 닦여드린다. 오늘 새벽에도 달걀 두 개 양 만큼 많은 양의 변을 보셨다. 이제 요령이 많이 생겨서 기저귀를 안 채우고 그냥 깔개로 덮어서 반창고로 대충 고정해 놓는 것이 훨씬 처리하기 좋고 본인한테도 좋다. 습한 서혜부가 거풍도 되고 기저귀 가는 번거로움이나 고통도 없고. 오늘은 아무래도 이불과 요를 갈아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면서 내 생명의 모태를 의식해보기도 한다. 서혜부가 헐어서 속살이 빨갛게 부풀어 올라있다. 파우더라도 좀 쳐 주면 좋을 텐데. 마치 갓난아이 기저귀 채워서 헐어진 데 그러하듯이. 큰 아들한테 모든 걸 맡기고도 아무런 수치심, 인식도 없으신 어머니가 지금은 새근새근 잠드셨다. 엄마는 내 생명의 원천이고 젖줄이다. 난 세 살 박이 갓난애로 돌아가서 살며시 건드려본다. 그때 난 엄마 젖이 잘 안 나와서 참 고생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엄마, 엄마, 어매…….” 울엄마도 가끔 엄마의 엄마가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모양이다. 애절히 부른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정말 엄마 품 같이 포근하고 편안한 곳으로 가서 영면할 텐데. 앞서거니 뒤서거니 누구나 할 것 없이 말이다. “솥뚜껑 열어 두가! 방간에 가서 쌀 찍어 왔나? 문이 안 열린다.”라고 고함치신다. 두 손이 묶여 있은 지 오늘이 40일째, 섬망(譫妄) 증세, 치매(癡呆) 증세 등으로 공간과 시간의 지각이 이상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손목이 결박되어 있는 상황과 위의 어머니가 겪고 있는 상황이 참 부자유스럽다는 건 같은 거니까. 조금만 건드려도 그간 통증에 대한 본능적인 방어와 공포가 있어서인지 “와 일노?”하고 소스라치신다.

   오늘도 이 병실 북쪽 들녘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다 보낸다. 내 예순 중반의 하루가 저무는 걸 어둠사리 내리는 뒷산과 겨울 논을 바라다보면서 안다. 바깥은 어떨까, 추울까, 포근할까.

 

   2014. 12. 25. 아버지를 8시까지 오시게 하는 건 내가 생각해도 좀 무리라고 여겨진다. 그래도 8시 10분에 오셨다. 아버지도 어지간하시다. 노익장(老益壯)이신가.

   오늘은 우리 처음 상면한 날이다. 가까운 데 나들이 떠난다. 아내는 오가면서 차안에서 유심초 가수, 노사연 가수가 맨 처음 부른 ‘사랑하는 그대에게’, ‘사랑’ 노래에 푹 빠져서 열심히 따라 부르고 연습한다. 그런 아내의 노랫소리는 날 행복하게 하고, 이 캄캄한 바닷가를 헤매도 결코 절망하지 않게 한다. 아내의 이 노랫소린 정말 사랑스럽다. 꼭 앳된 소녀 같은 모습이다. 성숙한 처녀의 수줍음도 들어 있다.

   아내는 또 짚불꼼장어를 먹고 싶은지 은근히 서생 ㄱㅇㅈ꼼장어집은 수리 중이고 하면서 운을 뗀다. 나는 오늘은 정말 우리 생애에서 특별한 날이니 아내 청을 기꺼이 들어주기로 맘먹고 가자고 했다. 기장 시장이나 대변항도 가고 싶은 마음 있었으나 자꾸 바뀌면 안 될 것 같아서 오늘은 오로지 “짚불꼼장어!!!”다 해운대로 접어들자 현란한 야경이 눈을 사로잡는다. 시간만 좀 있으면 여기서 하룻밤 묵어가면 참 좋을 텐데. 좀 헤매다가 해운대 달맞이길로 접어들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많은 사람이 겨울인데도 이 길을 걷고 있다. 송정, 기장을 거쳐 서생 지나 8시 다되어서 ‘ㄷㅎ꼼장어나라’에 도착했다. 전에 갔던 ‘ㄱㅇㅈ꼼장어’보다 못지않게 푸짐하고 맛도 있었다. 아내와의 첫 만남 34돌 이벤트 대미인가.

   집에 도착하니 저녁 9시 다 되었다. 아내 봉사활동 선배 ㄱㅁㅎ씨가 선물한 와인을 아까 마트에서 같이 산 치즈로 몇 잔 건배했다. 행복하다. 아낸 와인 한두 잔에 발끝까지 발개진다. 발을 좀 두드려 달랜다. 그런 아내가 사랑스럽다. 우린 술 취해서 거실에서 그냥 잠들어버렸다. 곤하고 달콤한 잠이다. 아내는 어려움을 희망의 끈으로 잘 붙잡고 있다. 버티고 있다. 이런 아내를 위해 내가 존재한다. 내 존재의 이유다. 내가 끝까지 견디고 버티고 존재해야 할 가장 큰 이유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런 생각을 굳혀오지 않았던가. 이 밤 난 많은 걸 생각하고 떠올린다.

 

   2014. 12. 26. 아내는 감기로 병실 오기가 좀 꺼져지고 해서 오늘 아침 10시쯤 내가 아버지를 교대해 드렸다. 이제 어머니의 변 같은 것 처리는 익숙해졌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다 적응하는가 보다. 하루 종일 병실을 지켰다. 지난 일기도 다시 읽어보고 또 순간순간 절대절명으로 소중한 내 생애도 기록해 본다.

   오후 5시 10분에 아버지가 오셔서 좀 얘기 나누다가 20분 지나서 모임에 가기 위해 집으로 나섰다. 조금씩 마신 술이 만취 상태다. 모두들 다시 ㅅ ㅅ 친구 집에 가서 차 한 잔 하고 대화 나누는데 난 그냥 잠들어 버렸다. 친구가 병원 입구까지 태워줘서 10시 좀 지나서 아버지와 교대해드렸다. 이렇게라도 내 정신적 긴장을 좀 이완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다행이다. 기분도 좋다. 술 냄새가 좀 나겠지만 얼굴엔 큰 표는 없는 게 다행이다.    2022. 5.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