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버지!

8“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안 계신다” 4

청솔고개 2022. 12. 7. 00:59

                                                                                                                        청솔고개

   아버지의 외래 병원 검사라는 복잡한 경황 중 여유 없어서 그날은 그 좋아하시던 믹서 커피 한 잔이라도 준비해서 같이 나누지 못한 게 마음의 한이 된다. 그 때는 몰랐다. 그 좋아하시던 '낙화유수' 노래를 집에 모시고 가서 피아노로 치시도록 하지는 못할지언정 음원 사이트 찾아서 잠시라도 들려 드릴 수는 있었는데, 이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아버지께서 그날 왕복 5시간 동안 차창에서 펼쳐지는 한여름의 산과 들을 바라보시는 데 빠져드셔서 이를 방해할까봐 그랬다고 우기면  내 마음은 좀 편해질까? 아버지가 생전에 그 많은 시간, 눈을 뜨고 계실 때  “아버지 사랑합니다.” 여덟 자를 아무 데나 써서 보여드리고 읽어 드릴 수도 있었는데, 그 쪽지를 아버지 품에 접어 넣어 드릴 수도 있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날 이후 12일 만에 병원에서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특별면회로 아내와 같이 병실까지 들어갔다. 아버지는 눈이 거의 감겨 있으셨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용태였다. 의식이 있으신 지도 불확실했다. 불과 열흘 남짓, 아버지의 용태가 그렇게 나빠졌다. 나는 아버지께 수없이 아버지를 흔들어 깨우면서 “아버지 눈 함 떠 보이소!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하는 고백이 그때서야 나도 모르게 나왔다.  이때가 아니면 그 말을 영원히 들려드릴 수 없음을 그 순간 내가 직감했다. 아버지가 이대로 가시면 영원히 들려드릴 수 없는 그말이 이제야 생각이 났단 말인가. "아버지 고생 많으시지요? 우리를 낳아서 여태까지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정말 사랑합니다. " 하고. 이런 속뜻의 내 아주 늦어버린 사랑 고백을 들으셨는지 이제는 여쭤볼 길도 없다. 알 수도 없다. 다만 내가 "아부지요, 제 목소리가 들리면 손을 들어보시이소!" 했더니 대신 무릎을 두 세 번 올리시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내 목소리를 알아들으셨음이라고 단정했다. 그때 아내도 옆에서 아버지가 우리 말은 듣고 계시는 것 같다면서 반색했었다.

   나의 전 생애를 살아오면서 매순간의 언행이 회한의 연속이 되는 것을 너무나 두려워하게 되었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 나는 또다시 그런 우를 범하게 되었다. 내 삶의 좌우명이 '후회는 하되, 그 횟수와 강도를 최소화하자" 였는데 또다시 반복하게 되었다. 모두들  아무도 그날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동행이 되리라고는 예감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다급한 병원진료에만 꽂힌 나머지 아버지께 그 순간 무엇을 해 드리는 게 아버지의 삶의 마지막 순간에 소중한 선물이고 가족된 도리인지를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날 다시 돌아와서 내 차에서 휠체어로 요양병원에 안으로 이송할 때 보호자의 싸인 등 절차가 있어서 아내와 같이 들어갔다. 아버지를 맞으러 나오는 간호사에게 가기 전에 뭔가 큰소리로 내게 하시던 한마디 말씀이 있으셨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나는 잘 알아듣지 못했는데 아내가 귀담아 듣고 옆에서 통역을 해주었다. “니 수고 많았다.”라는 뜻이었다. 결국 이 말이 생전 나에게 하신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이셨다. 그러니 당신의 유언(遺言)인 셈이다. 그 다섯 자의 메시지에 아버지께서 맏이인 나에 대한 보내는 마지막이자 간절한 생각이 함축돼 있다고 생각한다.

   그날까지는 그렇게 기력이 유지되셨는데 불과 꼭 3주 후 아버지는 영원히 가셨다. 그래서 그 상황과 현실이 더 믿어지지 않는다.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안 계신다”가 남은 나의 생애에 천석고황(泉石膏肓)이 될 것만 같다.       2022. 1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