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버지!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안 계신다” 1

청솔고개 2022. 12. 4. 14:05

                                                                                                                                  청솔고개

   아버지 가신 지 오늘로 104일 째다. 멸자(滅者)에게는 해당되는 말인지 몰라도 생자(生者)로 말하면 100일이 지났다. 불교식으로 하면 아버지의 혼백은 이제 지상과 천상(天上) 사이를 떠 도시다가 구천으로 올라가시는 시점인 49재를 두 번이나 치른 셈이다. 흔히 천도재(薦度齋) 중 그 대표적인 것이 49재(齋)에 해당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혼령은 이제 더 편안하신 어떤 곳에 가 계실까? 아버지께서는 이미 25년 전 퇴직하시고 바로 불교법사대학에 입학하셔서 3년에 걸쳐 법사공부에 몰두하셨는데 그땐 아버지께 대체 어떤 고뇌가 있었기에 그러셨나 하고 내가 궁금해 하였는데 내가 아버지만큼 살아보니 조금은 이해가 된다. 아버지는 그때 법사 복을 입고 찍은 커다란 사진을 액자에 넣어서 걸어 두셨다. 반야심경, 천수경, 금강경 등 여러 독경과 목탁 두드림도 곧잘 잘 하셨다. 아버지 전 생애에 걸쳐 몸과 마음의 고통이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108번뇌 일백여덟 가지라면 이제 천상(天上)에 드셨을 테니 하루에 한 가지라도 해소(解消)하신다면 이제 네 가지 남은 셈이다. 부디 아버지의 극락왕생(極樂往生)을 발원(發願)해 본다.

   가신 분은 이렇게 가시고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심하고 무정한 세월은 속절없이 흐른다. 이렇게 밤늦게 혼자 앉아있으니 생전 요양병원에서 단 10분의 몇 차례 대면에서나 입원 중 간병 때 보이셨던 당신의 간절하신 눈매가 떠오르고 끊임없이 뭔가 호소하려고 하시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이래서 세상의 많은 자식들은 부모의 상실과 부재가 오랫동안 실감나지 않는다고 하는가 보다. 방금이라도 “야야! **야…….”하고 어디선가 근심스러운 눈매로 나를 부르시는 듯 하는 착각에도 가끔 빠진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아버지의 빨간 표지의 일기장과 메모장을 보았다. 그 속에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쓰신 2020. 7. 22. 자(字) 마지막 기록이 있었다. 몇 글자 안 되는 그 기록에는 아버지 전 생애에 대한 그리움과 간절함이 그대로 보였다. 당신의 전 생애에 걸친 회한(悔恨)까지도 읽을 수 있었다. 아울러 아버지의 요양병원 생활에서의 힘든 심경을 구구절절 토로하고 있으셨다. 5남매 맏이로서 아버지의 고통, 외로움, 절망, 답답함을 누구보다도 잘 헤아린다고 하는 내가 종국(終局)에는 요양병원에서 아버지가 하시는 통화를 두려워하고 속으로는 피했던 걸 생각하면 후회와 죄책감이 앞선다. 나는 울컥 솟아나는 슬픔을 주체하지 못해 또다시 숨죽여 울어본다. 이래서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안 계신다”가 내 가슴을 때린다.     2022.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