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버지!

어머니의 노래 16

청솔고개 2022. 5. 31. 00:06

                                                                                               청솔고개

   2014. 12. 30. 10시에 병실 도착해서 아버지와 교대했다. 아버지 모습이 많이 피곤하고 힘들어 보인다. 그래도 늘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말씀은 빠뜨리지 않으신다. 간절히 그렇게 믿고 싶으시겠기도 하고. 첫째여동생 내외가 2시 30분까지는 온다고 한다. 오후 2시 50분에 작은 조카도 같이 왔다.

   저녁에는 초등 동기 시내 모임에서 동기의 부군 문병을 했다. 그 마을은 막내종조모님의 친정이다. 9순의 고령이시다. 찾아뵈었더니 무척 반가워하신다. 저녁 간병 교대 때문에 모임 친구들하고는 식사 하지 못하고 바로 병실로 왔다. 첫째 여동생 식구들이 아직 다 있었다. 아버지도 계셨다. 아내한테도 연락을 한 후 같이 모여서 한정식에서 식사를 했다. 아버지가 이번 간병은 ㅇㅈ어미가 먼저 제안해서 나누어서 하게 되었다고 그 진실한 고마운 마음을 모두들에게 토로하신다. 아버지의 심중을 충분히 알 것만 같다.

 

   2014. 12. 31. 요즘 자주 꿈을 꾼다. 평화로웠던 내 마음 밭을 일구던 시절이 자주 나타난다. 물론 많이 왜곡되고 변형되어 나타나긴 하지만, 그 상황, 그 시절의 불안, 기대, 희망 등이 교차된다. 병원에 가려고 현관문을 여니 포근히 눈이 제법 쌓여있다. 눈다운 눈은 오늘 섣달 그믐날 내렸다. 차에도 제법 얹혀 있어 빗자루로 쓸어내렸다. 우리 집, 목련나무, 화단, 주차장 등도 모두 백색이다. 훗날 오늘을 또 새로운 기분으로 기억할 수 있으리라.

   아침 10시까지 아내가 준비해 온 도시락과 간식을 들고 병실에 도착했다. 첫째 여동생 식구 셋이 와서 막 어머니 위관영양을 공급하려고 한다. 이들도 가야한다. 여동생은 어머니한테 몇 번이나 목청을 가다듬어 작별 인사를 드려도 어머니는 멍하시다. 그러다가 “알았다. 오냐.” 몇 마디 하신다. 그래도 딸내미는 그것이 반가운 모양이다. 멀리서 언제 또 올까 보냐만 다시 오겠다고 다짐한다. 그건 제 엄마한테 하는 약속이라기보다 딸내미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고 약속이 아니겠는가. 나도 몇 차례 다그쳐보았지만 엄마는 그냥 안타까이 멍한 반응뿐이시다. 나도 가슴이 미어진다. 여동생네 식구들은 떠났다. 내가 있으니 든든하다는 말을 몇 차례나 남기면서. 가슴이 아프고 슬프다. 눈물이 날 것 같다.

 

   어머니 간병을 보다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일일 시간표를 짜보았다.

1. 배변확인 : 매시간 정각 및 매시간 30분마다 2. 냉온 전환 : 냉 매시간 정각, 온 매시간 30분(06:00 ‘냉’부터 시작→‘온’으로) 3. 자세 바꾸어 주기 : 2시간 마다 서편→중앙(하부 높여서 각 다리 펴기 20회씩 5분 및 주무르기 5분 총 10분 물리 치료)→동(편06:00부터 시작, 24:00까지) 4. 기관지 치료 식후 2시간 후 5회 08:00, 12:00, 16:00, 20:00, 23:00 등

   저녁에 낮에 올라간 첫째여동생 내외한테서 안부 전화가 왔다. 고맙다. 지금은 올해 섣달 그믐날 저녁, 나의 청춘 시절,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불안하게 읽었던 기억이 오늘따라 불현듯 떠오른다. 내 나이 예순셋 마지막 2시간을 남겨 놓고 아내한테 간곡한 메시지를 편지 쓰던 기분으로 보냈다. 내가 아내를 맞이하여 정녕 평생을 책임지고 행복하게 해 줄까 하는 의구심을 처음부터 가졌었지만 이제 정말 그 시기가 온 것 같다. 제야의 타종을 위하여 10,9……하고 세어간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드디어 1,0 종이 울린다. 모두들 환호한다. 난 불을 끄고 조용히 소파에 눕는다. “엄마! 엄마도 이제 한 살 더 잡수셨어요. 나도 여든다섯.” 난 조용히 속으로 뇌어본다. 많이 피곤하다. 잠이 곧 올 것 같다.    2022. 5.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