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버지!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안 계신다” 2

청솔고개 2022. 12. 5. 00:11

                                                                                                                              청솔고개

   지난 2년 반 동안 한 번도 지키지 못한 아버지와의 약속을 떠올려 보았다. “아부지요! 제발 좀 진득하게 계시이소. 좀 있으면 이놈의 코로나도 숙지막해지고 하면 아버지 모시고 자주 바람도 쐐 드리고 맛있는 것도 사 드릴게요. 제발요…….” 하루에 심할 때는 7~8회나 전화를 하셔서 당신의 마음의 답답함과 몸의 아픔을 토로하시는데 처음에는 나도 경청하고 관심을 보여드렸지만 나중에는 나도 모르게 아버지를 향한 짜증 섞인 소리가 삐져나왔던 것이었다. “긴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바로 이런 나를 두고 하는 것 같았다. 그것 때문에 주치의와 면담을 하였는데 그 답변은 이렇다. 지금까지 밖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다가 요양병원에 들어온 환자들이 처음에는 겪는 일반적인 현상이니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좀 야속한 주문 같지만 아버지의 전화 받는 것을 적절히 생략하는 것도 한 방안이라고도 했다. 그래야만 환자가 지쳐서 포기하고 그대로 눌러 앉는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할 수 없는 짓이었다. 심리 상담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 대화에서도 그냥 들어주는 것만이라도 그 마음의 고통이나 짐이 반감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코 아버지의 전회를 외면할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 전화를 일부러 한 번도 안 받은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고비 고비마다 후회의 염(念)만 남는다.

   아버지의 심한 피부 가려움이나 비염 때문에 외래 의원 치료를 위해 몇 차례 모시고 나올 때라도 그 좋아하시는 콩국이라도 한 그릇 사 드렸다면 하는 아쉬움과 후회의 마음이 가슴을 때린다. 가슴을 쥐어뜯고 싶은 회한이 남는다. 그때는 병원 밖에 너무 오래 노출되면 코로나19에 감염되는 위험성 때문이라고, 결국 아버지와 병원 동료 환자들의 안녕을 위한다고, 그래서 불가피했다고 생각했었다. 지나고 나서 지금 가슴에 손을 얹고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니 요양병원 밖에서 아버지를 1분 1초라도 더 오래 모시고 있는 게 솔직히 부담스러워 회피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안 계신다”가 내 가슴을 파고든다.    2022. 1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