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아내와 일 2

청솔고개 2023. 1. 17. 20:20

                                                                                                                                     청솔고개

   아내가 한 달 전부터 다시 일을 시작했다. 평생 아내와 같이 살아보니 아내는 무슨 일이든지 일을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성향을 띠고 태어난 사람 같다. 주변에서는 아내더러 평생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하기야 신혼 때 내가 아내더러 그 당시 본인의 일에 대해서 쉽게 참견하다가 아주 큰 싸움으로 번져서 내가 곤욕을 치렀던 게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면 아내의 일은 단순히 가족 부양, 혹은 가계 수입 측면에서라기보다 자기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요한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은 자기 존재감을 표출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른데, 아내는 유독 일로써 이를 입증하는 것 같다. 아티스트들은 해당 분야의 예술 작업을 통해서, 스포츠 인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스포츠 활동을 통해서, 삶의 이유를 찾는다. 자기의 시간과 비용을 아낌없이 투여하면서 봉사활동가들은 그 분야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한다. 존재의 이유는 이렇게 사람마다 각양각색이다. 구순의 촌로들이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밭을 매다가 돌연사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분들은 흙에 자란 작물을 돌보는 것으로서 존재의 이유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을 마감해도 좋은 것이다.

   가장 극적인 예는, 몇 년 전 집에서 편도 150리 더 떨어진 남쪽에 생긴 일자리를 고수하기 위해서 행한 아내의 모습에서 볼 수 있었다. 아내는 늦어도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해서 7시 무궁화호 통근 열차를 1시간 넘도록 타고 간이역에 내려서 다시 4킬로미터를 더 걸어서 출근하는 것이다. 9시까지 사무실에 도착하는 일과를 한겨울을 포함하여 거의 1년 가까이 되풀이했던 것이었다.

   아내는 이런 바쁘고 고된 일상을 즐기는 것 같았다. 때로는 집착까지 하는 듯하다. 이런 모습은 내가 보기에는 거의 구도자(求道者) 같았다. 결혼 초반에는 이런 아내의 성향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평생 살아보니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된다. 이제는 나도  아내의 그런 성향을 존중하기로 마음 굳혔다.     2023. 1. 17.