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버림과 지님, 기록과 기억 1

청솔고개 2023. 1. 3. 20:39

 

                                                                                                                                                   청솔고개

   지난날의 교직 동료 하나가 내게 나무를 자른 단면에 “버리는 것만이 완전한 정리이다”라는 글귀를 쓴 팻말을 주었다. 확실히 뭐를 정리하는 데 있어서는 이것이 쾌도난마(快刀亂麻)식으로 멋진 해결 방안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살아오면서 집안 정리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정리정돈을 줄잡아서 평균 2년에 한 번씩은 했을 것이다. 그 횟수가 평생 서른 번도 넘게 된다. 생활의 규모가 늘어남에 따라 콘텐츠도 그만큼 늘어나는데 여기에 따른 공간 확보나 체계적 정리가 없다보니 얼마 안가서 또 원래의 혼돈상태로 환원돼 버림을 겪었다.

   이때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일단 버리는 것이다. 버릴까 말까 망설여지는 것은 버리면 해결되는 것도 알았다. 버리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 대가를 제대로 치르는 것도 절감했다. 그만큼의 유무형의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앞의 이 생각은 나의 머리로서는 충분히 수용되는 것으로 아주 교과서적, 원론적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가슴이라는 판단 기관을 하나 더 갖고 있다. 가슴의 감성이 여기에 잘 동의해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나도 이제는 꼭 버린다고 마음먹은 헌 옷가지 등을 크고 작은 봉지에 일단 모아보기 시작했지만 한 달이 지나도 잘 채워지지 않았다. 나는 또 헌 옷가지 한 벌에도 나의 비하인드 스토리, 생애의 히스토리가 담겨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지금은 옷의 사이즈가 달라진 내 몸에 안 맞아서 마냥 옷장을 차지하고 있지만 몸을 다듬으면 언젠가 다시 입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에 사로잡히곤 한다. 아주 편한 자기 합리화다.

   이러다가 내가 이 생을 마감한다면 나를 중심으로 한 이 많은 콘텐츠는 어찌될 운명에 처할 것인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 세상에서의 나의 부재(不在)는 결국 내 콘텐츠의 멸실(滅失)을 동반하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추리고 추린 나의 콘텐츠를 모아서 선산(先山) 어느 모퉁이에다가 컨테이너 박스를 놓고  보관한다는 대책까지 해 보기도 하였다.   2023. 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