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2022. 12. 17. 00:09
청솔고개
며칠 전 해질녘에 근처 공원 숲길을 걸었다. 이 숲은 30대 이후 나의 생활의 근거이며 기본이 되어 왔다. 숲을 걸으면 이 숲에는 아직도 여름날 우리 꼬맹이들의 아장걸음의 발자국이 남아 있고 겨울날 우리 아가들의 입김과 침이 묻어 있는 것 같다. 지금도 그 꼬맹이들이 숲을 달리면서 두 팔 휘두르며, 노래 부르며 웃음 터뜨리는 그 모습이 휙휙 스쳐지나 가는 듯하다. 그 웃음소리로 나뭇가지들이 울린다. 서로 부딪친다.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던 그 낭랑한 웃음소리가 배어있다. 이 숲은 그런 추억의 숲이다. 그래서 참 그립다.
그런데 그 숲에 길이 사라졌다. 엄밀히 말해서 그새 새 길이 너무 많이 생겨서 내가 즐겨 다니던 옛길이 거의 안 보인다. 자취조차 흐릿하다. 그 때까지는 한적하던 이 공원의 숲이 지난 한 세대 기간 동안 도시가 외곽으로 확산돼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장터 같은 곳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급기야 맨발로 걷는 극성파의 풍속이 유행되다보니 그런 길도 새로 나게 된 것이다.
이슬에 젖은 봄풀이나 봄비에 젖은 담우쑥들이 파릇파릇할 때는 나는 하루해 다 지는 줄 모르고 하염없이 걸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이런 숲속에서는 모차르트를 즐겨들었다. 숲의 생명력과 모차르트 음악의 울림이 잘 어울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른 새벽 부지런한 새들이 잠에서 깨서 일제히 제 노래를 합창할 때, 막 뻗어내리는 아침햇살 속에서의 자연과 음악의 어우러짐이 있는 것이다. 그 가치를 더욱 발하는 것이다. 그 생명력은 더욱 가열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길을 걸으면서 희미해져 가는 숲속의 길에 대한 기억을 줄기차게 더듬어 본다. 왔다 갔다 하면서 길의 들머리가 이쯤일까, 저쯤일까. 몇 번 오가다가 희미한 옛사랑의 자취처럼 그 길의 흔적을 찾게 되었다. 반가웠다. 아직도 아침이슬에 축축해진, 땅에 깔린 낙엽과 솔잎을 발로 끌어다가 들머리, 날머리 표를 해 두었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복원된 옛길을 두어 번 정도 다시 걸어본다. '사박사박, 저벅저벅' 하고 걷는 소리가 울려온다. 길바닥이 여린 풀들이 말라붙은 흙 땅인지, 아니면 낙엽더미가 눈발처럼 깔린 길인지에 따라서 이렇게 소리가 달리 들린다.
이 길을 걷는 지금의 기분은 인생 말경에 고향의 낯익은 골목에서 첫사랑을 재회하는 것 같은 것이리라. 다만 그것이 그의 생애에 실제 첫사랑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전제한 경우의 일이겠지만. 어쨌든 참으로 그립고 보고 싶은 희미한 첫사랑의 기억이 되리라. 2022.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